[토요인터뷰] 최승호 시인 “내 시가 출제됐는데, 나도 모두 틀렸다”

중앙일보

입력 2009.11.21 03:23

업데이트 2009.12.12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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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승호(55·숭실대 문예창작과 교수·사진) 시인이 “내가 쓴 시가 나온 대입 문제를 풀어 봤는데 작가인 내가 모두 틀렸다”고 18일 말했다. 그가 풀어 본 문제는 2004년 출제된 수능 모의고사 문제였다. 최씨의 작품 ‘북어’ ‘아마존 수족관’ ‘대설주의보’ 등은 수능 모의고사 등에 단골로 출제돼 왔다. 그는 “작가의 의도를 묻는 문제를 진짜 작가가 모른다면 누가 아는 건지 참 미스터리”라며 쓴소리를 했다. 최 시인은 올 8월 서울시교육청 교육연수원에서 국어교사 400명을 대상으로 ‘시의 이해’를 강의했다. 이 자리에서 수능 시험과 고교 시 교육에 대해 직격탄을 날려 화제를 모은 그를 만났다.

-자신이 쓴 시가 나온 문제를 틀린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언젠가부터 내 시가 교과서나 각종 수능 모의고사에서 나오고 있다더라. 그런데 나는 다 틀린다. 그래서 지금은 안 풀어 본다. 시를 몸에 비유해 보자. 시의 이미지는 살이고 리듬은 피요, 의미는 뼈다. 그런데 수능 시험은 학생들에게 살과 피는 빼고 숨겨진 뼈만 보라는 것이다. 그러니 틀리는 게 아닌가 싶다.”

-무슨 말인지.

“예를 들어 내가 쓴 ‘너구리, 너 구려. 너 구린 거 알아’라는 시를 보자. 이게 모국어의 맛과 멋이다. 그런데 이 시의 주제가 뭐냐. 시의 사조(思潮)가 뭐냐. 시인은 어느 동인 출신이냐 묻는 게 수능 시험이다. 그런 가르침은 ‘가래침’ 같은 거다.”

-시인의 시 ‘북어’에 대해 고교 참고서는 ‘시인은 부당한 독재 권력에 대해 한마디 비판도 못 하는 굴종의 삶을 비판한다’고 풀이했다. 이건 맞나.

“그것 봐, 또 한정한다. 1979년 사북에서 전두환 정권 계엄령이 내려졌을 때 쓴 것은 맞다. 하지만 이 시는 죽음의 탐구로 볼 수도 있다. 작품은 프리즘과 같아서 눈 밝은 독자를 만나면 분광하며 스펙트럼을 일으킨다. 이런 해석은 노을을 보고 허무·열정의 이중성을 느끼는 사람에게 ‘빛의 산란’이 정답이라고 못 박는 꼴이다.”

-객관식 시험이라는 한계가 있지 않은가.

“사람 사이의 대화나 교류가 일어나는 곳은 산과 산 사이의 골짜기다. 그런 골짜기에서 나오는 메아리가 중요하다. ‘나는 이 산꼭대기에서 이런 얘기를 하고 있지만 저쪽에도 또 나름의 산맥이 있겠지’라고 생각하면 산과 산 사이에 골짜기가 생겨난다. 오지선다 시험은 골짜기를, 골짜기 사이에서 나오는 메아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현행 교육의 문제가 뭐라고 보는가.

“요즘 국회가 하는 일을 보자. 골짜기가 없다. ‘사이가 좋다’는 말처럼 사이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사이가 없는 거다. 여당과 야당, 중앙과 지방이 대립하는 세종시 문제도 그런 거 아닌가. 참 답답하다.”

-그렇지만 수능은 15년이 넘은 시험이고, 아주 엄밀한 과정을 거쳐 출제된다. 이의 신청을 해 볼 수도 있을 텐데.

“그냥 미스터리로 남겨 두고 싶다. 나도 생각하지 못한 정답이 어떻게 나오는지 정말 궁금하다. 내가 바보라서 모르는 건지…. 그렇지만 문제가 틀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거 같다. 나는 감정과 예술의 자리에서 얘기하고, 수능은 이론과 논리의 자리에서 얘기하는 것일 뿐이다.”

-그럼 시 교육의 목표는 무엇이어야 하나.

“웃는 것, 안목을 높여 주는 것이다. 더 좋은 작품을 감상해 나갈 수 있는 능력, 그래서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안목을 길러 주는 것이다. 그리스 철학자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고 했다. 이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인생은 지금 여기 경험의 총체이니 그 경험을 최대한 느끼도록 도와주는 것이면 좋겠다. 어린이가 덜 자란 어른인 게 아니라 어른이 계속 자라나는 어린이일 뿐이다.”

-학생들도 시를 쉽게 쓸 수 있나.

“시인은 언어의 요리사고 작품은 음식이다. 독자는 미식가고, 맛을 음미하면 된다. 나는 쉽게 언어를 물감처럼, 음표처럼 사용한다. 시 ‘숫소’는 증기기관차처럼 콧김을 뿜는 수소가 빼빼 마른 백정에게 맞아 쓰러지는 얘기다. 의미에 연연하지 말고 더 많은 작품을 즉물적으로 감상하고, 생각을 많이 하면 누구든지 쓸 수 있다.” 

이원진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최승호 시인은=1983년 출간된 첫 시집 『대설주의보』 이후 『세속도시의 즐거움』 『그로테스크』 『고비』 등 문제작들을 내놓으며 오늘의 작가상과 김수영문학상·이산문학상·현대문학상·미당문학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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