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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클립] Special Knowledge <72> 위스키 라벨 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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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를 어떻게 드십니까. 맥주와 섞어 ‘폭탄주’로 드신다고요?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국내에선 위스키의 80%가 유흥업소에서 소비되는데, 폭탄주 자리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할 테니까요. 하지만 위스키도 와인처럼 라벨을 읽고 즐기며 마실 수 있습니다. 제품마다 태생이 다르고 맛과 향을 내는 방법이 다양한데, 이런 특성이 라벨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매장에서 무심코 위스키를 골랐다면 이제부터는 라벨을 한번쯤 살펴보시죠. 와인이나 사케처럼 각 위스키가 간직한 사연을 술자리 화제로 삼아도 좋습니다. 어느 숙취 해소제 광고에서처럼 다음 날 아침 새 사람 될 걱정을 안 해도 될지 모르니까요.

김성탁 기자

1989년 국내에 출시된 발렌타인. 국내 위스키 애호가들에게 특히 사랑받는 이 술은 수퍼 프리미엄급 위스키로는 아시아에서 1위를 달린다. 발렌타인 위스키의 라벨 중앙에는 큼지막한 문장이 그려져 있다. 1938년 스코틀랜드 문장원이 수여했다. 문장에는 스카치 위스키의 본고장인 스코틀랜드의 국기가 그려져 있다. 이 나라의 국기를 라벨에 쓰는 위스키는 드물다. 국기 사이에는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 사자의 몸을 가진 상상의 동물 그리핀이 자리 잡았다. ‘숨은 보물을 지킨다’는 취지라고 한다. 방패에는 위스키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네 가지 요소가 그려져 있다. 보리·물·증류기·오크통이다. 방패의 색깔인 파란색과 황금색도 물과 보리를 상징한다. 문장 밑부분에 ‘Amicus Humani Generis’라는 라틴어가 적혀 있다. ‘모든 인류의 친구(A Friend to All Mankind)’라는 뜻이다. 스코틀랜드의 전통을 담아 세계인에게 다가가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위스키 조니워커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리는 브랜드다. 존 워커와 알렉산더 워커, 조지 워커로 이어지는 워커 가문이 만든다. 오크통에서 숙성되는 조니워커 원액의 양이 700만 통을 넘어서면서 현지에서는 ‘영국은행의 금고에 있는 모든 금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말도 나왔다. 조니워커만의 특색인 비스듬한 라벨은 1867년 등장했다. 창시자의 아들인 알렉산더 워커가 고안했다. 조니워커 하면 떠오르는 또 다른 아이콘은 ‘스트라이딩 맨(걸어가는 신사)’. 1909년 당시 유명한 만화가였던 톰 브라운이 조지 워커와 점심을 먹다 그림을 선물했다. 조지는 그림에 ‘1820년에 탄생해 아직도 계속 가고 있음(Born 1820 Going striding)’이라는 문구를 첨가했다. 이후 스트라이딩 맨과 ‘Keep Walking(계속 걷는다)’이라는 슬로건이 쓰인다.

싱글몰트 위스키 글렌피딕(Glenfiddich)은 게일어로 ‘사슴(Fiddich) 계곡(Glen)’이다. 그래서 라벨에 사슴이 그려져 있다. 글렌피딕 증류소의 설립자인 윌리엄 그랜트는 1892년 이 증류소 인근에 있던 발베니 성과 주변 땅을 구입한다. 발베니성은 원래 그랜트 집안 사람들을 고용했던 공작의 소유였다. 싱글몰트 발베니의 이름은 이 성과 부속 주택을 증류소로 개조해 생산한 데서 유래했다.

