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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수준 학자는 10명 중 3명뿐” 8250억 해외석학 유치사업 겉도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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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울 소재 S대의 A교수는 최근 황당한 경험을 했다. 2007년 임용 과정에서 경합했던 B교수가 WCU(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 사업을 통해 해외 석학 자격으로 학교에 초빙된 것이었다. A교수는 “상대적으로 우수한 국내 교수에게 밀려 채용되지 못한 사람이 더 많은 연봉을 받고 초빙된 사실을 알고 자존심이 상했다”고 말했다. 같은 대학의 C교수는 지난해 해외 석학 유치 프로그램인 WCU 사업에 지원하기 위해 평소 알던 미국 모 대학의 노벨상 수상자 J교수에게 의향을 물었다가 낭패를 봤다. J교수가 몸값으로 무려 1000억원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인력을 확보하지 못한 C교수는 결국 사업단 신청을 포기했다.

5년간 8250억원의 세금이 들어가는 WCU 사업에 대해 부실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해부터 세계 석학을 유치해 대학의 연구 수준을 업그레이드시키겠다는 취지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대학이 유치한 학자 중에는 수준 미달인 경우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K대학의 유모 교수는 “대학들의 준비기간이 짧아 함량 미달의 학자도 유치하고 사업 신청부터 한 경우가 많아 사업이 제대로 효과를 거둘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 이상민(자유선진당) 의원은 6일 교과부 국정감사에서 “국내 교수진으로 자체 평가단을 꾸려 WCU 사업에 초빙된 해외 학자들을 분석해 본 결과 세계적 수준의 석학은 29%밖에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해외 유치 학자의 71%는 국내 학자로 대체가 가능한 수준”이라며 “차라리 국내 우수 연구자에게 예산을 지원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김세연 의원도 “무리하게 해외 학자를 초빙하면서 몸값만 부풀렸다”며 “올해 초빙된 해외 학자 33명 중 15명은 2개월도 체류하지 않았는데 이런 학자들에게 1억5000만원에서 2억원에 달하는 연봉을 지급하는 것은 세금 낭비”라고 따졌다.

WCU 사업 부실 논란은 지난해 사업단 선정과정에서도 있었다. 사업공고 기간과 서류 제출 기간은 3개월, 심사 기간은 한 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올해 5월에는 6개 대학의 7개 사업단이 당초 계획대로 해외 학자를 유치하지 못해 3년간 사업비를 삭감당했다.

 ◆절반의 실패=교수들은 WCU 사업의 ▶학술 교류 네트워크 구축 ▶연구역량의 질적 향상 ▶학과 간 장벽 제거 ▶융합학문 연구 등의 취지에 공감한다. 사업 첫해 시행착오도 있지만 문제점을 개선해 연구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조지형 이화여대 연구처장은 “학술 교류 네트워크가 연구역량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교수들이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바이오 레독스 시스템(몸속 산소의 작용)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 조앤 밸런타인(미국 UCLA) 교수가 포함된 이화여대 남원우 교수 사업단, 반도체 산업에 활용도가 높은 타원편광분석 분야의 선구자 데이비드 에스피너스(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교수를 초빙한 경희대 김영동 교수 사업단, 뇌공학 분야의 석학을 초빙한 고려대 이성환 교수 사업단 등은 세계적 연구 성과가 기대되는 분야다. 한국연구재단 이용모 국제협력센터장은 “사업단별로 치밀하고 과감한 지원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종찬 기자

◆WCU(World Class University) 사업=해외 석학을 유치해 국내 대학에 경쟁력을 불어넣고 융·복합 학문을 육성하기 위한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 사업이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간 전국 36개 대학 155개 사업단에 연간 1650억원씩 총 8250억원을 지원한다. 이 가운데 3분의 2를 해외 석학(338명) 유치에 투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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