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서울 시간여행] 7.끝 상암지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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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난지도 쓰레기 산 위로 쏟아져 내리는 불볕은 저주였다. 그 산에 살아있는 것이 있다면 썩어가는 일과 썩어가는 냄새 뿐이다" .(정연희의 소설 '난지도' 에서)

불모의 땅 난지도. 서울 시민이 내다버린 개발과 풍요의 찌꺼기가 쌓인 곳. 더러움의 상징이었던 이 땅이 21세기 서울을 상징하는 '새서울 타운' 으로 변모하고 있다.

난지도엔 요즘 월드컵 주경기장 건설 공사가 한창이다. 쓰레기 산은 2002년까지 숲과 물이 어우러진 생태공원으로 바뀔 예정이다. 상암동 일대는 택지 개발지구로 지정돼 2004년까지 아파트 1만여가구가 들어서게 된다.

서울시는 올초 난지도 일대 상암지구 1백92만평을 새천년의 '정보도시' .사람과 자연이 공생하는 '생태도시' .통일시대의 '관문도시' 로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상암동 일대는 요즘 엘도라도(황금의 땅)로 변모할 꿈에 술렁이고 있다.

◇ 아름다운 섬이 쓰레기 산으로〓서울 마포구 상암동 482번지 일대. 난지도(蘭芝島)란 아름다움의 상징인 난초와 영지의 섬이란 뜻이다.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갈대가 무성하고 고니.흰뺨 검둥오리 등 철새수만마리가 몰려오는 샛강의 섬이었다.

52년부터 이곳에 살고있는 최일도(崔鎰道)씨는 "홍수때면 집이 물에 잠기는 고통을 겪기도 했지만 학생들이 소풍오고 청춘남녀들이 데이트 하러 오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고 회상했다.

쓰레기 매립장으로 운명이 바뀐 것은 78년 3월. 서울시가 이 일대 88만여평을 쓰레기.오물 처리장으로 인가하면서 부터다. 난지도 매립장은 15년간 1억2천만t의 쓰레기를 쌓고 93년 3월에 폐쇄됐다. 8.5t트럭 1천4백만대 분량이다. 해발 7m의 저지대가 90m 높이의 산으로 바뀌었다.

난지도가 일으키는 환경.공해 문제는 서울시의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인근 마포구 성산동과 상암동 주민들은 들끓는 파리.모기떼와 악취로 몸살을 앓았다. 하루 5t씩 썩은 물이 흘러나와 지하수를 오염시켰다.

쓰레기가 부패할 때 발생하는 메탄가스는 폭발위험을 안고 있었다. 난지도 관리사업소에 따르면 그동안 1천3백90여 차례의 화재가 이곳에서 발생했다.

서울시는 지난 96년말부터 난지도 안정화 사업을 시작했다. 침출수를 막는 벽을 세우고 메탄가스를 뽑아낼 구멍을 뚫는 이 공사는 내년말 완료될 예정이다.

26일 오전, 기자가 둘러본 난지도 쓰레기 동산에서는 악취가 거의 나지 않았다. 경사면에는 돼지풀.아까시나무 등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난지도 관리사업소 양해만(梁海滿)소장은 "매립장 폐쇄후 3년이 지나자 흰뺨검둥오리.까치.박새 등 야생조류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최근엔 조류 21종 6백여마리와 식물 1백66종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고 말했다.

◇ 쓰레기 산에서 소망을 캐던 사람들〓이곳은 쓰레기에 '삶' 을 걸었던 소위 '재건대원' 들의 생존현장이기도 했다.

78년부터 10여년간 폐품수집원을 한 李모(58)씨는 "먹고살려고, 자식들 공부시키려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했다" 면서 "오전 3~4시에 별을 보고 나가 달이 뜰 무렵까지 폐품을 모으면 3만원 정도 받았다" 고 말했다.

그는 "작업환경은 최악이었지만 땅속에 파묻힐 물건들을 가려내 재활용한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고 덧붙였다.

폐품수집원들 사이에도 서열과 빈부 격차가 있었다. 구청 쓰레기차가 도착해 온갖 잡동사니들을 내려놓으면 '앞벌이' 들이 우선 쓸만한 폐품을 골라냈다.

그 다음 차례인 '뒷벌이' 의 수입은 앞벌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앞벌이' 에는 권리금이 붙어있었다.

이들은 쓰레기 더미위에 움막을 짓고 마을을 형성해 살았다. 그러나 지난 84년 큰 불이 나면서 재건대원 정착촌은 몽땅 타버렸다. 수천명이 쓰레기 더미 위에 나앉았다.

서울시는 인근에 3~4평짜리 조립식 주택을 지어 9백50여세대를 무료로 입주시켰다. 덕분에 생활이 한결 쾌적(?)해졌다.

이곳에는 한때 6천여명이 거주했으나 매립장이 폐쇄되면서 현재 1백40여가구만 남았다.

◇ '미래의 땅' 상암지구〓오는 2002년 전세계의 주목을 받게될 월드컵 주경기장이 난지도에 들어서면서 상암지구는 '미래의 땅' 으로 부상했다.

서울시는 올 초 50년이라는 장기계획하에 난지도 일대 상암지구를 미래형 신도시로 건설하기 위한 '새서울 타운' 구상에 들어갔다.

서울시 관계자는 "상암지구 개발의 화두는 '생태' " 라고 강조하고 "하수를 처리해 다시 사용하고 쓰레기에서 발생한 메탄가스를 지역난방에 사용하는 등 사람과 환경이 공생하는 미래형 도시로 만들어 나갈 것" 이라고 말했다.

월드컵 경기장 부지로 사용되는 땅은 5만평 정도. 매립장의 나머지 땅은 대단위 생태공원으로 조성된다. 쓰레기 산의 정상(15만평)에는 생태골프장이 조성되며 경사면에는 대대적으로 나무를 심는다.

상암 택지지구 인근 수색역 일대도 첨단 정보산업의 메카로 육성될 계획이다.

노승환(盧承煥)마포구청장은 "신공항철도와 고속철도가 지나는 상암지구는 통일시대 관문이 될 입지적 여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며 "이곳은 환경과 생태를 첫째로 꼽는 미래형 신도시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 이라고 말했다.

문경란.고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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