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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史哲은 마음에서, 마음은 뇌에서 나와 인문학, 과학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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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호 09면

BBC ‘무경계 5’(경계를 허문 과학서 5선) 시리즈가 오늘로 막을 내린다. 마지막 초대 손님은 존 브록만이다. 그는 물리학 박사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다윈의 서재를 빛내 줬던 특급 과학자 반열에 있는 사람도 아니고, 과학 분야의 베스트셀러를 쓰는 일급 저자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초특급 과학자와 저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도서 저작권 에이전시의 대표다. 일반 독자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그가 무경계 5의 대미를 장식할 인물로 선정됐다.

장대익 교수가 열어본 21세기 다윈의 서재<15>-존 브록만 『과학의 최전선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다윈=브록만 선생, 반갑습니다. 만나 보고 싶었습니다.

브록만=‘다윈의 서재’를 꼬박꼬박 보고 있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열혈 팬이기도 하지만 도킨스를 비롯한 제 고객들이 초대 손님으로 나오는 프로라 모니터링 차원에서도 잘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초대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다윈=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처음엔 『두 문화』를 쓴 C P 스노 선생을 모실까 했어요. 과학자요, 소설가인 그가 딱 50년 전에 그 책을 통해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소통 불능 상태를 개탄하지 않았습니까? ‘무경계 5’는 두 문화 사이의 장벽을 허물자는 취지의 방송이니 딱 적합한 책이었죠.

브록만=그 책은 제 인생을 바꾼 책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저를 부르셨는지요?

다윈=스노 선생은 문제를 제기하고 끝났지만 당신은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 사람이니까요. 선생이 예전에 쓴 ‘제3의 문화’라는 글도 흥미롭게 읽어 봤어요. 인문적 소양으로 무장된 탁월한 과학자들이 자신의 작업과 저술을 통해 물질·우주·생명뿐 아니라 인간의 존재와 삶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도록 융합의 마당을 마련해 주고 있더군요. 오늘 책의 제목처럼 ‘과학의 최전선에서 인문학을 만나는 경험’이겠죠. 그런데 대체 그 많은 초특급 저자들을 어떻게 다 불러 봤답니까? 핑커, 데닛, 다이아몬드, 민스키, 스몰린…. 정말 최호화 군단이에요.

브록만=멍석을 깔아준 것뿐이죠. 만일 선생님께서 나서셨다면 더 대단한 분들을 모셨을걸요. 사실, 1980년대 초 제 주변의 여러 과학자와 경험주의 사상가들이 중심이 돼 작은 모임을 꾸린 적이 있어요. ‘리얼리티 클럽’은 그때 우리들이 여러 장소를 전전하면서 만든 비공식 모임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88년에 ‘에지’(www.edge.org)라는 웹사이트 포럼을 개설하고 ‘에지재단’이라는 비영리재단을 만들기에 이르렀죠. 저는 이 포럼과 재단의 일을 하면서 세상을 선도할 만한 책을 기획하고 전 세계 출판사에 중계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다윈=말하자면 ‘지식 브로커’인 셈이네요, 하하. 저도 거의 매주 에지를 방문해 새로운 지식의 흐름을 배우고 갑니다. 단골손님으로서 오늘 주인장을 인터뷰하고 있는 거죠. 그런데 에지의 대문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더군요. “우리의 모토는 지식의 최전선으로 찾아가 가장 복잡하고 정치한 정신들을 찾아내고, 그들을 한방에 몰아넣어 그들이 자기 자신에게 묻고 있는 질문들을 서로에게 퍼붓게 만드는 것이다.”

브록만=네, 맞습니다. 그게 제3의 문화를 추구하는 우리의 철학입니다. 지식에 대한 경계 없는 탐구를 즐기는 사람들의 놀이터를 만들고 싶은 거죠. 그런데 현대사회에서 이 경계를 무너뜨리는 무기가 바로 과학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에지는 하나의 집단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관점이라 해야 할 것 같아요.

다윈=음, “집단이 아니라 관점”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입니다만 제3의 문화를 얘기하면서 과학적 관점을 강조하다 보면 두 문화 간의 골이 더 깊어지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살짝 걱정도 됩니다. 전통적인 인문학자는 당신을 싫어할 것 같아요.

브록만=저는 지금 인문학을 생물학이나 물리학으로 환원시키려는 게 아닙니다. 다만 예술과 문학·역사·정치학 등 인문학의 전 분야가 이제 과학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때라고 말하는 중입니다. 예술·철학·문학은 인간 마음의 산물이고 인간의 마음은 뇌의 산물이죠. 그리고 인간의 뇌는 유전체에 의해 조직되고 진화해 왔습니다. 과학에 입각한 인문주의는 이런 사실들을 자신의 지적 작업에 진지하게 반영해야 합니다.

다윈=나도 기본적으로 공감합니다. 시공간에 대해 논의하면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빼놓거나, 인간의 정신에 대해 말하면서 내 진화론을 언급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아무리 정교하고 현란한 인문학적 논의일지라도 가치가 없는 것이겠죠. 그래서 나도 인문학은 적어도 현대과학의 성과들과 일관적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과학에 무지하거나 과학을 무시한 인문학도 문제지만 인문학적 상상력이 전혀 없는 과학도 문제이지 않습니까? 스노 선생이 셰익스피어도 모르는 과학자가 많다고 개탄했었는데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거든요.

브록만=불행히도 그건 사실입니다. 제가 에지포럼과 재단을 만든 이유가 바로 인문적 소양이 있는 과학자와 과학에 귀 기울이는 인문학자 간의 만남을 주선하기 위한 것이었어요.

다윈=에지를 보고 있으면 꼭 프랑스 지식인들의 ‘살롱’이 연상됩니다. 술과 음식만 없다는 것뿐이지.

브록만=오, 그러세요? 오히려 저는 선생님의 할아버지께서 조직한 ‘만월회(Lunar society)’를 벤치마킹했어요. 선생님의 친할아버지인 에라스머스 다윈, 그리고 외할아버지인 조시아 웨지우드 등이 주축이 되지 않았습니까? 과학자·소설가·정치사상가 등이 달이 찰 때마다 모여 자연과 인간, 사회와 정치를 논하던 모임이었죠. 당시를 생각해 보면 정말 대단한 라인업이었어요.

다윈=아, 그렇네요. 나도 언젠가 만월회 같은 모임을 계승해 보고 싶었죠. 하지만 그러기엔 내 리더십이 문제였어요. 기획력도 떨어지고…. 어쨌든 선생은 현대지식인 사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 허브 중 하나예요. 지난번에 소개된 바라바시의 네트워크 이론에 따르면 말이죠. 아니, 어쩌면 선생은 제3의 문화를 이끄는 드림팀의 구단주인지도 모르죠. 하하.

※“브록만이 특급 저자들을 이용해 장사해 먹는 사람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 그의 고객인 미국의 인지철학자 대니얼 데닛은 내게 이렇게 답했다. “글쎄, 존은 내가 만나 본 최고의 기획자요, 편집자지.”
※다음 번부터는 ‘경배5’(경제경영 배후의 과학서 5선) 시리즈가 진행되고 첫 책으로 조지 애커로프와 로버트 쉴러의 『야성적 충동』이 소개됩니다.


KAIST 졸. 서울대에서 진화론의 역사와 철학 연구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덕여대에서 자연과 인문의 공생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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