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루上] 단련하면 나아진다? 자칫하면 못 느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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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처녀 학원강사(김정은 분)와 어린 학원생(이태성 분)의 사랑을 그린 영화 ‘사랑니’(2005년). ‘포경수술을 안 하면 조루가 된다’는 대사가 나온다. 첫 관계에서 참지 못하고 사정해버린 것을 두고 여자가 걱정하자 나온 남자의 대답이다. 과연 그럴까? 성빈(구본승 분)은 2년 사귄 애인에게 버림받는다. 이유는 59초밖에 안 되는 사정시간 탓. 영화 ‘마법의 성(2002년)’의 한 장면이다. 영화에서 성빈은 성기를 단련해 조루를 극복한다. 조루는 이렇게 영화에서 주로 어설픈 남자 캐릭터를 표현하거나 황당한 재미를 주는 웃음 코드로 활용된다. 개중엔 잘못된 내용이 많다. 오해와 편견은 조루 치료를 방해하는 요인이다.

자위로 빨라진 사정, 성관계 땐 자연 치유

성기 단련을 통해 조루를 탈출할 수 있다고 믿는 남성이 상당수다. ‘칫솔로 성기를 문지른다’ ‘수세미로 박박 닦는다’ 등 과도한 자극이 동원되기도 한다. 조루의 원인이 귀두의 과도한 민감성이라면 성기 단련이 일시적 효과는 줄 수 있다. 그러나 나중엔 되레 귀두를 지나치게 둔화시켜 성적 자극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된다.

자신의 조루 증상이 자위행위 탓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이 경우 정상적인 성 관계를 갖기 시작하면 사정시간은 자연스레 조절된다. 비뇨기과 전문의는 자위행위 시 본인 사정 감각(사정이 되려 하는 시점)을 인지하고 천천히 사정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조언한다.

한국인 성 불만족도 높지만 치료는 안 받아

조루는 남녀 양쪽에 상당한 스트레스 요인이다. 먹는 조루 치료제 ‘프릴리지’의 임상시험에 참여한 143개국 6000명 이상의 조루 남성에게 ‘성생활 만족도’를 물었다. 미국·유럽의 조루 남성은 각각 53.5%·40%의 만족도를 나타냈다. 우리나라 남성의 만족도는 26.6%에 그쳤다. 또 87.5%는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응답했다.

그러다 보니 관심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부산대병원 비뇨기과 박남철 교수는 “국내 조루 임상연구 지원자가 폭주해 놀랐다”며 “아내가 대신 남편의 임상연구를 신청한 경우도 많았다”고 전했다.

한국 남성의 조루 해결 노력·의지는 의외로 낮다. 조루 등 자신의 성 기능 문제를 전문의와 상담하는 남성은 2%에 불과했다. 이는 프랑스(30%)·호주(20%)·미국(19%) 등 서구는 물론 일본(9%)보다 낮은 수치다.

고려대 구로병원 비뇨기과 문두건 교수는 “국내 학계에서 조루를 질환으로 인식한 것도 불과 10여 년 전”이며 “아직도 조루 치료를 위해 제 발로 병원을 찾는 남성은 드물다”고 말했다.

수술요법 있지만 거부감… 먹는 약 각광

조루는 초기 성경험, 배우자와의 관계, 성에 대한 지식 부족, 개인의 특성 등 심리적인 요인으로 생길 수 있다. 심리적 조루의 경우 개인차가 커 그동안 대처가 힘들었다. 성기가 지나치게 과민한 것(말초성 과민증)도 원인이다.

최근엔 사정 중추의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 분비가 짧은 것이 조루의 원인이란 가설이 의료계에서 널리 인정되고 있다. 사정은 성관계 도중 세로토닌이 분비되면서 일어나는데 세로토닌이 단시간에 고갈되면 사정이 빨라진다는 것.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시판 허가를 받은 ‘프릴리지’는 세로토닌의 분비 시간을 증가시켜 사정을 지연시키는 약이다. 인하대병원 비뇨기과 류지간 교수는 “프릴리지는 조루 증상의 개선뿐만이 아니라 조루를 진단·치료가 필요한 질환으로 각인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