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독설회견…'묻지마' 회견

중앙일보

입력 1999.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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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대중씨는 모든 것이 거짓말이며…끝을 모르는 욕심입니다. "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입술을 깨물듯 단호한 표정으로 회견문을 읽어내려갔다.

26일 오전 9시 상도동. 30여명의 취재진으로 꽉 찬 5평 남짓한 거실의 회견장은 YS가 쏟아내는 독설 (毒舌) 로 열기가 더했다.

"김대중씨는 정치보복 화신" "공산당을 닮아가는 게 김대중 정권" "멸망한 유신정권의 망령을 다시 본다" "내각제 사기극에 준엄한 심판이 있을 것. "

그 순간 YS는 전직대통령이 아닌 과거의 야당투사였다. 거친 말투, 돋보기를 썼지만 국민에게 익숙한 투쟁본능이 서린 YS의 눈빛 탓이다.

YS는 "지식인과 지도층이 침묵하는 현실을 보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고 12분간의 회견문 낭독을 끝냈다.

원색적 어휘가 난무하는 회견장은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어 기자들이 질문을 하려 했다.

그러나 YS는 "이 (회견문) 안에 모든 게 들어있기 때문에 질문은 받지 않겠다" 고 팔을 내저었다.

그리고 자리를 떴다. 배석했던 YS의 청와대시절 김용태 전 비서실장.유도재 전 총무수석과, 박종웅 의원 등이 기자들을 막아섰다.

YS는 왜 서둘러 끝냈을까. 현 정권에 대한 그의 험악한 비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동시에 YS의 행태에 대한 비판도 커지고 있다.

"후3金 시대를 재개하려는 노욕 (老慾)" "IMF 장본인으로 자격없다" "새 천년을 3金정치의 구태로 더럽히지 말라" 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기자들은 내각제 포기 문제와 함께 이에 대해 물으려 했다. 국민도 YS의 입을 통해 듣고 따지고 싶은 게 바로 이 부분이다.

그러나 金전대통령은 이를 묵살하고 자기 얘기만 늘어놓았다. YS는 90년 내각제 각서파동 때도 그랬다. 그는 쓰지 않았다고 잡아떼던 각서가 보도되자 그 후 1년간 문답식 기자회견을 외면했다.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슬그머니 넘기는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DJP의 내각제 약속파기를 문제삼는 그의 주장은 근거가 있다.

그러나 일방적인 회견으로 인해 설득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국민이 정작 실망한 것은 정정당당함을 잃은 전직대통령의 자세였을 것이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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