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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결단] 삼양식품 전중윤 회장 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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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삼양식품은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조용한 기업이다. 창업주 이건(以建) 전중윤(全仲潤·90) 회장이 여전히 건재하고, 식품제조업계에서만 49년이라는 오랜 기간 현업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천성적으로 외부 노출을 원하지 않는 탓도 있겠지만 최근 장남 전인장(全寅壯·46) 부회장과 며느리 김정수(金廷修·45) 부사장이 회사 경영을 맡다시피 한 까닭에 창업주는 사뭇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진짜 쇠고기’라면을 공업용이라 욕했지만 …허기진 국민 건강 떠올리고 포기 못 했죠

더욱이 삼양식품에서 출하하는 제품은 고객과 직거래한다고 할 정도로 가장 가까이에서 호흡하고 있지만 2세에게 경영권이 이관되면서 창업주의 정신이나 창업이념 등이 묻혀버린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는 것도 사실이다. 식품산업은 국민의 건강과 직결되기 때문에 식품산업 경영자는 그 어떤 산업보다 높은 도덕성과 사회적 책무로 무장해야 하고, 그래서 경영자에 대해 소비자들의 관심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인장 부회장은 2003년 5월 경영문제로 대표이사 사장 자리를 매제(전 회장의 맏사위)에게 넘겼다는 보도와, 2005년 5월 2년 만에 다시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복귀했다는 보도 외에는 안타깝게도 그에 관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같은 건물 안에서 부부가 부회장과 부사장을 맡아 경영하는 경우가 대기업에서는 보기 드문 현상이지만 경영의 한 축을 실질적으로 총괄하는 김정수 부사장에 관한 이야기 역시 2001년 3월 전무에서 1년 만에 부사장으로 선임됐다는 기록 외에는 알려진 내용이 발견되지 않는다.

식품회사에 대한 신뢰는 곧 경영자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은 설명하지 않더라도 이미 사회적 인식으로 확립돼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2세 경영의 이념을 듣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아쉬움이 크다. 대법원이 무죄를 확인했지만, 식품산업에 일대 경종을 울린 우지사건이 있었을 때 보았듯 대부분의 국민은 삼양식품 창업주의 높은 도덕성과 진실성만은 흔들리지 않고 믿었던 것이다.

올 11월이면 우지사건도 20주년을 맞는다. 전중윤 회장은 지분에서도 사실상 손을 턴 상태다. 지난해 4월, 삼양식품이 공시를 통해 교직원공제회가 소유했던 삼양식품 지분 28.75%(189만5,244주)를 삼양농수산이 주당 2만9,500원에 매입했기 때문에 전중윤 회장과 특수관계자 지분율이 55.31%로 증가하게 됐다고 밝혔을 때, 사실상 삼양식품 대주주는 김정수 부사장임을 공개한 셈이었다.

현실적으로는 비상장기업인 삼양농수산이 삼양식품의 계열사지만 삼양식품 주식의 39.21%를 소유하게 됐고, 삼양농수산의 대주주는 지난 5월 기준으로 27.92%를 보유한 김정수 부사장이기 때문이다. 전인장 부회장은 김 부사장의 반 정도인 14.11%를 소유하고 있다.

지분 보유를 떠나 삼양식품 경영을 책임진 전인장 부회장이나 김정수 부사장의 경영이념을 전해들을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현실은 안타깝지만, 이익을 내고 있다는 점에서는 고무적이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삼양식품은 이른바 ‘우지사건’ 이후 사경을 헤매다시피 하면서 그동안 화의와 회사 정상화 과정을 밟는 등 숱한 역경으로 9년 동안 배당도 하지 못했다.

그랬던 회사가 지난해부터 급격히 실적이 호전되면서 주당 200원의 현금배당까지 결정하는 청신호를 보였다. 기업분석 전문회사 자료에 따르면 삼양식품은 지난해 매출 2,793억 원, 영업이익 253억 원, 순이익 175억 원을 기록했다. 이러한 결과는 전년과 비교해볼 때 매출은 19.1% 증가,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157.1%와 317.2% 급증이라는 경이적 성적이다.

