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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첫 지원 한국애니메이션 아카데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시작' 이라는 말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미래를 가슴에 품는 기대와 설렘에 몸과 정신은 상쾌한 포만상태가 된다. 마치 커다란 박하사탕을 입에 물었을 때처럼. 지난 6일 오전10시 서울 홍릉 영화진흥공사 앞마당에서도 그런 상큼함이 느껴졌다.

최고급 인재 양성을 위해 영화진흥공사가 처음으로 뽑은 12명의 한국애니메이션아카데미 합격생들. 2년간 공부하게될 경기도남양주시 서울종합촬영소를 둘러보려고 모인 자리였다.

미술교사.일러스트 작가.회사원.방송작가.케이블TV 제작담당등 지금까지의 직업과 나이는 모두 다르지만 이제부터의 꿈은 하나다.

바로 한국 최고,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겠다는 것. 그 '시작' 의 자리였다.

"어릴 적부터 애니메이션이 너무 좋아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가르치는 대학이 없더군요. 그래서 연극영화과에서 틈틈이 단편을 만들어왔는데 이제 제대로 배울 수 있게 되어 너무 행복해요. " 유주현 (29) 씨의 말이다.

단편작 'ZERO' 와 '회전' 으로 청소년영화제 입상경력을 가진 그에게 수석입학이라는 타이틀은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눈치다.

미국.캐나다.일본의 젊은 애니메이터들과 본격 경쟁이 시작되었다며 온가족이 즐길만한 오페라같은 작품을 만들겠다고 말한다.

'월레스와 그로밋' 으로 유명한 영국 아드만 스튜디오를 꿈꾸던 막내 박재웅 (24) 씨는 유학준비를 잠시 접어두고 국내에서 기초를 더 다지기로 했다.

일본감독 '오토모 가츠히로' 를 좋아한다는 그의 관심분야는 인형애니메이션. 활발한 성격 덕분에 반장으로 뽑힌 방송작가 최윤정 (31.여) 씨는 "문화상품인 애니메이션에서 예술성과 상품성을 어떻게 공존시켜야하는지가 모두의 고민거리" 라고 털어놓았다.

최고참 유진희 (32.여) 씨는 '골목 밖에서' 와 'TV부인' 으로 국내외에 적지않게 알려진 베테랑 애니메이터. 예술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을 마음껏 만들어보고 싶다는 그녀는 최근 일고있는 애니메이션 열기가 단순한 붐이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애니메이션은 영화와 달리 제작 자체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분야입니다. 정부가 기왕에 투자지원을 하기로 결정했다면 제발 단숨에 뭔가 이뤄내라고 재촉하지는 말았으면 해요. 꾸준히 투자하고 지켜봐 주는 분위기만 이뤄지면 우리도 10년 안에 애니메이션 강국이 될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3시간 여에 걸쳐 컴퓨터실.작업실.편집실.세미나실 등을 보고난 뒤 돌아오는 길에서도 흥분의 여진은 가라앉지 않았다.

더 필요한 것을 말하라는 영화진흥공사측의 주문에 남학생들이 연필깎기.청소도구를 적어내자 "이거 뭐 바뀐 거 아냐" 며 한바탕 웃음. 유진희씨가 문득 말을 꺼냈다.

"우리 중에 누가 먼저 국제대회에서 상을 받나 매운탕 내기 하는게 어때?"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도 웃지 않았다. 대신 진한 박하사탕 냄새가 났다.

[애니메이션 아카데미는]

3월12일 개원식을 갖는 한국애니메이션 아카데미는 영화진흥공사가 영화아카데미의 15년 노하우를 활용, 애니메이션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최초로 설립한 교육기관. 경기도남양주시 서울종합촬영소 영상관내 지원센터를 포함해 8백15평 규모. 2년4학기제로 운영되며 학기당 실습비 60만원만 내면 된다.

수업은 실기제작 85%.이론 15%의 비율로 진행된다. 황선길 주임교수등 각계 강사진이 이론은 토론형식의 세미나로 실기는 각 분야 공동참여형식의 워크숍 형태로 진행한다.

이를 위해 'US애니메이션' '페그스' '마야' 등 첨단 소프트웨어가 구비된 워크스테이션급 PC가 학생 전원에게 제공된다. 또 필름과 비디오를 디지털 영상으로 편집할 수 있는 '아비스' 편집기가 3대. 디지털 오디오 워크스테이션등이 설치된 전용녹음실.작화실.모형제작실.촬영실.시사실 등이 갖춰져 있다.

밤낮없는 작업과 수업을 감안할 때 기숙사시설이 없다는 점과 교통이 불편하다는 점이 최대 약점. 응시생은 전공.학력.나이 불문. 이번에 입학한 학생은 대학원졸 2명.4년제대학졸 7명.2년제졸 3명. 12명중 여자는 5명. 1차는 자신의 작품을 이용한 포트폴리오 제출, 2차는 창의력 테스트와 문화 및 애니메이션 기본상식이 단답과 논술형으로 출제됐다.

창의력 시험에서는 '컵' '뱃고동' '상여' 의 변질된 이미지를 물었다. 3차는 면접과 인성검사. 1기에는 56명이 지원했으나 4년제 대학 첫 졸업생이 배출되는 내년 1월 2기 모집때는 더욱 높은 경쟁률이 예상된다.

남양주 =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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