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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시읽기] 김연신시집 '시인의 바깥에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김연신 약력>

▶52년 부산출생

▶고대 법학과

▶94년 '문학과사회' 에 '한남대교 위의 화살표' 등으로 등단

▶시집 '시를 쓰기 위하여'

▶현 대우전자 이사

김연신은 대기업의 회사원, 그 중에서도 중역이라는, 시인으로서는 특이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한 직책에 있는 사람의 일상은 매우 바쁘고 각박하고 비시적 (非詩的) 일 것이다.

비시적이라고?……비시적이라……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이 세상에 비시적인 것은 없다. 하지만 엄밀하지 않은 의미에서, 즉 '상대적' 으로 '비시적' 이라는 말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근면하고 유능하여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시를 쓰는 게 가능할까? 왜 그는 시를 쓰려고 할까? 어떤 시를 쓸까? 시의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은 좁다. 그래서 현실.일상의 덩치가 너무 크면 들어가기가 힘들 것이다.

"작은 새가 나무 끝에서 우짖는 것을 보았다. /온몸을 아래위로 흔들어야/한 소절씩 소리를 낼 수 있었다. /내 시도 그러하다. " 시집 머리에 있는 '시인의 말' 이다.

아름답다. 통렬하다. '시인 (詩人) 의 바깥에서' 를 읽으면 시란 무엇인가, 새삼 생각해 보게 된다.

'참을 수 없는 힘이 터져 나와' '한 사람 속에 공존하는 두 개 (세 개, 네 개) 의 삶' 을 하나로 둑 터지게 하는 것. 하긴 그 둑도 시다.

"그 남자는 말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온몸에 말들이 쌓이고 넘쳐서 마치 요독증 (尿毒症)에 걸린 사람같이 죽어갈 것인가? 혹은 살갗을 뚫고라도 말들이 비어져나와서 꼬물거리면서 기어다닐 것인가. " (시 '어패류 (魚貝類) 의 생성에 관한 보고' 중)

말, 아니 시 또는 시쓰기에 대한 이런 미욱스런 욕구가, 순정한 욕망이 시집 곳곳에서 단단한 종기 속의 빠른 북소리처럼 울린다.

평론가 홍정선이 시집 해설에서 정의했듯이 김연신은 "시를 맞아들이기 위해 산책을 하고, 여행을 떠나고, 서가를 뒤지고, 말을 다듬는 사람, 몸으로 생각으로 시를 향해 유랑과 편력을 거듭하는 사람이다. " 자신이 시인의 바깥에 있다고 겸허히 생각하는 시인이다.

그 생각이 그를 더욱 시에 헌신하게 하고 순애하게 한다. 누군들 한 편의 시짓기가 끝나면 시인의 바깥에 있지 않을까. 시인의 바깥에서 김연신은 순정하다.

'한 소절씩 소리내기 위하여' '온몸을 위아래로 흔' 들고 있다.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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