싱글몰트 맥캘란(MACALLAN)은 증류소 주변 교회의 이름 ‘맥캘(MACAL)’에서 연유했다. 게일어 magh(토양)와 ellan(성 필란·St. Fillan)의 합성이기도 하다. 성 필란은 십자군 원정 당시 스코틀랜드에 기독교를 전파한 인물이다. 라벨에 그려진 저택은 1700년대 맥캘란 증류소 인근에 지어진 집으로, 지역명을 따 ‘이스터 엘키스 하우스’로 불린다. 맥캘란의 역사를 상징하기 위해 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에 헌정하려고 만들어져 ‘여왕의 술’이라는 별칭을 가진 로얄 살루트. ‘왕의 예포’라는 뜻이다. 국왕 주관 공식행사에서 21발의 축포를 쏘는데, 로얄 살루트는 21년산 이상만 만드는 유일한 위스키다. 도자기 병은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수호의 상징으로 여기는 ‘몽즈 메그’ 대포를 본떴다. 몽즈 메그는 16세기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성을 방어하는 데 쓰였다. 병에는 말을 타고 돌진하는 모습도 묘사돼 있다. 스코틀랜드의 가장 용감한 전사이자 왕으로 평가받는 ‘로버트 더 브루스’의 모습이다. 아랫부분의 게일어 문구 ‘Treibhireas Bunaiteachd’도 ‘충실함과 불변성’이란 뜻으로, 술이 탄생한 배경을 알려준다.

하이트-진로그룹 계열사 하이스코트의 킹덤(Kingdom). 위스키 명가 에드링턴 그룹의 최고 블렌드 마스터(여러 위스키를 섞어 원하는 맛을 내는 사람) 존 램지가 은퇴 전 마지막으로 블렌딩했다. 존 램지가 만들어낸 최고의 위스키라는 의미의 ‘King of Whisky’와 위스키와 인생을 함께 한 존 램지의 왕국을 세운다는 취지를 담아 킹덤으로 이름 지었다.

디아지오코리아의 위스키 윈저의 제품명은 영국의 현 윈저 왕조에서 따왔다. 윈저 12년산은 99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방한했을 때 한국 위스키 대표 자격으로 축하 만찬에 초대됐다. 최근 리뉴얼된 윈저의 병과 라벨, 뚜껑에 담긴 문장에는 앞발을 든 사자가 있다. 영국 왕실을 상징하는 문장에 주로 쓰이는 형상이다.

1 발렌타인의 문장에는 스코틀랜드 국기와 함께 방패 부분에 보리·물·오크통·증류소(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등 위스키를 만드는 데 필요한 네 가지 요소가 그려져 있다. 2 조니워커의 상징이 된 스트라이딩 맨은 유명한 만화가 톰 브라운이 선물한 그림에서 유래했다. 그림에 ‘Tom Browne’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3 발베니 라벨의 ‘SINGLE BARREL’은 하나의 오크통에서 생산된 몰트위스키를 담았다는 뜻이다. 아래 표는 ‘1992년 9월 4일에 753번 오크통에 담았다가 2007년 10월 24일 병에 넣었다’는 설명이다. ‘BOTTLE NUMBER : 243’은 753번 오크통에서 나온 243번째 제품이라는 뜻. 4 맥캘란 라벨 밑부분의 ‘MATURED IN SELECTED SHERRY OAK CASKS FORM JEREZ, SPAIN’은 스페인 헤레스 지역의 참나무로 만든 오크통에 셰리 와인을 숙성시킨 후 그 통에 다시 맥캘란 증류주를 담았다는 의미다. 5 로얄 살루트의 문장에는 시바스 브러더스사가 소비자에게 충성한다는 의미로 쓰는 창과 함께 국왕 주관 공식행사 때 발사되는 예포가 그려져 있다. 6 킹덤의 문장은 몰락한 집안을 일으켜 세운 스코틀랜드 한 귀족 가문의 것이다. 라틴어로 ‘나라에 임하옵시며’라는 주기도문의 일부가 담겨 있다. 12년산에는 남작(Lord), 17년산에는 백작(Count), 21년산에는 공작(Duke) 작위가 적혀 있다. 7 윈저의 문장에는 앞발을 든 사자가 있는데 유니콘과 함께 영국 왕가의 문장에 주로 쓰인다. 밑부분에는 윈저의 마스터 블렌더인 더글러스 머레이의 사인이 있다.

몰트 위스키 비율 높을 수록 고급

위스키는 제조 방식, 산지, 숙성 연도에 따라 분류한다.

