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의 닛폰 리포트] 김연아·삼성 vs 아사다 마오·소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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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요즘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은 김연아다. TV에서는 김연아의 연기 모습이 수차례 반복되고, 유력 신문들은 스포츠면 톱기사로 다루고 있다. 일본에서 김연아에 대한 관심은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김연아가 일본의 보물인 아사다 마오(사진)의 숙적이지만 완벽한 실력을 보여주자 찬사를 아끼지 않는 것이다.

최근 한·일 간에는 이런 관계의 숙적이 또 하나 있다. 삼성전자와 일본의 전기·전자업체들이다. 일본 재계와 정부·언론은 크게 벌어진 삼성전자와 일본 업체들의 격차에 당황하고 있다. 일본 업체들이 고난도의 원천 기술과 세계적 브랜드 파워를 갖고 있는데도 격차가 확대일로에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합병·경영통합 등을 통해 삼성전자 포위 작전을 구사하고 있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

일본에서는 이런 불가사의를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비유’를 통해 해석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김연아는 기술도 탄탄하지만 화려한 표현력이 장점이다. 반면 아사다 마오는 여자 선수에겐 꿈의 기술로 불리는 트리플 악셀에 집착하면서 올해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기술에 매달려 위기를 자초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일본 전기·전자업체들이 딱 그런 상황이다. 도쿄대 세노오 겐이치로 교수는 저서 『기술력에서 이긴 일본이 왜 사업에서 지고 있는가』에서 기술력 향상에만 집착하는 일본 기업들을 질타했다.

이런 아이러니에는 일본 기업들의 ‘기술지상주의 DNA’가 작용한다. 완벽한 제품을 위해 개선에 개선을 거듭하는 ‘가이젠(改善)’은 일본을 세계 최고의 기술국가로 만들었다. 이런 노력은 1980년대 일본 기업을 세계 최고의 강자로 만들었다. 그러나 1등이 되자 일본은 방향을 잃었다. 모델을 개선하고 기술을 개발하는 능력은 뛰어났지만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제품의 포장 능력과 마케팅 기법이 뒤떨어졌던 것이다.

기자는 2002년 『일본 소니가 한국 삼성에 따라잡힌 이유는』이라는 책을 썼다. 삼성전자가 소니 절반의 덩치(매출액)로 순이익에서 소니를 앞지른 것을 근거로 ‘소니가 삼성에 따라잡히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성급한 분석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일본 전기·전자업체 전체의 이익을 합쳐도 삼성전자 한 곳을 따라올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삼성전자는 지금이 위기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80년대의 일본 업체처럼 더 이상 따라갈 1등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 기업은 권토중래를 벼르고 있다. 기술력이 높은 아사다 마오가 언제든지 부활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다. 중국 기업들의 추격도 무섭다.  

김동호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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