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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선거판 잔꾀대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32년 전인 67년 6월 8일 치러진 7대 총선에 대해 당시 야당인 신민당이 총선 두달뒤 발행한 '6.8 부정선거백서' 는 "사상 유례없는 부정선거이므로 무효이며, 그것을 바로잡는 데는 전면 재선거의 길밖에 없다" 고 주장했다.

여당인 공화당의 선거부정에 대해 백서는 관청의 선거개입과 야당인사 매수.폭행, 참관방해 등을 열거하고 대리투표, 공개투표, 표 바꿔치기, 샌드위치 계표 (計票) , 빈대표.곰보표 만들기 등 부정수법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했다.

빈대표나 곰보표는 상대 후보에게 찍은 투표용지에 일부러 인주나 스탬프 자국을 내 무효표로 만든 것이다.

여당의 돈뿌리기도 소개돼 있는데 적게는 2백원에서 경로당같은 곳에는 5천원까지 뿌린 것으로 기록돼 있다.

6.8 총선은 한편으로 김대중 (金大中) 신민당후보가 관권개입을 극복하고 목포에서 당당히 승리한 점에서도 야당사의 한 장을 차지할 만하다.

박정희 (朴正熙) 당시 대통령은 목포를 '정책지구' 로 점찍고 이례적으로 이곳에서 국무회의를 여는 등 발벗고 나섰지만 金후보를 꺾는 데 실패했다.

기본적으로 목포 유권자의 金후보 지지 덕분이지만 신민당의 녹록지 않은 '자생력' 도 큰 몫을 했다.

지금은 여권의 실력자가 된 당시 金후보 측근은 "공화당이 금품을 살포하려고 여당성향 유권자 집대문에는 표, 야당편 집에는 ×표를 해놓았는데 우리가 밤새 돌아다니며 기호를 반대로 고쳐 돈뿌리기에 일대 혼선을 일으켜 놓았다" 고 자랑섞인 회고를 하기도 했다.

선거판 잔꾀 대결에서 지금도 전설적인 일화가 전해 내려오는 인물로 엄창록 (嚴昌錄.작고) 씨가 있다.

상대후보 이름으로 유권자들을 음식점에 거짓 초청하거나, 요즘 돈으로 1천원 정도의 금액을 봉투에 넣어 상대후보 이름으로 돌림으로써 반사이익을 얻는 '잔머리 굴리기' 가 그의 전매특허였던 모양이다.

이런 방법은 의외로 효과가 커서 야당진영에서 오래 활약하던 嚴씨를 나중에 중앙정보부 (국정원의 전신)가 반강제로 끌어들일 정도였다고 한다.

이번 서울.인천의 재선거에서도 '자장면 시키신 분' 소동이 빚어졌다.

한나라당 선거사무실에 주문하지도 않은 자장면.짬뽕.고량주가 대량으로 배달돼 한나라당은 "우리를 골탕먹이려는 고전적인 수법" , 자민련은 "자작극" 이라며 시비가 붙은 것이다.60년대에 비해 선거풍토가 맑아졌다지만 잔꾀부리기는 여전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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