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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프에 담긴 클린턴의 사생활

중앙일보

입력

뉴스위크미국의 제42대 대통령 윌리엄 제퍼슨 클린턴(빌 클린턴)은 재임 중 곧잘 세인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어린애처럼 상대방의 관심을 끌려고 애쓰며, 욕심 많고, 짜증을 잘 내며, 패스트푸드나 정크 푸드를 지나치게 좋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클린턴의 그런 습성은 애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The Clinton Tapes’ What Was Bill Thinking? #옛 친구이자 백악관 비밀사관이었던 브랜치가 15년간 간직해온 대화 테이프를 풀어 쓴 대통령의 내면 세계

다음은 저술가 테일러 브랜치가 1994년 10월 18일자로 기록한 메모다. 클리턴과 워싱턴을 방문한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 사이에 벌어진 이야기다.

“옐친은 스트레스를 잘 견뎌내지 못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옐친의 현실 도피성 만성 음주벽이 술을 즐기는 유쾌한 러시아인의 일반적인 기준을 넘어선다고 말했다. 그런 음주벽이 러시아의 정치적 안정을 위태롭게 만들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옐친이 워싱턴에 머무른 이틀 밤 동안 스캔들, 아니 더 불길한 사건에 휘말리지 않은 건 순전히 행운이었다. 클린턴은 동트기 전에 급한 보고를 받았다. 경호원들이 펜실베이니아 애비뉴에 속옷 바람으로 혼자 나가 고함치며 택시를 잡으려는 만취한 옐친을 발견했다는 내용이었다. 옐친은 혀가 꼬부라진 채 황당해하는 경호원들과 말싸움을 했다. 그는 숙소인 영빈관 블레어 하우스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막무가내로 택시를 타고 나가 피자를 먹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클린턴에게 결말을 물었다. 클린턴이 ‘도리가 있나요. 그가 원하는 대로 피자를 대령할 수밖에요’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머리카락이 곤두설 만한 일화를 아무런 꾸밈 없이 담담하게 전하는 기자, 더구나 그런 흥미진진한 특종을 15년 동안 비밀로 간직해온 기자라면 진정으로 존경 받을 만하지 않는가? 브랜치가 최근 출간한 책을 보면서 놀라워 휘파람이 절로 나왔다. 그와 유사한 책을 숱하게 보았지만 그런 책은 정말 오래간만이다.

물론 처음 듣는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컨대 이런 비화도 있다. 그 다음 날 밤, 아니나 다를까 역시 술에 절은 옐친이 또다시 블레어 하우스의 경호원들을 따돌렸다(블레어 하우스 계단을 거꾸로 기어서 지하로 내려가다 경비원에게 발각돼 술 취한 침입자로 오인돼 총을 맞을 뻔했다).

브랜치의 절제된 표현에 따르면 옐친은 “잠시 위험에 처했다”. 그래서 우리는 하마터면 탈공산화된 러시아의 지도자가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 대통령의 국빈으로 워싱턴에 머무르는 동안 저격을 당했다는 기사를 읽을 뻔했다. 하지만 내 흥미를 자극한 점은 그런 폭로만이 아니다.

인간의 딜레마를 절묘하게 묘사한 만화를 떠올려 보자. 한 사람의 한쪽 어깨 위엔 천사가, 다른 쪽 어깨 위엔 악마가 올라타고 그들 각각이 한쪽 귀에 대고 속삭이는 그림 말이다. 클린턴의 8년 임기는 격랑의 세월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백악관을 관측한 사람들은 그 그림에서 누가 클린턴의 귀에 대고 달콤한 말을 속삭였는지 감을 잡았다.

대개는 클린턴의 정치 참모인 딕 모리스라고 생각했다. 모리스는 걸핏하면 여론조사를 하고 새로운 타협을 하라고 꼬드겨 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악마 역할을 수행했다. 정치적 타협이 얼마든지 가능하며 정치자금도 무한하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클린턴의 그 반대 쪽 어깨에 누가 앉아 있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이제 그 인물이 테일러 브랜치로 드러났다. 원칙을 중시하는 브랜치는 결코 자신을 천사로 내세우지 않으면서 옛 친구인 클린턴에게 정치와 인간성의 측면에서 무시해선 안 되는 더 나은 천사가 많다고 집요하게 상기시켰다. 최근 들어 브랜치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고매한 전기로 유명하지만 70년대까지만 해도 그는 밑지는 장사만 했다.

