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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자수해라" 이학만 아버지 호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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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경찰관 살해범 이학만(35)씨에 대한 경찰수사가 장기화할 조짐이다. 사건 발생 닷새째가 지나도록 이씨의 행방은 오리무중인 상태다. 경찰은 범인이 은신할 만한 윤락업소와 전국 주요 교통로에 대한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이씨의 친인척 등 주변 인물을 상대로 탐문수사도 벌이고 있다.

이씨가 5년 전 신출귀몰한 도피행각으로 영웅담까지 만들어낸 '제2의 신창원'이 될까봐 경찰은 우려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피살된 경찰관의 영결식이 열린 5일 이씨의 자수를 호소하는 그의 생부를 단독으로 만났다. [편집자]

5일 오전 경기도 고양의 한 아파트에서 TV를 통해 경찰관들의 영결식을 응시하던 초로의 60대 남자는 말없이 흐느끼고 있었다.

영결식에 참석한 경찰관들이 동료의 죽음에 뜨거운 눈물을 뿌리고 유족들이 울부짖을 때 그는 제대로 숨조차 쉬지 못했다.

범인 이학만(35)씨의 아버지 이명수(61.가명.사진)씨였다. 개인택시 운전기사인 그는 지난 1일 사건 발생 이후 5일째 집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자식이 살인범이란 사실에 가슴이 떨려 도저히 핸들을 잡을 수 없어요."

이씨는 "아들의 잘못을 대신 처벌받고 싶은 심정인데, 나라도 유족들 앞에 나가 무릎 꿇고 사죄도…"라고 말하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아들의 이름을 말할 땐 목이 메었다.

아버지는 5년 전 세번째 감옥살이를 한 뒤 자신을 찾아온 아들을 잠깐 만났었다. '돈이 필요하다'며 찾아온 아들을 매몰차게 돌려보냈다. 이후 부자의 연락은 끊겼다. 그러고는 '살인 용의자'로 수배전단에 오른 자식의 얼굴과 재회한 것이다. 땅이 꺼지는 절망감을 느꼈다.

아버지에게 어린 시절의 외아들 '학만'은 '조용하고 똑똑한 아이'로 기억된다. 눈빛이 맑은 갓난아기에게 '학(學)'과 '만(滿)'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은 할아버지였다.'자식들에게 가난해서 공부 못하는 설움을 넘겨주지는 않겠다'는 아버지 이씨의 바람에서다.

1970년대 택시.버스 운전을 하던 이씨는 서울 진관외동의 산비탈 단칸 셋방에서 네 식구가 어렵지만 단란하게 살았다. 아들은 중학교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성적이 상위권을 유지했다. 그러나 아들이 중3이던 1984년, 이씨는 가정불화 끝에 이혼했고 아들은 생모와 함께 떠났다. 간간이 들려오는 아들의 소식은 그의 가슴을 무겁게 했다.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사흘이 멀다 하고 싸움하는 문제아가 됐다. 가출도 수시로 했다. 이씨는 "학만이가 비뚤어진 것은 다 내 잘못"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후 이씨가 10여차례 아들을 직접 만난 곳은 모두 경찰서였다. 절도.강간 등으로 체포된 아들에게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통사정을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출감한 아들은 교도소 친구들과 다시 어울렸다.

이씨는 "학만아, 마지막으로라도 새 삶을 살려면 빨리 자수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임장혁 기자, 김성민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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