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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석-박명수 콤비 코드 알면 일본 코미디 다시 보이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39호 04면

올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작품은 일본 영화 ‘신보루(しんぼる)’였다. 어느 날 깨어 보니 하얀 방에 갇혀 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연초 결혼한 일본 코미디언 마쓰모토 히토시(47)가 자신의 기나긴 싱글 생활을 총정리하는 의미로 만들었다는 영화다.

이영희 기자의 코소코소 일본문화

그러나 정작 부산에서는 ‘나는 비와 함께 간다’의 기무라 다쿠야님을 스토킹하느라 ‘신보루’를 들고 부산에 온 그를 챙길 겨를이 없었다. 해운대 센텀시티 신세계백화점 앞에서 포토월에 선 마쓰모토를 잠깐 볼 기회가 있긴 했다. ‘뵨사마(이병헌)’를 보려 부산을 찾은 일본 아주머니들 사이에 “맛짱(마쓰모토의 별명)~”이라는 환호가 살짝 터져 나왔을 뿐 관중의 반응은 대략 썰렁했다.

그러고 보면 일본 배우나 가수들이 한국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데 반해 한국에 널리 알려진 일본 코미디언은 거의 없다. 마쓰모토는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최정상의 개그맨. 파트너 하마다 마사토시(일명 하마짱)와 함께 ‘다운타운’이란 콤비(아래 사진)로 활동하며 ‘헤이헤이헤이’ ‘다운타운DX’ 등 메인 시간대의 코미디·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다수 진행한다.

일본 코미디나 버라이어티가 한국에서 인기 없는 이유는 TV에 잘 소개되지 않아서기도 하지만 양국의 ‘웃음 코드’가 다르다는 것도 주요 이유로 꼽힌다. 일본 드라마·영화를 즐겨 보는 사람들도 일본 코미디에 대해서는 “과격하기만 하고, 뭐가 우스운 건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일본 코미디를 즐기기 위해선 일단 이 두 단어를 기억해야 한다. ‘보케(ぼけ)’와 ‘씃코미(つっこみ)’다. ‘보케’는 코미디에서 바보 같은 행동을 주로 하는 인물을, ‘파고들다’라는 뜻의 ‘씃코무(突っこむ)’에서 나온 ‘씃코미’는 보케의 멍청한 행동을 마구 비난하는 멤버를 말한다. 일본 코미디언들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보케와 씃코미가 팀을 이뤄 2인조로 활동하는데, 이는 일본 전통 예능인 ‘만자이(漫才·만담)’에서 비롯된 것. ‘무한도전’의 유재석-박명수 콤비를 상상하면 쉽다. 황당한 말을 툭툭 내뱉어 웃음을 주는 박명수가 ‘보케’, “형, 오늘 왜 이래”라며 무안을 줘 상황을 더욱 웃기게 만드는 유재석이 ‘씃코미’다.

마쓰모토(사진 왼쪽)는 일본에서 ‘보케의 대왕’으로 불린다. 상황 불문하고 튀어나오는 엉뚱·기발한 멘트가 발군이다. 그의 파트너 하마다(사진 오른쪽) 역시 “너, 지금 뭔 소리냐”며 머리를 내리치는 과격한 씃코미로 유명한데 몇 년 전 방송에서 보아의 머리를 세게 때려 한국 네티즌의 원성을 샀던 아저씨가 바로 그다. 이런 보케와 씃코미의 역할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노골적인 막말과 폭력(?)이 난무하는 일본 코미디가 웃기기보다는 불편하게만 느껴질 가능성이 크다.

신기한 것은 무대에서 바보 연기를 하는 보케들이 정작 팀 내에서 아이디어를 내고 대본을 짜는 ‘브레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이미 마쓰모토는 여러 방송에서 “보케 혼자 고생하고 씃코미는 묻어가는데, 똑같은 출연료를 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불만을 농담처럼 토로한 바 있다. 이번 영화 ‘신보루’를 본 사람마다 “마쓰모토는 천재였다”고 감탄한다 하니, 역시 천재와 바보는 깻잎 한 장 차이? 그러고 보니 한국 바보 연기의 거장 심형래도 영화감독으로 변신, 그 정체 모호한 ‘신지식인’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시지 않았던가.


중앙일보 문화부에서 가요·만화 등을 담당하고 있다. 아이돌 그룹 ‘스마프(SMAP)’를 향한 팬심으로 일본 문화를 탐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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