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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참한 이라크 현실 왜곡 화씨 9·11은 대중을 기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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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마이클 무어는 '화씨 9.11'로 대중을 기만했습니다."

사람 좋게 웃던 자노 로즈비아니(44) 감독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31일 '제1회 EBS국제다큐멘터리페스티벌'(EIDF) 현장에서 만난 이라크 출신 미국 국적의 감독은 "부시 대통령에게 대항한다는 정치적 어젠다를 위해 현실을 왜곡했다"며 무어 감독을 강하게 비판했다. 화씨 9.11의 화면 속에서 '평화롭게 뛰노는' 이라크 어린이들은 전체의 5%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수용소에서 숱한 어린이들이 더위와 영양실조로 죽었어요. 그 시신을 죽은 아이의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개에게 먹였습니다. 소녀들은 이웃 나라에 창녀로 팔려갔고요. 무어는 이라크의 비극을 외면했습니다."

그는 CNN.알자지라 등 언론이 대중을 조작하는 시대에 다큐멘터리 작가들만이라도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즈비아니 감독은 EIDF 참가작 '사담의 대학살'을 통해 이라크의 어두운 현실을 조명한다. 1980년대~90년대 초반의 이라크 내 대량 학살지 272곳을 추적해 30만구의 시신이 묻힌 사실을 밝혀내는 과정을 다뤘다. 테러 위험에 목숨을 내맡기며 지난해 10월부터 이라크 각지를 소형 카메라를 들고 헤맨 것은 바로 그 자신이 희생자의 70%에 달하는 쿠르드족이기 때문이다. 14세 때 대규모 학살을 피해 온 가족이 산에 숨어야 했고, 81년에는 결국 세살 터울의 맏형을 잃었다. 91년 걸프전 이후 쿠르디스탄 지역이 개방되자마자 돌아와 쿠르드족 관련 다큐를 만들고 있는 이유다. "김선일씨 참수 소식을 듣고 정말 마음이 아팠다"는 그에게서 동병상련의 정이 느껴졌다.

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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