진보주의에 심취한 그와 빌(클린턴)은 1972년 복마전 같은 텍사스 민주당 본부에서 조지 맥거번 후보의 대선운동에 앞장섰다가 고배를 마셨다. 그러다 결국 클린턴이 1992년 민주당을 대선 연패의 늪에서 구해냈다. 클린턴은 곧바로 브랜치에게 자신의 임기 중 백악관의 비밀 사관(史官)이 돼 달라고 부탁했다.

클린턴과 브랜치의 백악관 대화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클린턴의 공식 일정 담당자인 낸시 헌라이히 외에는 아무도 몰랐다. 클린턴은 기분이 울적할 때나 바쁜 일정 중에도 짬이 나면 브랜치를 불렀다. 브랜치는 볼티모어의 자택에서 녹음기 두 대를 챙겨 가방에 넣고 차를 몰아 백악관으로 갔다.

백악관 밀실의 탁자 위에 녹음기를 놓고 대화를 시작했다. 대화가 끝나면 테이프들을 클린턴에게 넘겨주었고, 클린턴은 그 카세트 테이프를 양말 서랍에 숨겼다. 대신 브랜치는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그날의 대화를 떠올려 다시 테이프에 녹음했다. 그 녹취록이 최근 발간된 ‘클린턴 테이프(The Clinton Tapes: Wrestling History With the President)’다.

브랜치의 책을 보면 그는 딕 모리스가 클린턴에게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거의 몰랐던 듯하다(클린턴은 그에게 여러 차례 그런 소문을 강하게 부인했다). 모리스도 1960년대의 집요한 진보주의자인 브랜치가 대통령의 한쪽 귀를 독차지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듯하다(브랜치는 1993년부터 2001년까지 클린턴을 79차례나 독대했다).

그러나 브랜치에겐 또 다른 원칙상의 문제가 있었다. 클린턴이 진짜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브랜치에게 세파에 물들지 않은 조언을 원했다. 이런 식으로 오랜 우정을 이용하는 일이 과연 정당할까? 브랜치는 별로 고민하지 않고 정당하다고 결론 냈다.

브랜치의 책은 방문객이 백악관 바로 곁에 픽업 트럭을 세워 놔도 무방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알카에다는 사악한 소문에 불과했고,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완전히 발목이 묶였다’고 간주되던 시절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정치 분야에선 건강보험 개혁이 가장 큰 쟁점이었고 여러 저명한 공화당 인사가 연방 정부는 폐쇄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던 시점이다.

브랜치의 녹음 테이프가 돌아가기 시작했을 때는 오클라호마 시티와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은 멀쩡했다. 그러나 1995년 4월 19일 연방정부 건물의 폭탄 테러로 169명의 사망자와 5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2001년 9·11 테러로 완전히 붕괴했다. 대조적으로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클린턴은 브랜치에게 쿠바 제재가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남의 약점을 이용하는 실패작”이라고 말했지만 제재를 철회하진 못했다. 시리아의 아사드 왕조는 늘 국무부, 백악관과 핫라인을 갖고 있었다. 아울러 이스라엘 정치의 변덕성과 유대인 ‘정착촌 건설’의 확산에 대한 우려도 매일 있었다.

사실 나는 재임 중 클린턴을 조금도 존경하지 않았다. 그러나 브랜치의 책에 기록된 클린턴의 견해와 행동을 보면 내 생각보다 훨씬 나았다는 생각이 든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클린턴은 세계화가 거스르기 힘든 대세이며 그에 따르는 상호의존의 필요성을 직감했다는 점이 드러난다.

