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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몸 바른 마음 ④ 전통 수련법 이용한 완화요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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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함봉진 신경정신과 교수(左)가 암치료 중인 환자들과 함께 완화요법 체조를 하고 있다.

“왼쪽 어깨를 오른쪽 무릎에 닿게 하시고…, 사선으로 코끝이 땅을 쓸 듯이 몸을 낮추세요. 다시 상체를 큰 원을 그리듯 상체를 돌려 올라오세요.”

지난달 29일 오후 1시30분, 서울대병원 3층 정신건강센터. 잔잔한 명상음악을 들으며 4명의 여성이 장선주(신경정신과) 간호사의 설명에 따라 가벼운 몸놀림을 시작한다.

마치 물고기가 유영을 하듯 모든 동작이 부드럽고 유연하다. 깊은 호흡을 하며 멈춘 듯 움직이고, 움직이는 듯 멈춘다.

이들은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와 유방암센터가 만든 완화요법 프로그램에 참가한 환자들. 프로그램을 개발한 신경정신과 함봉진 교수가 동작을 부연 설명한다.

“마음을 아랫배에 담고 있다는 생각으로 깊숙이 호흡하시고, 리듬을 타듯 부드럽게 움직이세요.”

암환자 정서 치유 위해 개발

2003년 유방암 수술을 받은 정문숙(56·서울 쌍문동)씨. 그는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까지 끝난 뒤에 더 큰 불안감이 엄습했다.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정기검진밖에 없었어요. 의사로부터 관심과 도움이 끊긴 것 같이 생각되자 조금만 아파도 재발을 하는 건 아닌가 안절부절 못했어요. 비싼 돈을 내고 심리치료를 받았지만 별 도움이 되질 않았지요.” 그런 와중에 병원에서 8주 코스의 프로그램 참여를 권유받았다. 효과는 생각보다 빨리 나타났다. 호흡법을 익히고, 동작을 따라 하면서 몇 주가 안 돼 마음이 진정된 것. 깊은 숙면을 취하고, 긍정적인 사고를 갖게 되자 자신감이 생겼다.

완화요법 프로그램 개발은 암환자의 정서적 지원을 위해 개발됐다. 주역은 대학 시절부터 국선도를 해온 함봉진 교수. 그는 의대 시절에도 학업이 힘들면 수련을 통해 집중력을 높이고 스트레스를 관리했다.

“전공의 시절에 전통 심신수련법을 환자에게 적용하면 어떨까 생각하다 우연한 기회에 외국의 논문을 봤지요. 암환자에 대한 전통 수련의 효과가 논문으로 발표될 정도로 이미 임상에 활용되고 있었던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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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전호흡과 큰 차이 없어

그는 2005년 국선도 수련인을 초청해 의료진으로 하여금 직접 수련법을 배우게 했다. 1년여가 지난 뒤 그는 환자의 수준에 맞게 각 동작을 정리했다.

“환자들은 심신이 지쳐 있어 신체에 무리가 가면 안 됩니다. 동작은 최대 근력의 70% 정도만 사용하면서 몸에 통증을 느끼지 않도록 서서히 늘려가도록 했습니다.” 관절과 근육을 최대한 이완·수축시키는 스트레칭과 다른 점이라는 것이 함 교수의 설명이다. 프로그램은 ▶몸 풀기 ▶호흡조절·명상 등 마인드 컨트롤 ▶체력을 키우기 위한 약한 강도의 운동으로 구성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호흡. 호흡 조절은 단전(배꼽 아랫배)호흡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생각을 아랫배에 집중하고 복식호흡보다 깊고,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쉰다. 자연스럽고 편하게 하는 것이 요체란다. 지난해 7월 유방암 수술을 받은 프로그램 참가자 황정원(서울 보문동·52)씨는 호흡법을 통해 건강을 회복했다고 믿는다.

“치료를 받는 8개월간 오른쪽 팔과 손가락이 마비되고, 다리까지 뻣뻣해져 거의 누워 지냈어요. 운동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상황에서 완화요법의 호흡법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지금도 지하철 계단이나 산에 올라갈 때 깊숙이 배로 숨을 쉬면 숨찬 것이 편해지면서 활력이 생깁니다.”

“통증·대인기피 극복에도 도움”

장선주 간호사는 “배 위에 구슬을 올려놓고 호흡한다고 상상하라”고 설명한다. 머릿속은 ‘무타념 무타상(無他念, 無他想)’. 하지만 예민한 환자에겐 무리한 주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다 보면 잡념이 없어지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는 것.

함 교수는 완화요법이 암환자의 ▶통증·위장병 등 신체 장애 ▶우울·불안감 등 정서 장애 ▶대인기피 등 사회적 장애를 회복하는 데 확실한 효과가 있다고 강조한다. 약물을 이용하지 않고 자신의 불안과 컨디션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워 적극적으로 암과 싸울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환자를 대상으로 완화요법 프로그램 실시 전후의 불안·우울 및 삶의 질 척도를 조사하고 있다. 학술적으로 검증되면 이를 매뉴얼화해서 다른 병원 암환자들과 공유할 생각이란다.

문제는 이 프로그램이 치료행위로 인정되질 않아 건강보험급여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 따라서 모든 환자에게 무료로 제공하기엔 한계가 있다.

함 교수는 “정서적 치료는 환자를 밝고 긍정적이며 병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키워준다”며 “전인치료는 첨단의술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강조했다. 암환자를 위한 완화요법 프로그램은 매주 화요일 오후 3시30분 유방센터 교육실에서 이뤄지며, 8주 단위로 참가자를 모집한다.

글=고종관 기자 , 사진=신인섭·최정동 기자

함봉진 교수는

정신과의사 중에선 드물게 신체정신의학을 전공했다. 심리적 원인이 신체질환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킨다는 이론에 근거해 서울대병원 암센터에서 정신종양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이 클리닉은 암에 대한 공포와 불안·우울·무기력 등 정서적 위기를 극복하도록 도와줘 환자의 삶의 질을 높여준다. 1991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가천의대 길병원을 거쳐 2004년부터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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