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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시원한 풍광과는 다른 냉혹한 코스 ‘용기를 내’ 톰 웟슨이 미소짓는다

중앙선데이

입력

턴베리 등대는 밤이면 아일랜드해의 폭풍 속을 헤매는 배들에 따뜻한 등불을 비춰줬고, 해가 뜨면 챔피언십 코스에서 방황하는 골퍼들의 스윙을 지켜봤다. 아래 작은 사진은 깊은 벙커에서 바라본 턴베리 호텔.


그럴 줄 알았다. 짝사랑이 아니었다.
몇 년 전 턴베리 링크스의 사진을 처음 본 순간, 단번에 나는 마음을 빼앗겼다. 중학교 1학년 때 교실로 들어오는 미술 교생 선생님을 처음 본 순간 같았다. 턴베리에 우뚝 선 등대와 화산 섬 아일사 크레이그가 나에게 강렬한 빛을 비췄다. 나는 심장이 뛰었고 반드시 턴베리를 정복하리라 다짐했다.

그런 턴베리가 가슴을 열고 나를 환대했다. 내가 턴베리의 1번 티잉 그라운드에 선 그날은 수정 같은 날씨였다.

스코틀랜드 남서부 아이어 인근의 턴베리 사람들은 “아일사 크레이그가 보이지 않으면 비가 오는 것이고, 아일사 크레이그가 보이면 곧 비가 올 것이다”고 말하곤 한다. 이 아름다운 섬을 보기 어려울 정도로 궂은 날이 많다는 얘기다. 그런데 내가 간 그날 아일사 크레이그는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왔고 등대도 맑은 햇살에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1977년 오픈(브리티시 오픈)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에서도 그랬다. 32년 전 이곳에서 열린 오픈에서 잭 니클라우스와 톰 웟슨은 골프 역사에 남은 멋진 대결을 펼쳤다. 2위 니클라우스와 3위의 타수 차가 10타가 됐을 만큼 두 선수 모두 최고의 경기를 펼쳤고 마지막 퍼트가 끝나고서야 한 타 차로 승부가 갈렸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서 그 태양만큼 뜨겁게 펼쳐진 둘의 승부를 골프 라이터들은 ‘듀얼 인 더 선(duel in the sun)’이라고 부른다.

태양이 아주 반가운 것만은 아니었다. 동경하던 턴베리의 라운드를 앞두고 지나치게 흥분한 나는 모자를 숙소에 두고 왔다. 하필 선크림도 똑 떨어졌다. 나의 골프 실력이 늘지 않는 것은 이런 덤벙대는 성격 탓이다. 게다가 일정이 바뀌는 바람에 동반자 없이 혼자 라운드를 해야 했다.

솔로 인 더 선? 그런 건 싫었다.
가상의 상대를 만들어 듀얼 인 더 선 2부를 치르겠다고 마음먹었다. 나의 상대는 잭 니클라우스가 아니라 톰 웟슨이었다.

나의 골프 판테온에 웟슨은 톰 모리스 주니어, 벤 호건, 바비 존스와 함께 최고의 신으로 모셔져 있다. 뛰어난 골퍼이기도 했지만 그는 골프만 아는 스윙 머신은 아니었다. 스탠퍼드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지성인이었고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던 캐디를 하늘로 보내고 눈물을 흘리며 샷을 한 따뜻한 인간이었다.

그를 존경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용기다. 타이거 우즈의 시대를 사는 요즘 젊은 골퍼들은 골프 황제의 위세에 눌려 지낸다. 하지만 웟슨은 잭 니클라우스의 시대를 뒤집어 엎었다. 강자와 라운드할 때 평소보다 훨씬 무기력하고, 약자와 라운드할 때 강해지는 나에게 그 용기는 300야드 드라이브샷보다 부러운 덕목이다.

웟슨은 환갑인 올해 턴베리에서 열린 오픈에서 우승 문턱까지 갔다. 아쉽게 우승을 놓쳤지만 그의 모습은 나이와는 상관 없이 모든 골퍼를 감동시켰다.

코스는 어렵다. 1986년 여기서 열린 오픈 1라운드에서 출전 선수 156명 전원이 오버파를 쳤다.

90타 이내를 치면 내가 이긴 것으로, 이를 넘기면 진 것으로 하기로 했다. 웟슨이 특유의 인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았다.

스타트 하우스의 사내에게 한국의 기념품을 선물로 주고 옐로티(한국의 화이트티)로 발길을 옮기던 중, 그 사내가 나를 불러 세웠다.

“블루 티에서 치지 그래요. 턴베리의 모습을 더 많이 보고 싶지 않나요?” 그는 선물에 기분이 좋아진 듯했다. 이번 여행을 위해 내가 새로 장만한 번쩍이는 금빛 코브라 캐디백을 보고 내 실력이 꽤 괜찮은 것으로 착각했던 것도 같다.

잠시 고민했다. 여행 가방과 캐디백, 구형 노트북 컴퓨터 가방 등을 질질 끌고 다닌 고된 여행으로 허리에 약간 통증이 있었다. 거리가 부담이 됐다. 그러나 만 60세의 나이에 챔피언티에서 경기한 나의 상대 웟슨을 생각하니 물러설 수 없었다. 그의 스탠퍼드대 후배 타이거 우즈와 미셸 위처럼 웟슨도 전성기 때 손꼽히는 장타자였다. 아직도 만만치 않다. 올 시즌 평균 드라이브샷이 281야드로 최경주(280야드)보다 길다. 나는 블루티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웟슨은 그의 레슨에서 “급할수록 신중하고 스윙을 천천히 하라”고 했다. 나의 티샷은 페어웨이 한가운데를 자로 잰 듯 갈랐다. 3번 홀까지 페어웨이 안착률과 그린 적중률 100%였다. 3퍼트를 두 번 한 것을 빼면 완벽한 출발이었다.

4번 홀부터가 턴베리의 진수다. 코스는 아일랜드해를 왼쪽으로 끼고 등대를 향해 달린다. 바다 건너 아일랜드 땅도 아스라히 보였다.

페어웨이의 순수한 초록과 넘실거리는 파란 바다를 황금빛 러프가 부드럽게 가르고 있었다. 경치에 취하지 않으려 그린 쪽을 보면 눈처럼 하얀 등대가 나를 어지럽게 했다. 턴베리는 페블비치와 더불어 가장 아름다운 해안 코스로 꼽힌다. 개인적으론 턴베리에 조금 더 점수를 주고 싶다. 등대는 1878년 세워져 턴베리의 모든 스윙을 지켜보고 있다.

어니 엘스는 이곳을 “미녀와 야수”라고 했다. 코스는 눈부신 절경과 용서 없는 함정의 조합이다. 거리도 만만치 않다. 7번 홀은 파4인데 469야드나 됐다. 벙커는 깊고 러프도 질겨 파5홀로 해도 코스의 명성에 전혀 지장이 없을 곳이다. 바람이 없다면 5타로 홀아웃 할 수도 있을 법한 곳이었는데 파4여서 욕심을 내다가 7타를 쳤다. 나의 어리석음 때문이기도 했지만 턴베리의 유혹도 매우 강렬했다.

“별 핑계 다 댄다”고 비웃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분들에게 턴베리에 가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맑은 날 턴베리의 라운드에서 가슴이 뛰지 않는 골퍼라면 속이 비치는 슬립만 걸치고 호텔방으로 들어오는 미스 유니버스를 보고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성인(聖人)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성인은 골프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골프는 젠틀맨의 스포츠이면서도 속물들의 게임이다. <하편에 계속>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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