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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 삼촌, 옛 동소문 … 100년 전 조선을 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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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꼭 100년 전이었다. 독일의 베네딕도수도회 신부가 조선에 왔다. 유럽에서 뱃길로 수에즈 운하, 동남 아시아, 중국, 일본을 거쳐 조선에 왔다. 빈손으로 온 게 아니다. 카메라를 들고 왔다. 그래서 1911년과 25년, 두 차례에 걸쳐 조선의 사람과 조선의 풍경을 사진과 동영상인 무성영화로 찍었다. 35㎜필름으로 무려 1만5000m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일종의 기록영화였다.

100년 전 독일 베네딕도 수도회 소속의 수도사들이 멍석 위에서 한국식 밥상을 받고 식사 중이다. 젓가락질이 꽤 익숙해 보인다.


부산에서 서울, 원산, 금강산을 거쳐 간도까지 가서 직접 촬영을 했던 베네딕도회 노르베르트 베버(1870~1956) 신부는 “내가 그토록 빨리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나라, 조선”이라며 조선땅과 조선인에 대한 애정을 표시했다. 그는 독일로 귀국할 때 이 필름을 가져갔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때 필름이 사라졌다. 히틀러의 탄압을 피해 수도자들이 중요한 물품을 모두 숨긴 것이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찾을 길이 없었다. 그러다 1977년 독일 성베네딕도 수도회 오틸리엔 수도원의 지하실 공사 때 우연히 발견됐다.

베네딕도수도회는 올해 ‘한국진출 100년’을 맞아 이 기록영화를 DVD로 제작해 공개했다. 제목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베네딕도 미디어, 2만원)다. 이 필름을 본 김홍남(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일제강점기는 말과 글뿐 아니라 한국인의 민속까지 말살하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다. 이 영화에는 당시의 의식주와 장례풍습, 마을과 운동회 모습 등이 소상히 기록돼 있다. 참으로 놀랄만한 보물급 자료”라고 평했다.

안중근 의사가 서거한 이듬해인 1911년 황해도 신천군의 안중근 의사 본가를 찾아 찍은 유가족(삼촌과 숙모, 사촌들) 사진.


◆금강산 장안사 등 사라진 풍경 오롯이=독일로 돌아간 베버 신부는 1927년에 뮌헨 민속박물관에서 처음으로 이 영화를 틀었다. 그리고 남부 독일을 돌며 100여 개 극장에서 상영했다. “(시골과 달리) 조선의 서울은 사람들로 붐볐다”라는 자막이 화면 가득 나간 뒤 이어진 장면에서 독일 관객들은 폭소를 터뜨렸다고 한다. 당시의 서울이 독일인의 눈에는 한적하게만 보였기 때문이다.

북한산 기슭에 옹기종기 자리 잡은 마을을 바라보며 베버 신부는 “조선 사람들은 자연을 정복하기보다 그 찬란함 속으로 들어가기를 꿈꾼다”며 한국적 자연관에 감탄하기도 했다. 그밖에도 지금은 사라져버린 옛 동소문(혜화문)과 북대문, 박해를 받던 천주교인들이 숨어 살았던 옹기 마을 등도 필름에 담았다.

베버 신부는 서울을 거쳐 금강산도 찾았다. 한국전쟁 때 완전히 소실됐던 장안사의 정경도 담았다. 대웅전과 법당 안의 불상, 사천왕 등의 모습을 오롯이 볼 수 있다. “아무리 간청해도 승방은 열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문틈 사이로 찍어 더욱 소중하다”는 자막과 함께 스님들의 방을 몰래 찍은 화면도 있다. 방의 벽에는 역대 조사들의 모습을 그린 족자가 여러 개 걸려 있었다. 내금강에 들어가서 묘길상 마애불도 찍었다. 베버 신부는 “바위에 새긴 부처의 모습을 보면서 조선사람들의 대단한 존경심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당시 모습을 찾을 수 없는 동소문(혜화문). [성베네딕도 수도회 제공]


◆몰락하는 민족에게 보내는 작별인사=베버 신부가 처음 조선을 찾은 게 1911년이다. 안중근 의사가 서거한 이듬해였다. 베버 신부는 안중근 의사 소식을 듣고 직접 황해도 신천군에 있는 안 의사의 본가를 찾아갔다. 거기서 안 의사의 유가족인 삼촌과 숙모, 사촌들의 모습을 찍었다. 안중근 의사는 외국인 홍빌렘 신부에게 세례를 받은 천주교 신자였다. 그의 세례명이 도마(토마스)였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이듬해, 베버 신부는 조선의 운명에 가슴 아파했다. 한국 땅을 떠나면서 그는 “사라져가는 이 나라를 향해 우리는 애써 ‘대만만세’라고 작별인사를 보낸다. 한 국가로서 이 민족은 몰락하고 있다. 마음이 따뜻한 이 민족에게 파도 너머로 작별인사를 보낸다. 나의 심정은 착잡하다. 마치 한 민족을 무덤에 묻고 돌아오는, 장례행렬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처럼”이라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베버 신부는 동아프리카의 탄자니아에서 말년을 보내다 56년에 세상을 떠났다. 054-971-0630(www.benedictmedia.co.kr).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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