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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도 근대 일본도 번역에서 시작됐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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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호 20면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는 14세기 초 유럽의 수도사들이 아랍어를 라틴어로 번역하는 장면이 나온다. 수도원 사서들에게 아랍어 해독능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됐다는 설명도 뒤따른다. 아랍어를 중세 유럽의 공용어인 라틴어로 번역했다는 것은 서유럽인이 이슬람에서 뭔가 배웠음을 뜻한다. ‘대체 서유럽이 아랍에서 뭘 배운단 말인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근대 이후 서양문명이 이슬람을 압도했던 까닭에 우리 뇌리에는 ‘이슬람문명은 서양문명보다 뒤떨어진 문명’이라는 부정적 고정관념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문명을 채울 콘텐트를 늘려라

하지만 ‘서유럽이 이슬람보다 우월하다’는 시각은 최근 수백 년 동안 형성된 것이다. 7세기 이후 500년 동안 이슬람은 고대 그리스의 과학과 철학을 번역·소화함으로써 서유럽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월한 문명을 건설했다. 이슬람은 단순히 그리스 학문을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독창적으로 끌어올렸고, ‘야만 상태’의 서유럽은 12세기 이후 이슬람 학자들이 소화한 그리스 학문을 라틴어로 번역해 받아들임으로써 문명을 도약시켰다.

이슬람 문명 일으킨 '그리스 고전'
아리스토텔레스가 그 대표적 사례다. 유럽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그리스어→라틴어’로 직접 번역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어→아랍어→라틴어’로 중역(重譯)된 텍스트를 통해 처음 접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을 기독교에 융합시킨 토마스 아퀴나스의 스콜라철학은 이렇게 탄생했다. 역사가들이 ‘12세기의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서유럽의 번영은 이슬람의 학문적 성취를 라틴어로 번역하지 않았다면 이룩될 수 없었다.

이슬람이 7세기에서 12세기까지 세계 최고 수준의 문명을 건설했고, 야만 상태의 중세 유럽이 이슬람을 스승으로 받들었다는 것은 흥망이 부침하는 역사의 냉혹한 진실을 일깨워준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슬람과 중세 서유럽의 번영이 공통적으로 ‘번역’에 기반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슬람은 그리스 고전 번역을 통해 중세 초기에 번영을 누렸고, 유럽은 아랍어로 번역된 그리스 고전을 라틴어로 중역함으로써 12~13세기의 화려한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다. 번역이 역사 변혁의 지렛대로 작용한 것이다.

번역과 문명 발흥의 관계가 밀접하다는 것은 일본의 경우에서도 나타난다. 일본의 메이지 시대 45년간(1867~1912)은 근본적으로 일본이 서양 문명을 배우고 본받아 점차 소화해 간 시기였다. 일본이 이렇게 대규모로 해외 문물을 배운 것은 처음은 아니다. 1000여 년 전에도 이런 식으로 중국 문물을 배운 예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 경우엔 그때보다 규모가 훨씬 크고 또 조직적이었다. 일본인들은 각국에 유학생들을 파견해 서양 각국에서 우수한 점만을 배우기로 했다.

영국에 가서는 해군과 해상무역을 배우고, 독일에 가서는 육군제도와 의학을 배우고, 프랑스에서는 법률을, 미국에서는 기업경영을 배우게 했다. 그들은 전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교실로 삼고, 각 분야의 정수만을 배우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 시기의 일본은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서양문명을 받아들였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서양 서적이 대대적으로 번역됐다.

번역이 전제되지 않는 지적 활동이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도올 김용옥의 말처럼 제아무리 훌륭한 논문을 써도 그 논문에 관련된 고전의 번역 없이는 그 논문이 전개한 아이디어는 ‘우리 문화’의 일부로 편입될 수 없다. 제아무리 영어 도사가 많이 출현해도 그들이 ‘우리말’로 그들의 학식을 표현할 수 없는 한 그들은 ‘우리 문화’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다(『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의미에서 근대 일본의 번역 활동을 역사상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이라고 한 고종석의 평가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인류문화사의 관점에서, 늘상 나를 황홀경으로 몰고 가는 한 시기가 있다. 그것은 유럽 문화의 바탕을 마련한 고대 그리스·로마 시절도 아니고, …천재와 완전인(完全人)의 시절이라고 할 만한 유럽의 르네상스 시기도 아니고, 서양 르네상스의 한국판이라고 할 만한 영·정조 치하 실학의 전성시도 아니다. …내게 감동을 주는 것은 일본 에도 중기 이래의 란가쿠(蘭學: 네덜란드 문헌들을 통한 서양 학술 연구)와 메이지 시대 이후의 번역 열풍이다.

