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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대체 에너지 전쟁 중] 5. 원자력 강국 프랑스서 배운다(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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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 프랑스의 수도 파리 근교에 있는 노장 원자력 발전소. 원자로 냉각탑에서 하얀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옆의 강은 파리의 상수원인 센강 상류로 원자력 발전소와 파리 시민이 같이 사용한다. 노장슈르센=김춘식 기자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서 남동쪽으로 자동차로 한 시간쯤 걸리는 곳에 있는 마을인 노장슈르센. 인구 6000명 정도가 사는 마을 한 가운데에는 파리의 젖줄인 센강(상류)이 흐르고 있다. 이 강물은 파리 시민과 노장슈르센 주민의 상수도원이자 마을에서 500m 떨어진 노장 원자력발전소의 냉각 수원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노장 원자력발전소의 거대한 냉각탑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가 한여름 하늘을 구름처럼 수놓고 있었다. 여기에서 돌아가는 원자로는 두 기(基).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소보다 기당 발전 용량이 1.3배 큰 것으로 1980년대 말에 세워진 것이다.

노장 원자력발전소 크리스틴 앙드레 홍보실장은 "프랑스 전국에는 59기의 원자력발전소가 가동되고 있으며, 전기가 남아 이탈리아 등 유럽 각국에 수출까지 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열을 식히고 센강으로 배출하는 물을 파리 시민이 식수로 사용하면서도 전혀 시비를 걸지 않는 것은 원자력 발전이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만큼 원전에 대한 신뢰가 높다.

프랑스는 천연가스와 소규모 유전이 있긴 하지만 부존 에너지 자원이 빈약하기는 우리나라와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나마 조금씩 캐오던 석탄 광산도 얼마 전 문을 닫았다. 1973년 1차 석유 파동이 닥쳤을 때 국가에너지 자급률은 23%에 불과했다.

프랑스 원자재.에너지경제연구소 리샤르 라베르뉴 소장은 "프랑스 정부는 1차 석유 파동을 겪으면서 국가에너지 자립도를 높이지 않으면 장래 국가 발전에 심각한 걸림돌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며 "74년부터 대대적으로 원자력 발전소 건립에 나선 결과 지금은 국가에너지 자립도를 51%로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이제 원자력 발전은 '프랑스의 새로운 초대형 유전(油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석유 파동이 다시 온다 해도 프랑스는 옛날처럼 큰 충격은 받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전기의 경우 더더욱 충격이 없을 정도다. 원자력 발전이 전체 전기 생산량의 85%를 담당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대부분 수력과 풍력 등 청정 대체에너지가 막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는 원자력 발전소가 19군데에 있다. 해안가와 내륙, 심지어 파리 근교까지 가리지 않고 서 있다. 해안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는 4개소 14기에 불과할 뿐이다. 원자력 발전소와 주민들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정부는 원자력 발전소를 99년 이후 새로 짓지 않고 있다. 전기가 남아돌아 외국에 팔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는 남아도는 전기를 소모하기 위해 프랑스 정부는 새로 짓는 주택의 난방을 전기로 하는 것을 의무화하기도 했다. 그 이전에는 대부분 가스 보일러를 설치했었다.

프랑스 정부는 1차 석유 파동이 막 지나간 74년 원자력 발전소 건립을 시작했다. 그 이후 1년에 원자력 발전로 6기씩 몇 년에 걸쳐 집중적으로 발주했다. 프랑스전력공사(EDF) 로제 세방 원자력담당 상임고문은 "정부의 에너지 자립에 대한 의지가 워낙 강해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원자력 발전소 건설이 집중적으로 진행됐다"며 "그 결과 급속하게 늘어나는 전기 수요를 충당한 것은 물론 유럽 각국에 전기를 수출하는 에너지 강국이 됐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쓰고 남은 핵연료를 재처리하는 것에서부터 핵 발전소에서 나오는 쓰레기처분장, 원자력 엔지니어 양성 등 원자력 관련 국가적 체계가 촘촘히 짜여 있다.

파리 북서쪽 도버해협과 맞닿은 해안에 있는 핵연료공사(COGEMA). 70년대 우리나라가 핵연료 재처리 기술을 사 오려고 했던 곳이다. 일본이 최근 가동에 들어간 핵연료 재처리 기술을 주기도 했다. 프랑스 등 4개국 90기의 원자로에서 나오는 핵 연료를 다시 가공해 쓸 수 있는 연료로 만든다.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매립하는 곳이 프랑스에는 두 곳 있다. 한 곳은 이미 꽉 차 문을 닫았으며, 로브 처분장은 99년 매립을 시작했다. 프랑스의 원전 쓰레기 매립장은 전력공사가 아닌 별도의 국가기관인 방사성 폐기물관리청(ANDRA)이 맡고 있다. 로브 처분장에는 각 원자력발전소에서 트럭으로 막 실어온 원전 쓰레기들이 10여개 노란색 컨테이너에 담겨 매립 절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사성 폐기물관리청 자크 탐보리니 국제팀장은 우리나라에서 매립장 건설을 놓고 분쟁이 일고 있는 것도 훤히 알고 있었다. 그는 "국가가 별도의 원전쓰레기 처리 관련기관을 설립해 처분장을 건설해야 한다"며 "지금과 같이 원자력 발전 사업자가 그 일을 하면 국민의 신뢰가 낮아진다"고 조언했다.

◆ 특별취재팀:글=박방주(팀장).이원호.심재우 기자, 사진=김춘식.변선구.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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