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학생 美 카지노서 인턴사원 미끼 생고생

중앙일보

입력 1999.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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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매일 8시간 이상 담배 꽁초를 줍고 바닥 걸레질만 하면서 영어를 배우고 미국 사회를 체험할 수 있겠습니까. " (미국 호텔 인턴사원 L군)

최근 일부 부유층 인사들의 거액 해외 원정 도박이 물의를 빚고 있는 가운데 라스베이거스 등지의 미국 카지노 업체들이 한국 젊은이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카지노 인턴사원' 모집에 나서 파문이 일고 있다.

해외 인턴사원 송출 전문업체인 W사가 지난달부터 시작한 미국 카지노 인턴사원 모집엔 지금까지 수백명의 대학생 및 대졸 미취업자들이 지원, 다음달 1백명이 출국키로 확정되는 등 연말까지 최소 3백명 이상이 떠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카지노 업체들이 한국 청년들을 필요로 하는 것은 최근 미국내 도박장을 찾는 한국인들이 국제통화기금 (IMF) 관리체제 이전 보다 늘고 있기 때문.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이 많이 필요하자 국내 미취업 젊은이들을 '인턴' 이란 명목으로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전국의 대학 캠퍼스에 뿌려지고 있는 모집 전단의 '날마다 새로운 이벤트와 화려한 쇼가 있는 곳' 이라는 화려한 선전 문구와는 달리 카지노 인턴사원들이 카지노 객장과 호텔에서 하는 일이 환전원이나 웨이트리스 등 단순 노동직으로 본격적인 딜러 및 카지노 경영 수업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점이다.

업체에선 '돈을 벌면서 미국을 생생히 경험하고 영어를 배운다' 고 선전하고 있으나 급여를 받는다 해도 식비에도 못미치는 정도고 교육은 아예 없다는 게 이 업체를 통해 미국내 호텔에서 인턴을 하고 있는 학생들 (ID:고발자) 의 말이다.

W사의 인터넷 사이트에 항의의 글을 올린 이 학생은 "한국에서 충분한 사전 학습이 없는 한 1년 동안 미국 호텔에서 일해봐야 발음도 엉터리인 영어가 겨우 될까 말까 하다. 또 거의 굶으면서 1년을 버티지 않는 이상 돈을 버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 분노를 터뜨렸다.

그러나 W사측은 "인턴이란 고생을 감수하며 일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어학연수와는 다르다" 고 말하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취업준비라는 인턴 본연의 취지와 미국 카지노 인턴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점. 카지노 업체에서 카지노 관련 교육을 하는 일은 애당초 전무한 경우가 대부분이며, 미국 입국시 발급받는 'J1 비자' 는 1년 뒤엔 반드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 있어 취업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또 귀국 후 2년 이내엔 취업 목적의 미국 입국이 금지돼 다른 분야의 미국 취업마저 할 수 없다.

결국 일자리를 찾지 못한 국내의 고학력 젊은이들이 수수료.항공료 등으로 3천달러에 이르는 외화를 지불해가며 미국 도박장에서 1년 동안 공짜로 잡일만 해주는 셈이다.

태성전문대 金형서 (카지노 전공) 교수는 "카지노 딜러.경영은 전문 기술 및 소양 교육이 필수" 라며 "이런 교육 과정이 없는 인턴은 아무 의미가 없다" 고 지적했다.

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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