그러나 클린턴과 브랜치는 놀라울 만큼 많은 시간을 세계 경제의 변방에 위치한 두 섬 이야기에 할애했다. 아일랜드와 아이티였다. 각각의 경우 시시비비의 문제가 생각보다 더 많이 논의됐다. 물론 민주당 출신 대통령으로서 아일랜드의 통일을 옹호한다고 해서 국내 유권자의 표를 잃을 가능성은 없었다.

그러나 클린턴(그리고 아일랜드 문제의 최고 자문관이었던 낸시 소더버그)은 아일랜드 구교파 신페인당의 게리 애덤스 당수가 실제로 ‘무력 투쟁’을 포기할 의사가 있다는 데 내기를 걸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그들은 전통적으로 특별한 관계인 동맹국 영국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위험까지도 감수키로 했다.

막상 그 판단이 기대 이상의 효과를 내자 클린턴은 벨파스트(북아일랜드 수도)와 더블린(아일랜드 수도)을 다녀온 뒤 브랜치에게 “그런 기분 좋은 날이 며칠만 돼도” 정치를 하는 보람이 있겠다고 열정적으로 말한다. 더 말해서 무엇하랴. 아이티 문제에선 미군 파병을 원하는 미국인 유권자는 없었다.

그래서 브랜치는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아이티의 장-베르트랑 아리스티드 망명 대통령을 복권시키라고 탄원하면서도 약간의 꺼림칙함을 느낀 듯하다(브랜치가 이미 오래전에 밝힌 유일한 이야기다). 아이티 사람들은 브랜치를 좋아한다. 브랜치는 그들의 혁명이 미국의 생존에 끼친 영향을 이해했고, 수십 년 동안 윽박지름과 수수방관으로 쌓인 미국의 빚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아리스티드가 교착 상태인 아이티 문제를 푸는 열쇠였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클린턴과 그의 열정적인 친구 브랜치 사이의 번민에 찬 대화, 그리고 아이티의 새 출발을 재차 시도하겠다는 클린턴의 최종 약속은 이상하게도 감동적이다.

브랜치가 미국 외교 정책의 방향을 선회하는 데 개인의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점에서 일말의 가책을 느낀다고 해도 그는 적어도 지구상에서 가장 비참하고 가장 많이 착취당한 사람들 중 일부를 위해 대통령과의 ‘친분’을 활용했다고 주장해도 무방할 듯하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잘 아는 클린턴의 짜증에 관한 문제가 언급되는 부문에선 다소 흥미가 떨어진다.

오히려 클린턴이 정치 게임(이번에는 워싱턴) 그 자체를 즐기는 성향이 훨씬 더 재미있다. 브랜치가 우익의 당파적인 행동에 우려를 표할 때 클린턴은 만약 입장이 뒤바뀌었다면 자신도 그런 전략을 구사하겠다고 말했다. “난 그들에게 자신들이 생각하는 예산안을 제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해야 한다.

탁상공론은 그쳐야 한다. 그들이 제대로 하는 일은 정치뿐이다.” 1993년 당시 이 점을 깨닫지 못한 사실을 후회하는 공화당 의원들이 분명히 있을 듯하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순간이 있다. 클린턴은 자기 휘하에서 합참의장을 지낸 콜린 파월과 자신의 재선 도전에서 맞부딪칠 가능성에 관해 태연히 대응했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조지 매클레란 대장이 에이브러햄 링컨에게 도전한 이래 그런 일은 없었고, 군의 민간 통솔이 다시 한번 쟁점이 될 가능성도 없다며 태평이었다. 두 사람 사이의 견해차는 컸다. 동성애자의 군복무 허용 여부와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를 무너뜨리려고 무력 사용을 승인하는 문제 등이다.

브랜치는 그런 문제에서 클린턴이 언제나 전적으로 실용적이면서도 희한하게도 거기에 내포된 더 큰 문제를 꿰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윈스턴 처칠이 미국인들은 언제나 올바른 일을 하지만 다른 대안이 전부 다 실패했을 때야 그렇게 한다는 유명한 단상은 마치 클린턴을 염두에 둔 듯하다.

