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필 가산점' 파문] 기업들 "연봉제 시대에 조직 마찰"

중앙일보

입력 1999.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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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부가 군필자 보상 차원에서 군경력 인정과 호봉 산정을 민간기업에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자 기업들이 반발하고 있다.

현대.삼성.LG.SK 등 대기업 인사담당 관계자들은 "조직의 내부 마찰과 형평성 시비를 야기할 우려가 크다" 며 군경력 인정 제도화에 난색을 표시했다.

현재 민간기업들은 군필자에 대한 채용상의 특혜가 없고 호봉을 높여주는 경우도 드물다.

다만 SK㈜ 등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회사들과 건설업체들이 1~2호봉씩 높여주거나 대리진급시 우대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삼성 구조조정본부 인사담당 관계자는 "사원 가운데 군면제자나 방위복무자는 상대적으로 소수" 라며 "인사제도를 이미 군필자에 맞추고 있는데 새삼스럽게 호봉 인상을 제도화하는 것은 무리" 라고 말했다.

그는 "능력에 따른 연봉제가 보편화되는 추세여서 호봉 자체의 의미가 사라지고 있으며, 호봉이 높다고 승진하는 것도 아니다" 고 말했다.

현대그룹 관계자도 "군경력을 기존 사원에까지 소급적용해야 할지, 신입사원에만 혜택을 줄지 형평성 시비에 휩싸일 것" 이라며 "군필자와 면제자를 갈라 기존 사원의 임금을 차별화해도 내부 마찰이 일어날 것" 이라고 우려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공무원 채용과정에서 가산점 논란에 따른 불똥을 민간기업에 떠넘기는 형국" 이라며 "현실을 무시하고 또 하나의 규제를 새로 만드는 꼴" 이라고 지적했다.

전경련 고용복지팀 최정기 팀장은 "공기업도 장애자 의무고용제도를 지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군복무 경력인정 제도는 민간기업에 새로운 의무고용 제도를 부과하는 것과 마찬가지" 라고 지적했다.

기업들이 반발하는 배경엔 호봉 인상에 따른 비용문제도 깔려 있다.

LG 인사담당 관계자는 "군경력을 인정할 경우 곧바로 임금상승으로 이어진다" 며 "한때 내부적으로 군경력 인정문제를 검토했으나 만만찮은 비용에다 이미 자리잡힌 연공서열과 보수체계를 파괴시킬 우려가 커 포기한 적이 있다" 고 밝혔다.

기업들은 군경력 인정이 고용시장을 왜곡시키고 또 다른 사회적 형평성 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우선 비용절감과 수익 극대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민간기업의 생리상 고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군필자의 채용을 꺼리게 돼 채용단계에서 군필자의 취업문이 좁아지는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또 군경력을 인정하면 자영업에 종사하는 군필자와의 사회적 형평성 문제도 불거질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의 외국기업들도 이에 반발하고 있다.

주한(駐韓)유럽연합(EU)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정부의 군경력 인정 제도화는 현실에 역행하는 것" 이라며 "외국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장애자 고용의무 규정부터 철폐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이철호.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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