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회 프런트] 민사 분쟁 ‘조정’ 통해 해결 미국 90%인데 한국은 4% 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6남매의 다툼은 2006년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시작됐다. 1999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때 물려준 땅이 문제였다. 넷째인 A씨가 자신의 명의로 돼 있는 이 땅의 절반이 본인 소유라고 주장하자 나머지 형제들이 소송을 냈다. “A가 아버지 별세 후 ‘땅을 일단 내 소유로 해 놓고 땅이 팔리면 돈을 나눠 갖자’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넷째가 1심에서 패소한 뒤 서울법원조정센터에서 열린 네 차례의 조정에서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서로에 대한 감정을 삭이지 못한 탓이었다. 결국 원수 사이가 돼 버린 A씨 남매는 2심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전국 법원에서 처리된 125만여 건의 민사 분쟁 가운데 4.1%만이 조정으로 해결됐다. 법원은 조정을 활성화하기 위해 지난 4월 서울과 부산에 전담 조정센터를 설치했지만 아직 그 성과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반면 미국은 민사 분쟁의 90%, 일본은 49%가 조정을 통해 분쟁을 일단락 짓는다. 유독 한국에서 조정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A씨 남매의 상속 분쟁을 지켜본 조정센터 관계자는 “의뢰인의 요구에 충실한 것은 이해하지만 합의를 권했을 때 변호인마저 탐탁지 않은 태도를 보인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한 판사도 “사건이 조정으로 끝날 경우 대부분의 의뢰인이 ‘변호사가 기여한 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했다. 변호사들이 수입을 고려해 조정보다 판결을 더 원한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대한변협 장진영 대변인은 “법원이 당사자들의 합의를 끌어내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 변호사들에 대해서만 ‘이기적 태도를 버리라’고 몰아세우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경기도 의정부시의 다세대주택 월세방에 살던 B씨는 벽에 물이 흐른다는 이유로 약 6개월 동안 월세를 내지 않았다. 집주인이 ‘밀린 월세를 내고 방에서 나가라’고 요구한 데 대해 B씨는 피해부터 보상하라며 맞섰다. 조정에 실패한 뒤 집주인이 승소했지만 B씨는 항소하면서 방을 빼지 않고 있다. 담당 판사는 “집주인이 조금만 양보했다면 더 많은 월세에 새 세입자를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서울법원조정센터 조홍준 상임조정위원은 “특히 부동산 관련 소송은 변호사료 등 소송 비용을 빼고 나면 양쪽 모두 손해를 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도 ‘끝까지 가 보겠다’는 정서 때문에 조정이 활성화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기업들도 ‘사후 책임’ 문제 때문에 판결로 끝을 내려는 경향이 강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7년 열차 정비 비용 지급 등을 놓고 코레일과 서울메트로 사이에 벌어졌던 분쟁이다. 서울법원조정센터에서 조정에 나섰지만 양측은 각각 “상위 기관인 국토해양부와 서울시의 허락 없이 조정안을 내기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다. 이 사건은 지난달 센터 측의 강제조정으로 가까스로 해결될 수 있었다. 차정일 상임조정위원은 “기업 간 조정이 활성화되려면 정부와 기업 경영진의 강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선욱 기자

◆조정(調停)=조정이 성립되면 소송에서 확정 판결을 받은 것과 동일한 법적 효력을 갖는다. 사건 당사자가 직접 법원에 신청하는 ‘조정신청’과 소송 도중 재판부가 직권으로 회부하는 ‘조정회부’ 등 두 가지 방식이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