브랜치는 중간 중간에 클린턴과 파월의 자녀들이 8년이란 기간 동안 성장하는 이야기를 삽입해 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했다. 하지만 감상적인 면은 없다. 브랜치는 백악관 대화 기록에서 두 가지만 나중에 덧붙였다. 하나는 딕 게파트(하원 민주당 원내총무로 클린턴의 대배심 증언을 촉구했다)를 보는 힐러리 클린턴의 일곱 철자의 촌철살인 평이다(‘asshole’이라는 욕설이었다).

브랜치는 그 말을 클린턴 앞에서 테이프에서 지웠지만 이 책에서는 복구했다. 다른 한 대목에서는 깅그리치가 이끄는 공화당이 연방 정부를 일시적으로 폐쇄했기 때문에 모니카 르윈스키(클린턴의 성추문 상대) 같은 임시직 인턴을 채용하게 됐다는 냉소적인 고찰을 삽입했다.

좀 더 냉소적인 작가라면 그런 우연한 계기를 기화로 공화당은 자신들이 원하는 곤경으로 클린턴을 몰아넣었고, 클린턴의 최대 정적들이 해내지 못한 일을 그 스스로 하도록 만들었다고 지적했을지도 모른다(탄핵을 말한다). 놀라울 만큼 진실된 브랜치에게는 클린턴이 마침내 (르윈스키 성추문의 거의) 전부를 고백했고, 그것도 자기 부인이 힐러리 클린턴의 고문으로 일하려고 한 시기에 그랬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다시는 자신의 나쁜 행실 때문에 타인들을 당혹스럽게 하지 않겠다고 하는 클린턴의 다짐을 여러 번 들은 ‘빌의 친구들’은 이 사건에 관해서는 거의 입을 다물었다. 나는 브랜치가 자신의 순진함을 고백하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 또 브랜치가 시카고의 민주당 전당대회에 갔을 때 그 이전엔 딕 모리스에 관한 소문을 믿지 않았지만 자신의 호텔방 맞은 편 방문에 걸린 ‘모리스’란 명패를 보고 놀랐다고 묘사하는 방식도 매우 신선하다.

책에는 그 외에도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인상도 들어 있다. 시라크는 퇴임했기 때문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래도 미국인이라면 그가 과연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 책에서 확인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네타냐후는 재차 총리가 됐기 때문에 이 책을 통해 과거 그의 모습을 돌이켜 보는 일이 자못 흥미로울 듯하다. 또 클린턴이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얼마나 혐오했는지 알려고(골프장에서 한 젊은이에게 말한 대목이다) 목차를 찾아보면 아마 놀랄지도 모른다. 브랜치는 그런 이야기를 세련된 문체로 쓰진 않았다.

예를 들어 겨우 몇 백 단어의 단락에서 ‘갈고리’ ‘괴로운 시련’ ‘탄압’ ‘대치’ ‘중재’ ‘열쇠’ 그리고 심지어 ‘내기 돈을 올렸다’ 같은 단어가 줄줄이 등장한다. 또 ‘멍텅구리’나, 뜻도 아리송한 ‘바위투성이의 만병통치약’이라는 표현도 나온다. 그러나, 아니 어쩌면 오히려 미사여구가 없기 때문에, 브랜치의 책은 구술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는지 모른다.

이 책의 경우는 백악관 대화의 녹음을 1인칭도 3인칭도 아닌 ‘2인칭’ 화자가 풀었다. 이 화자의 정직성과 심지어 순진함은 클린턴 본인의 기회주의와 발뺌을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클린턴은 민권운동 당시부터 동지였던 친구 브랜치에게는 모든 일이 ‘is(영어 단어)’의 의미에 달려 있다고 말하진 못했다.

[르윈스키 성추문 청문회에서 한 검사가 클린턴 대통령과 어떤 형태의 성행위도 없었다는 르윈스키의 증언이 위증이라며 “그게 맞습니까(Is that correct?)”라고 묻자 클린턴은 “그야 ‘is’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따라 달라지겠죠(It depends on what the meaning of the word ‘is’ is)”라고 대답했다.]

[필자는 뉴스위크 기고가로 배너티 페어지 칼럼니스트다.]

CHRISTOPHER HITCHENS / 번역·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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