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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고구려 왕족 인터뷰] 60대 후손 고마 후미야스 (高麗文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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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 고구려 왕족 약광의 60대 후손 고마 후미야스가 일본땅에 처음 뿌리를 내린 조상을 모신 신사의 본전을 가리키고 있다. 히다카=예영준 특파원

동아시아의 제국으로 군림했던 고구려는 668년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멸망했다. 그러나 고구려 왕조의 핏줄은 바다 건너 일본땅에서 1300여년 동안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이국땅에 뿌리내린 고구려의 후예는 고려(高麗)란 국호를 성씨로 삼았다. 일본에선 고구려를 고려로 표기하고 '고마'라고 읽는 경우가 많다.

*** 사절로 왔던 조상이 정착

14일 고구려 왕족의 후손을 찾아 사이타마(埼玉)현 히다카(日高)시로 향했다. 고구려사를 둘러싼 한.중 간 갈등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쿄(東京)에서 전철로 한시간 남짓 거리에 있는 고마가와(高麗川)에 내리자 역 앞 광장에 우뚝 선 한국식 장승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일본 고려씨의 총본산 고려신사(高麗神社)는 여기서 1.5㎞쯤 더 들어간 산기슭에 있다.

"잘 오셨습니다. 저는 고구려 왕족의 60대 후손입니다. 우리 가문은 대대로 고구려의 후예란 자부심을 갖고 살아 왔습니다. 저는 한국인을 외국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노환으로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대신해 아들 고마 후미야스(高麗文康)가 맞아주었다. 그는 아버지 시즈오(澄雄.77)가 맡고 있는 신사의 대표직인 궁사(宮司)를 언젠가는 물려받아야 한다. 후미야스가 들려준 가문의 유래는 이랬다.

"고구려에서 건너온 왕족 약광(若光.일본명 잣코)이 간토(關東)지방 여기저기 흩어져 살던 고구려 출신 1799명을 이끌고 이곳에 고려군장으로 부임해 왔습니다. 이 같은 내용은 일본의 고대 역사서인 '속일본기'에 나옵니다. 그는 사절단으로 666년 일본에 왔다가 2년 후 고구려가 망하자 돌아가지 않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구려인들은 당시 미개척지이던 이 지방을 개간하고 평화롭게 살았다. 26대까지는 고구려인끼리만 결혼해 혈통을 보존했다. 가마쿠라에 막부를 연 미나모토 요리토모와 혼맥을 맺고 가신이 되기도 했다.

후미야스는 별실로 기자를 데려가 '고려씨계도(高麗氏系圖)'를 보여주었다. 약광부터 60대 후손인 자신에 이르기까지 빼곡히 집안의 내력을 기록한 족보였다. "일본에서 이런 계도를 간직한 집안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우리 가문의 자부심은 여기서 나온 겁니다."

*** "고려신사 다녀가면 출세"

고마 가문에 위기가 온 것은 14세기 무로마치 막부 때였다. 정권과 반대편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자칫 멸문의 화를 당할 뻔했다. 고마 가문은 종가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분가해 다른 성씨를 쓰게 됐다. '다시는 전쟁에 나가지 않는다'는 가훈이 내려오는 것도 이때부터다.

고마 가문도 근대 이후 일본에서 행해진 한반도 출신에 대한 차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한때 결혼 상대를 찾기가 힘들었다고 합니다. 집안 형편도 궁핍을 면치 못했고 대부분 다른 지방으로 떠났지요." 그래서 지금 고마씨 직계 혈통은 50여명 남짓한 단출한 씨족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금 고마씨는 제2의 융성기를 맞고 있다. 고마 신사가 영험하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郞), 시데하라 기주로(弊原喜重郞) 등 이 신사를 참배한 정치인들이 차례로 총리대신이 되자 약광이 '출세의 신'으로 떠받들어지게 된 것이다. 신사 입구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조부인 마타지로(又次郞) 전 체신장관의 기념식수도 눈에 띄었다. 최근엔 연간 40만명이 이곳을 찾을 정도로 번창하고 있다.

고마 가문은 자신의 혈통이 맞닿아 있는 한국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 매주 목요일엔 신사에서 한국어 강좌를 5년째 계속하고 있다. 후미야스 본인도 일곱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또 매년 10월엔 재일동포 조직인 민단과 함께 마을 축제를 열고 있다.

*** 5년째 한국어 목요 강좌

후미야스는 최근 고구려사를 둘러싼 논쟁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유적을 보러 중국 지안(集安)에 간 적은 있지만 우리 조상이 중국계란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다"며 "나는 한민족의 후예"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고구려는 고구려사로 족한 것"이라며 "한국이든 중국이든 정부가 국가 간 자존심 싸움에 고구려를 끌어들이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민들에게 "고구려 역사를 잘 전승하고 유물.유적 보존에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

히다카(사이타마)=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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