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고입 가이드북 제공하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단군 이래 가장 복잡하다’.

엊그제 만난 친구가 고교 입시를 빚대 한 말이다. 중3 아들과 고3 딸을 둔 그는 ‘바보’가 된 것 같다고 했다. “고교 종류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이름도 난수표 같다. 너무 헷갈린다. 정보는 어디서 얻어야 하니?”

그는 수첩을 꺼내 들더니 학교명을 읊었다.

“자율형 사립고(자율고)·자립형 사립고(자사고)·개방형 자율학교·기숙형 공립고, 외국어고·국제고, 과학고·과학영재학교, 마이스터고·전문계고, 고교선택제….”

순간, 머리가 띵했다. 고교 종류가 열 개도 넘었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많다. 이명박 정부의 ‘학교 다양화’ 정책 덕분이다.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학교가 다양해진 것은 좋은 일이다. 획일적인 관치·평등교육을 벗어나 선진교육으로 전환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학부모·학생 입장에서 정책을 펴고 있느냐는 점이다.

그는 고3 딸보다 중3 아들의 입시가 더 어렵다며 물었다.

“이름이 비슷비슷한데 뭐가 다르지? 전기(前期)·후기(後期) 구분은? 시험·내신·추첨 중 뭐로 뽑니?”

이해가 됐다. 다양한 입시를 꿰뚫려면 작심하고 ‘선수’로 나서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자녀 성적이 좋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어느 학교를 지원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변수여서다.

우선 전기 모집 학교는? 자율고·자사고·외국어고·국제고·과학고·과학영재학교·마이스터고·전문계고가 있다. 이 중 한 곳만 지원할 수 있다. 거주지(광역시·도 기준)와 상관없이 전국에서 지원할 수 있는 곳은 자사고·과학영재학교·마이스터고다. 내신·면접·영어듣기 등으로 뽑는다. 자율고는 시험이 없다. 내신 상위 50% 안에 드는 학생을 추첨으로 뽑는다. ‘로또’ 전형이다.

전기에 붙지 못하면 후기 문을 두드려야 한다. 기숙형 공립고·개방형 자율학교·일반계고가 있다. 전체 고교 모집 정원의 75%쯤 된다. 전국 82개 기숙형 공립고는 광역단위 모집 여부나 지역할당 비율도 결정되지 않았다. 서울은 인문계고 201곳 중 최대 네 곳을 지원할 수 있는 학교선택제가 시행된다. 친구에게 간신히 설명은 했지만 찜찜했다.

그 친구처럼 전국 중3 200만 명의 학부모들은 정보 부족 속앓이를 한다. 그런데 정부는 ‘학교정보알리미(www.schoolinfo.go.kr)’가 해결사인 양 떠든다. 정말 어이가 없다.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A고 대학 진학률 70%’식의 자료가 고작이다. 고졸자의 84%가 대학생이 되는 마당에 대학별 진학자 수를 뺀 것은 ‘앙꼬 빠진 찐빵’이다. 음식 맛을 비교해 볼 기회도 주지 않고 메뉴를 늘렸으니 아무거나 먹으라는 격이다. 대입만큼이나 복잡해 담당 공무원조차 헷갈려 하는 새 고입을 학부모와 학생이 알아서 치르라는 것은 직무유기 아닌가? 그러니 ‘입시 빠꿈이’인 학원만 흥하는 것이다. 고입 가이드북을 제공하고, 학교정보도 자세히 공개하는 정성이 필요하다. 학교 다양화가 학부모 잡는 정책이 돼서는 안 된다.

양영유 교육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