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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의 책vs책] 주체의 몸, 대상의 몸

중앙일보

입력

몸의 사회학
원제 The Body and Social Theory
크리스 실링 지음, 임인숙 옮김, 나남, 314쪽, 1만원

여성의 몸, 몸의 문화정치학
김은실 지음, 또 하나의 문화, 359쪽, 1만3000원

외국 여행 중에 독일 뮌헨에서 있었던 일이다. 동산만한 엉덩이를 가진 젊은 여성이 몸에 찰싹 달라붙는 옷을 입고 비만의 몸매를 고스란히 드러낸 채 바로 눈앞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물결처럼 출렁이는 그 뒤태를 보는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묘한 울림이 올라왔고 한동안 홀린 듯 그 ‘몸’을 뒤따라갔다. 무슨 엽기 취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눈앞에 보이는 그 몸이야말로 타자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몸, 남성의 성적 대상이기를 거부하는 몸, 여성의 몸에 대한 사회 문화적 통념을 깨뜨리는 몸, 그리하여 한 인간으로서의 주체성과 당당함이 고스란히 구현되어 있는 몸 등으로 보였을 것이다.

인간의 몸은 오래도록 종교적으로 억압당하거나, 미학적으로 찬양되거나, 의술적으로 대상화되어 왔다. 그런 몸에 대해 최초로 인문학적 관심이 발아된 것은 1930년대 인류학 분야에서라고 한다. 그 후 70년대에 이르러 육체는 인류학의 중심 주제로 등장하며 몸의 사회학을 폭발적으로 발화시켰다. 개인을 통제하는 권력이 어떻게 몸에 투입되는지를 연구한 미셸 푸코, 개인적 몸의 운용이 사회적 구속 아래 있음을 밝힌 어빙 고프만, 몸이 정치와 문화 활동의 주요 분야가 되었음을 설명하기 위해 ‘육체 사회’라는 용어를 제안한 브라이언 터너 등이 등장했다.

93년에 발표된 크리스 실링의 『몸의 사회학』은 그동안 사회학자들이 몸을 규명하기 위해 동원한 모든 이론과 관점을 점검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동안의 연구가 몸과 정신, 자연과 문화, 생물과 사회에 대한 이분법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비판하며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그의 대안은 “몸을 고정불변의 생물적 현상으로 보는 자연주의적 관점과, 몸을 무한히 변화 가능한 것으로 보는 사회구성주의적 관점의 교량 역할을 할 수 있는 연구들을 탐색하는 것”이라 한다. 문명화된 몸의 형성 과정을 설명한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몸을 육체 자본의 형태로 본 피에르 부르디외, 상상과 의미가 체현되는 장으로서의 몸을 제시한 코넬, 몸과 정신의 긴밀한 통합성이 평안의 조건이라고 제안하는 지젤 프로인트 등이 소개된다. 마지막에는 현대성과 자아 정체성을 탐구한 앤서니 기든스와 크리스토퍼 래시의 연구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위의 책이 몸의 사회학에 대한 다양하고 풍성한 관점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라면 그것을 보다 한국적인 틀에서, 또한 여성주의적인 시각에서 고찰한 책이 『여성의 몸, 몸의 문화정치학』이다. 저자는 80년대 초 농촌 여성들의 피임과 출산에 관한 경험을 연구하면서 여성의 몸이 여성 문제의 시작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것을 계기로 몸의 인류학과 여성주의를 공부하게 되었고, 여성의 몸은 곧 여성의 삶과 경험이 체현된 실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몸의 경험과 느낌을 중시하는 새로운 사회를 구상하며’라는 첫 장의 제목은 이 책을 출판한 저자의 의도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책에는 중산층 여성들이 운동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몸의 이미지와 여성성의 관계, 성 산업으로 유입된 10대 여성들의 경험을 통해 본 10대 여성들의 성과 정체성, 사회·경제·문화적 관계가 개입되는 정치적인 장으로서의 출산 문화 등을 현장 조사와 심층 면접으로 연구한 내용들이 들어 있다. 여성의 몸은 끊임없이 새로운 주체성을 생산하는 산실이며 가능성의 공간이라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에는 과거의 몸이 수용했던 자아를 더 이상 실천할 수 없다는 뜻이 포함된다. 여성과 몸이라는 화두에는 몸의 경험에 기반을 둔 불연속적인 자아들을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공동체 조직 원리에 대한 생각이 포함돼야 한다고 제안하고 싶다.”

사실 이 두 책은 의미가 깊은 데 반해 재미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 학술서들이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전략으로 동원하는 ‘화장’을 거의 하지 않았다. 또한 우리가 외면해온 고통스러운 진실을 눈앞에 들이민다. 사회 문화적 권력이 다양한 각도로 인간의 몸을 사용하고 통제하고 구조화하는 현실에서 편안하게 자신의 몸을 사랑하고 수용할 수 있는 여성은 많지 않다. 남성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뮌헨에서 비만 여성을 홀린 듯 뒤따라갈 때, 아테네 올림픽에서 펄떡펄떡 뛰는 몸들을 넋 놓고 바라볼 때, 그 몸들은 이미 몸 이상의 ‘무엇’이 되어 우리를 자극하고 간섭한다.

김형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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