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습·지못미에서 열폭·갑툭튀까지…외계어는 진화중

중앙일보

입력 2009.10.09 14:11

업데이트 2009.10.09 15:43

9일은 563돌을 맞는 한글날이다. 한글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는 등 전세계에서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 강국’인 고향에서는 한글이 무차별적으로 파괴ㆍ변형되고 있다. 순서가 뒤집히거나 억지로 끼워맞추는 식의‘인스턴트 한글’이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다. 국내 대학생의 92.2%가 ‘우리 글을 제대로 쓰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고 답할 정도다.

그렇다면 인터넷 상에서 쓰이는 쉽게 알아듣기 힘든 말인 ‘외계어’는 어디에서 나와 어떻게 흘러왔을까. 외계어의 역사를 뒤돌아보면서 한글날의 의미를 되새겨보자.

◇시대따라 바뀌는 외계어=1990년대엔 PC통신의‘통신어체’가 유행했다. 짧고 간략한 메시지를 전하는 인터넷 특성을 반영했다. ‘ㅅㄱ(수고하세요)’ ‘ㅂ2ㅂ2(안녕)’ ‘ㅎㅇ(안녕)’ ‘ㅇㅇ(알았어)’ ‘ㅎㅎ(히히)’ ‘ㅋㅋ(키키)’ ‘(미안해)’ ‘강쥐(강아지)’ ‘넘(너무)’ 등이 주로 쓰였다.

당시 채팅문화가 발달하면서 문장 형태의 외계어도 인기를 끌었다. ‘울희(우리가)’ ‘外ㄱ’IIㅇㄱ를 쓰등 먈등(외계어를 쓰든 말든)‘ ’ㄴㄱㄴ-IIㄱr 흔 샹ØIㆅFⅲ (너네가 무슨 상관이야!!!)‘ ’ㄱЙ셩Ø1있흥ⅲ (개성이 있다구!!!)‘ ’ㄴF듀 용 못ㅎH(나두 용서 못해)‘ ’구 더샹 울희룰 괼퓌뒤ㅁr (그리고 더이상 우리를 괴롭히지마)‘ 등이 중ㆍ고생들 사이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맞춤법이 틀리거나 오타를 그대로 쓰며 주로 ’ㅎ‘을 밑받침으로 쓰는 게 특징이다.

요즘엔 축약어가 대세다. ’버카(버스카드)‘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오다)’ ’버정(버스정류장)‘ ’급질(급한 질문)‘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 ’이뭐병(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안습(안구에 습기차다)‘ ’미(뭐니)‘ 등이다.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 단어도 있다. ’병맛(이상하거나 거북한 대상을 흉보는 말)‘ ’잉여(취업난을 겪는 젊은 세대가 자조적으로 자신을 일컫는 말)‘ ’솔까말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열폭(열등감폭발)’ 등이다. 주로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외계어 등장은 언제=외계어 등장은 과거(90년대 초반) PC통신의 통신어체가 시작이라 볼 수 있다. 당시 서술어 끝부분에 ‘~여’라는 어미를 붙이는 것이 유행이었다. ‘안녕하세여’ ‘반가워여’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렇게 한글이 조금씩 파괴되면서 ‘셤(시험)’ ‘첨(처음)’ 등 축약어가 잇따라 쏟아져 나왔다. 한글의 파괴가 결국 네티즌에게는 ‘새로운 재미거리’로 등장하면서 향후 외계어가 탄생하는 계기가 된다.

90년대 후반에는 이모티콘(영어의 Emotion과 icon을 합쳐서 만들어진 단어로 감정을 표시하는 기호)이 유행했다. 특수문자를 이용해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자연스럽게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 자음과 모음, 특수 문자가 결합되는 외계어가 등장한다. 한글과 새로운 접목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일상어가 새로운 형태의 언어로 재탄생하게 된다. 중ㆍ고생을 중심으로 사용이 되더니 이제는 유치원생까지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이는 국어의 파괴로 이어지면서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외계어의 등장과 유행에 대해 “온라인 언어 사용에 대한 가이드 라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면서 “영어교육 이전에 한글 사용을 적극 권장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재설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