제조 방식별로 몰트 위스키(Malt Whisky)는 보리의 싹을 틔운 맥아를 원료로 전통 방식인 단식 증류장치(Pot Still)로 증류한다. 글렌피딕·맥캘란·글렌리벳·글렌모린지 등이 대표적이다. 그레인 위스키(Grain Whisky)는 옥수수 등 일반 곡물에 소량의 맥아를 더해 발효·증류하는데, 연속식 증류장치(Patent Still)를 쓴다.

전통 방식이 시간이 많이 걸리고 단가가 높은 보리만 쓰기 때문에 상업적으로 다량의 스카치 위스키를 생산하려고 그레인 위스키를 만들어냈다. 연속식은 압력으로 수증기를 밀어낸 뒤 급속히 식히기 때문에 몰트 위스키가 가진 특유의 맛과 향을 느끼기 어렵다. 이렇게 만든 그레인 위스키에 몰트 위스키를 섞은 것이 블렌디드 위스키(Blended Whisky)다. 발렌타인·조니워커·시바스 리갈·J&B·윈저·임페리얼 등이 여기에 속한다. 몰트 위스키의 비율이 높을수록 고급으로 친다.

숙성 연도에 따라 보통 6~7년은 스탠더드급으로, 12~16년은 프리미엄급으로, 17~30년은 수퍼프리미엄급으로 나눈다. 맥캘란 파인앤레어(Fine & Rare)처럼 생산 연도를 표기하는 빈티지 위스키나 레어(Rare) 위스키도 있다. 보통 연산이 오래돼 소장용으로 경매되는 경우가 많다.

산지별로는 스코틀랜드에서 생산되는 것을 스카치 위스키라고 한다. 영국의 법률에는 ‘몰트(맥아)의 디아스타아제를 이용해 곡물을 발효시켜 술로 만든(양조) 다음 거르기 전 스코틀랜드에서 증류해 최저 3년간 통에 담아 창고에서 숙성시킨 것’이라고 돼있다. 아앨랜드산인 아이리시 위스키에는 부시밀(BUSHMILLS), 제임슨(JAMESON) 등이 국내에 시판되고 있다. 캐나다산은 캐내디안 위스키라고 하는데, 캐내디안 클럽·크라운 로열 등이다.

버번 위스키는 미국 캔터키주에서 생산되는데, 옥수수를 51% 이상 사용해 증류한 뒤 안쪽을 불로 그을려 만든 술통에 2년 이상 숙성시킨다. 짐빔(Jim Beam)·메이커스 마크(Maker’s Mark) 등이 버번 위스키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재패니스 위스키도 5대 위스키에 든다. 90년대 들어 산토리 같은 일본 위스키가 해외로 퍼져나가고 품질을 인정받으면서 한 분류를 차지했다.


위스키 라벨에 등장하는 문구

■Single Malt Whisky(싱글 몰트 위스키) 한 증류소에서 만든 몰트 위스키

■Vatted Malt Whisky(베티드 몰트 위스키) 또는 Pure Malt Whisky(퓨어 몰트 위스키) 그레인 위스키는 섞지 않고 여러 증류소의 몰트 위스키를 섞어 만든 위스키

※ Vatted=큰 통에서 처리됐다

■Single Cask(싱글 캐스크) 또는 Single Barrel(싱글 배럴) 병에 넣을 때 여러 통의 위스키를 섞지 않고 한 통에 든 위스키만 담았다는 설명

※ 술통의 명칭에는 163.7L짜리 ‘배럴’, 모든 통을 지칭하는 ‘캐스크’, 매우 큰 통인 ‘배트(Vat)’ 등이 있음

■Cask Strength(캐스크 스트렝스) 병에 넣을 때 통 속의 위스키를 물과 섞지 않고 그대로 담았다는 설명

※ ‘통 속의 강도를 그대로 썼다’는 표현

■Single Wood(싱글 우드) 증류 후 숙성을 거쳐 병에 넣기 전까지 한 종류의 술통을 썼다는 뜻

■Double Wood(더블 우드) 증류 후 숙성을 거쳐 병에 넣기 전까지 두 종류의 술통을 썼다는 뜻

※ Oak Cask Matured & Port Cask Finished=오크(참나무)통에서 숙성한 뒤 포르투갈의 주정 강화 와인인 포트와인을 담았던 통에 단기간 후숙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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