그것이야말로 한문 문명권과 그리스·로마 문명권을 융화시키며 동서 문화교섭사의 가장 빛나는 장면을 연출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의 위대함은 …유럽 문화를 게걸스럽게 흡수하면서도 한자라는 동아시아 문명의 공통 유산 속에 완전히 녹여버렸다는 데 있다.”(『감염된 언어』)

동서양을 융화시킨 '일본의 번역'
고종석이 유독 일본의 번역을 주목한 것은 그것이 한국인의 언어생활에 대해서도 절대적인 영향을 주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 상당수와 대부분의 학술 전문 용어, 즉 자유(自由), 평등(平等), 권리(權利), 인권(人權), 정의(正義), 민주주의(民主主義), 시간(時間), 공간(空間), 의무(義務), 책임(責任), 도덕(道德), 원리(原理), 철학(哲學), 사회학(社會學), 미학(美學) 등은 모두 일본 지식인들이 서양 문화를 수용할 때 번역해서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말들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글의 과학적 우수성을 자랑한다. 하지만 우리는 한글이 일본의 ‘가나(假名)’보다 600년, 영어의 원형인 로마 글자보다 무려 2000년 뒤 ‘창제’된 글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구형 컴퓨터가 신형 컴퓨터를 못 당하듯이 최신형 문자가 우수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과학성이 있다고 저절로 경쟁력이 생길까. VTR 시장에서 ‘앞선 기술력’의 베타 방식이 ‘풍부한 콘텐트’의 VHS 방식에 밀려 도태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시인 김수영은 1960년대 중반에 쓴 산문에서 ‘1930년생’을 기준으로 세대를 구분했다. 1930년 이전에 태어난 ‘구세대’는 해방되던 45년에 15세 이상의 나이였고 따라서 일본어를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다. 1930년 이후에 태어난 ‘신세대’는 일본어를 못 읽는 사람들이다. 김수영은 구세대가 일본어를 통해 문학의 자양을 흡수한 데 비해 신세대는 일본어 해독 능력의 결여로 지적 수준이 현저하게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김수영은 신세대 문학청년들을 ‘뿌리 없이 자라난 사람들’이라고 혹평한다. 일본어를 읽을 줄 모르는 까닭에 세계 문학의 흐름으로부터 차단돼 있는 그들에게 가장 결핍되어 있는 것은 ‘지성’이라는 것이다. 그는 산더미같이 밀린 외국 고전들을 우리말로 번역해 한글 콘텐트를 일본어 못지않게 늘리는 일이야말로 국운(國運)에 관계되는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김수영의 시대로부터 40여 년이 흐른 지금은 형편이 나아졌을까.

일본은 메이지 유신 직후 정부 내에 ‘번역국’을 따로 두어 단기간에 조직적으로 수만 종의 서양 고전을 번역했지만, 그들이 19세기에 번역한 고전 가운데 아직도 우리말로 번역 안 된 책이 많다. 일본어를 국어로 상용(常用)하다가 한글을 본격적으로 쓴 지가 이제 겨우 반세기를 조금 넘긴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과거로부터도 상당 부분 단절돼 있다. 그러므로 모국어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인문학이란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그야말로 갓 태어난 신생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국민에게 영어로 읽으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지난해 7월 28일부터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거행된 제18차 세계언어학자대회는 소수민족 언어에 대한 언어학적 분석과 보존 계획 수립의 문제를 주요 의제로 삼고, 인간은 자신의 모국어를 사용할 때 가장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21세기에 우리의 독창적 문화를 창조하는 일이 무가치하다고 판단하지 않는다면 번역을 통한 한글 콘텐트의 확충은 결코 미루어서는 안 될 시급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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