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키워드] 19. 나노기술

중앙일보

입력 1999.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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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0세기가 마이크로 시대라면, 21세기는 나노 시대다.

20세기를 수놓은 컴퓨터공학.유전공학, 그리고 신소재공학 등이 마이크로 단위의 제어기술을 필요로 했다면 21세기에는 그보다 더 작은 세계, 그러니까 1백만분의 1인 마이크로 세계보다 1천분의 1만큼 더 작은 나노 세계에 대한 제어기술이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다.

나노(nano)는 그리스어의 '난쟁이' 에서 유래한 말로 '10억분의 1' 을 의미한다.

물리적인 세계에서 보면 나노 세계는 곧 원자세계다.

나노 기술이란 이러한 원자 하나 하나를 기계적으로 빠르게 제어할 수 있는 기술로서, 궁극적으로 원자 하나 하나를 쌓아올려 세계를 다시 만들고자 한다.

물질의 설계도인 결합구조에 맞춰 원자들을 기계적으로 적절히 결합시킴으로써, 원자들로부터 그 무엇이든 필요한 물질을 제조하는 것이다.

인체에 필요한 DNA 유전자나 혈구를 다른 생명체에 의존함이 없이 직접 만들고, 소를 거치지 않고도 쇠고기를 만들며, 원광석 없이도 필요한 금속을 만들고, 벼를 키우지 않고도 쌀을 제조한다.

역으로 인체의 암세포나 병원균.환경 오염물질 등을 원자 수준으로 분해해 제거할 수도 있다.

참으로 꿈같은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그렇게 불가능한 일만도 아니다.

자연계의 물질은 구성원자들의 종류와 결합구조에 따라 무한히 다양한 형태와 성질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이미 20세기 과학이 밝혀낸 사실이다.

따라서 구성원자와 배열구조를 알면, 원자들을 이용해 해당 물질을 제조하는 것은 원리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이미 자연은 오래 전부터 스스로 이러한 프로그램을 진화과정에서 실현해 왔다.

소립자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핵으로, 원자로, 분자로, 고분자화합물로 점차 확대 결합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무수한 물질적 재화들이 만들어졌고, 세포분열 때에도 DNA의 유전정보에 따라 필요한 단백질들이 합성됨으로써 하나의 생명체가 탄생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인공적으로 재현할 것인가.

다양한 분자 화합물을 생산하는 자연계의 무수한 분자기계들이 나노 분자기계들의 모델이 될 것이다.

이들 나노 기계들은 자연적인 과정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작동할 것이다.

이들 수많은 나노 기계들의 작동으로 우리는 필요한 물질을 신속하게 제조하거나 재처리할 수 있다.

수분 안에 바이러스나 암세포를 분석하고 퇴치하는 면역기계, DNA 5분 자동합성기, 원자 단위에 정보를 실어보냄으로써 정보처리 속도를 수만배 향상시킨 포켓용 슈퍼컴퓨터, 쇠고기 제조기 등의 나노 기계들을 생각해 보라.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우리는 이 기계들을 편의점에서 쉽게 구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오랫동안 제한된 자연자원을 가공해 필요한 물질로 만드는 그러한 방식의 삶을 영위해 왔다.

이는 사실상 인간을 자연에 구속시키고 환경.질병.기아.에너지 위기 등을 일으키지만 인간은 이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노 시대는 완전히 다르다.

이와 정반대로 원자를 하나씩 쌓아올려 필요한 모든 물질을 만들어 내기에, 인간은 적어도 이같은 자연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운 새로운 형태의 삶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늘 그래왔듯이 예상치 못한 새로운 문제들에 심각히 직면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이에 대한 대비 또한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중원 (서울시립대 교수.과학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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