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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컥 고3 때 시작한 성악 훌쩍 유학 가 인정받은 실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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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카메라 앞에서 쑥스러워하던 최주희씨는 플래시가 터지자 자연스런 포즈를 취했다. 그는 “연습할 땐 슬렁슬렁 하지만 무대에 서면 에너지를 100% 뽑아낸다”며 자신을 무대 체질이라고 말했다. [김태성 기자]

올해 최고 대작 뮤지컬인 ‘오페라의 유령’ 개막이 한달 앞으로 다가왔다. 마케팅 스케줄상 이맘때쯤 제작사에서 열심히 출연 배우 홍보에 나서곤 한다. 배우 인터뷰라면 당연히 주인공 ‘팬텀’이거나 여주인공 크리스틴, 아니면 귀족 청년 라울을 맡은 배우를 내세우는 게 일반적일 터. 그런데 작품에서 그닥 비중이 높지 않은 ‘칼롯타’를 인터뷰하기로 한 건 전적으로 출연 배우 최주희(40)씨의 이력 때문이었다.

한국인으론 처음 ‘토니상’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는 점이 우선 눈길을 끌었고, 미국 줄리어드 음대를 나와 메트로폴리탄 무대에 섰던 실력파 오페라 가수라는 점도 이채로웠다. 여기에 구미를 확 당기는 제작사측의 한마디. “아세요? 전세계 어디에서 ‘오페라의 유령’을 하건 칼롯타는 그 배역처럼 콧대가 하늘을 찌른대요.”

#도망치듯 떠난 유학길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최씨는 진짜 ‘칼롯타’ 같았다. 등이 훤히 드러나는, 파격적인 의상을 아무렇지도 않은듯 입었고 카메라 플래시가 터질때면 자연스레 고개를 쳐든 채 눈을 아래로 내리 깔았다. 도도했고, 함부로 접근하기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막상 얘기를 나누기 시작하자 웬걸. 그는 서울대 성악과를 나왔다.

“노래를 잘 하셨나 봐요, 어떻게 음악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죠?”라고 묻자 “고2 때까지 미술을 공부했는데, 별로 재주가 없었어요. ‘이래 가지곤 대학가기 힘들다’는 선생님 말씀에 고3 2학기때 갑자기 성악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덜컥 된 거 있죠”라는 게 대답이었다.

졸업 후 미국 줄리어드 음대에 유학간 것도 “어머니가 하도 시집가라고 해서 도망치듯 그냥 훌쩍 떠난 거”였단다. “무슨 열망이 있거나 엄청난 음악성을 추구한 게 아니에요. 그냥 우연처럼 어찌어찌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죠. 근데 이렇게 얘기하면 또 ‘재수없다’고 욕 먹을 거 같은데….” 대책없이 솔직한 게 그였다.

최씨는 1996년 뮤지컬 ‘왕과 나’의 ‘텁틴’역으로 토니상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이후 본업인 오페라 무대로 돌아가 재커리 국제 콩쿠르 대상, 푸치니 국제 콩쿠르 대상 등 각종 유명 콩쿠르도 휩쓸었다. “아 참, 전 지는 건 끔찍이 싫어해요. 특히 동양인이라고 혹시나 무시당할까봐 더 이를 악물고 했어요.”

#목소리에도 ‘로열’이 있다

10여년 전 한국인 최초 토니상 후보에 오른 건 당시에도 꽤 화제였다. 덕분에 한국에 잠시 들어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 출연했고, 그때 인연으로 이번 ‘오페라의 유령’에도 전격 캐스팅됐다. 그래도 최씨의 주 무대는 오페라였고, 2000년대 들어선 플라시도 도밍고가 예술감독으로 있는 LA오페라단에서 활동했다. ‘카르멘’ ‘마술피리’ 등이 대표작. 특히 2005년엔 월드스타 안젤라 게오르규와 함께 ‘라보엠’의 미미로 더블 캐스팅돼 호평을 받았다.

미국의 한 음악 평론가는 그를 가리켜 “목소리에 등급이 있다면 최주희는 ‘왕족(royal)’인 셈”이라고 평했다. 흔히 접하기 쉽지 않은 고급스러움과 품위 있는 음색이 그의 특징인 셈. “목소리만 그러면 뭐해요. 배역은 욕심 덕지덕지 붙어있고, 질투심으로 가득차 있는데”라면서도 “작은 일에 집착하는 칼롯타 모습은 나와 똑 닮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아예 한국에 눌러 앉을 참이다. 현재 성균관대 강의도 나가고 있다. “해외 큰 무대 경험을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그는 “이제 한국도 근사한 창작 뮤지컬을 만들때가 됐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 길에 ‘해외파 배우’ 최주희가 함께 해 주길 바라는 건, 많은 뮤지컬인의 비슷한 생각 아닐까 싶다.

최민우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 기간: 2009.9.23~2010.8.8

▶ 장소 : 서울 잠실 샤롯데씨어터

▶ 시간 : 평일 8시, 토요일 3시· 8시, 일요일 공휴일 2시·7시

▶ 문의 : 1588-7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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