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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에서] 심상찮은 美 대외정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지난주 미 상원의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비준안 부결을 시작으로 빌 클린턴 대통령과 공화당 의회간에 정치적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공화당이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계산에만 매달려 미국의 대외적 책임을 무시했다는 비난이 쏟아지는가 하면, 일부에선 정치인들의 고립주의 선회 조짐이란 다소 거창한 분석도 나오고 있다.

거꾸로 '자의적이고 임기응변식인 클린턴 외교행태의 당연한 결과' 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사실 CTBT 비준안 부결은 탈냉전시대 유일 초강국으로 남은 미국의 위상을 반영한 측면이 있다.

밖으로부터의 절실한 안보위협이 사라진 마당에 여타 국가들과 동반 족쇄를 찰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특히 클린턴 정부의 외교행적 가운데 일방적인 결정이 잦아 대외신뢰도 역시 실추됐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겨냥한 경제제재와 계속되는 공습에 반발하는 유럽 국가들이 많고, 미국의 국내 사정에 집착해 세계무역기구(WTO)의 뉴라운드 협상의제를 좌우하려는 미국의 노력 역시 공정치 않다는 주장도 있다.

지난 봄 중국의 주룽지(朱鎔基)총리 방미 때 클린턴이 중국의 WTO 가입을 막판에 반대하는 편협한 결정을 내림으로써 양국관계를 계속 꼬이게 만들었다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한마디로 클린턴 정부의 외교행태가 오만한 데다 국내정치적 고려를 지나치게 앞세운 결과 대외적 신뢰를 잃고 있다는 지적들이다.

공화당 내에선 고립주의로 기우는 정치인들이 늘고 있고, 민주당에도 클린턴의 일관성 상실한 대외정책을 힐난하는 의원들이 적지 않다.

문제는 이래저래 미국의 재정적 배려 속에 어렵사리 굴러가는 중동 평화협상과 코소보사태 및 한반도 안정이 내년 말 미국 대선을 앞두고 흔들리지 않고 버틸 수 있을 것인가에 있다.

미국 외교는 지금 막강한 힘을 어떻게 휘두를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형국이다. 이 난맥상의 파장을 비켜가는 외교적 지혜가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대목이다.

길정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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