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세계최대 고인돌국가"-남북 29,510기 종합 조사

중앙일보

입력 2000.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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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한국은 '고인돌의 나라'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많은 고인돌이 전국 각지에 산재해 있다.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 유적인 고인돌(支石墓)에 대한 연구는 일본 강점기부터 있어왔지만 종합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연구는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문화재청이 서울대학교박물관(책임연구원 최몽룡교수)에게 의뢰,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20여명의 국내 고인돌 연구자들이 참여해 최근 발간한 '한국 지석묘(고인돌)유적 종합조사.연구' (2권, 1천2백50쪽)는 현 시점에서 한국 고인돌을 종합적으로 정리했다는 데 무엇보다 큰 의미가 있다.

우선 이번 보고서에서 파악한 한반도 전역의 고인돌은 북한 지역(3천1백60기)을 포함해 모두 2만9천5백10기에 달한다.

이는 약 5만기(基)로 추정되는 전세계 고인돌의 절반을 넘는 숫자다.

고인돌이 언제 만들어졌나와 관련해 과거 일본인 학자들은 껴묻거리로 나온 돌검이 세형동검을 모방한 것이라며 이른바 '금석병용기' 를 내세워왔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방사선 탄소 연대측정 결과 돌검의 연대가 세형동검보다 앞서 고인돌이 청동기시대의 묘제(墓制)임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고인돌의 상.하한 연대는 이론이 분분하지만 보고서는 상한은 기원전 1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전기(기원전 3백년~기원후 1년)에 주로 축조됐다고 밝히고 있다.

이같은 배경하에서 보고서는 고인돌을 '고대국가 발생 이전의 계급사회인 혈연.조상숭배.재분배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족장사회 상류층의 공동묘지' 로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고인돌의 기원을 포함한 많은 문제들이 이번 보고서에서도 여전히 앞으로 해결해야할 과제로 남아있다.

고인돌 기원설은 크게 ▶시베리아 카라스크 돌널무덤(石箱墳계통)의 거석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는 '북방설' ▶가매장한 뒤 나중에 뼈만 추려 묻는 세골장(洗骨葬)과 함께 동남아시아에서 왔다는 '남방설' ▶한반도에서 독립적으로 발행했다는 '자생설' 등으로 나뉘나 어느 것도 정설로 확정되진 않았다.

고인돌 형식간의 선후관계도 마찬가지다.

한반도 북부에서 북방식(네개의 판석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위에 큰 뚜껑돌을 올려놓은 것)이 먼저 나타나 남부로 퍼지고 이어 개석식(蓋石式, 받침돌 없이 뚜껑이 직접 지하 돌방을 덮고 있는 것)으로 파생됐다는 것이 정설이나 개석식이 원초형이고 이 것이 남쪽에서는 남방식으로, 북쪽에서는 북방식으로 발전했다는 설 등 다양한 설이 있다.

박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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