여기에 1만5,000원대에서 등락을 거듭하던 주가도 최근 2만 원대에서 유지되고 있다. 한때는 4만 원대까지 치솟기도 했다. 경기가 불황일수록 라면은 상승곡선을 긋는다는 말이 있지만 기대 이상의 실적을 낸 것이다. 그렇더라도 삼양식품은 전중윤 회장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전중윤 삼양식품그룹 회장.

삼양식품의 모든 정신이 전 회장으로부터 나온다. 그의 식품에 관한 철학은 식품산업의 근본적 도덕성이 무엇이다 하는 근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2년 전 대한상공회의소가 일반국민, 대학교수, 현직 CEO 등 모두 500명을 대상으로 8개항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을 때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의 근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42.0%가 ‘창의력’을 꼽았고, 그 다음으로 ‘정직과 도덕성’(29.8%), ‘인간미’(11.6%), ‘장인정신’(9.4%) 순으로 나타났지만 해당 기업인에 몇 명의 기업 총수와 함께 전중윤 회장이 포함됐다.

기업인이 추구해야 할 가장 큰 목표로는 48.8%가 ‘이윤창출’을 꼽고 다음으로 ‘고용창출’(30.8%)과 ‘이윤의 사회환원’(17.0%)이라고 답하면서 역시 해당 기업인으로 전 회장을 들었다.

국내 기업인에게 요구되는 자질을 묻는 질문에서는 ‘윤리경영의지’(48.6%)와 ‘연구학습자세’(18.0%)가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고 그곳에도 눈에 띄는 인물로 전 회장이 포함됐다.

이처럼 전 회장에 대한 사회적 신뢰는 여전히 높다. 하지만 이른바 ‘우지(牛脂)파동’이라는 잔인한 공격 앞에서 끝까지 진실 규명을 위해 법정투쟁을 전개하면서 죽어가던 삼양식품을 살려내기까지 처절한 결단을 내려야 했던 순간과, 국내 최초의 거대 보험회사를 접고 왜 5원짜리 이익도 보장되지 않던 라면 생산에 뛰어들어 굶주림에 울고 있는 국민을 가슴에 안았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결단1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우리나라 식품산업의 대부로서 대한민국 라면 생산 1호 기업인 삼양식품의 49년 역사를 이끌고 있는 전 회장의 인생은 1961년 새롭게 시작된다.

대관령에 국내 최대 목장을 만들어 낙농업과 목축업을 전파한 효시의 기록도 전 회장이 가지고 있지만, 우리 국민을 초근목피의 기아(飢餓)경제로부터 탈출시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삼양식품을 설립하고, 숱한 우여곡절 끝에 회사 설립 2년 만에 제2의 주식이라고 불리게 되는 라면을 선물했을 때 그 기쁨과 라면의 원조를 탄생시켰다는 자긍심은 참으로 대단했다.

그러나 국민이 보내준 환희의 훈장보다 꼭 20년 전인 1989년 11월, 학문에도 없는 ‘공업용 우지’라는 권력의 비수에 맞은 고통의 편린은 말할 수 없이 잔인했다.

가장 혹독한 시련으로 꼽히는 우지파동으로 사실상 기업이 도산 직전까지 갔을 때 정치적 압박과 일부 검찰의 여론몰이에 맞서 대법원까지 가는 7년9개월간의 법정투쟁 끝에 기어코 무죄를 확인받은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진실을 밝히겠다는 그의 무서운 집념이 일구어낸 결과였다.

동시에 노태우 정권이 이 나라 기업인에게 가한 참혹한 형벌과 맞선 혈투의 이력서이기도 했다. 전 회장은 인간의 한계수명이 120세가 정설로 되어 있기 때문에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과거의 악연에 관해서는 이미 마음을 비웠고, 울화통이 치밀 때는 독서보다 좋은 약이 없다며 책상 위에 가득 쌓인 책을 가리켰다.

그의 독서량이 어느 기업인도 따를 수 없을 만큼 대단하고, 책을 6권이나 썼다는 것도 재계에서는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속상할 때는 책을 약처럼 본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그는 여전히 불편한 세상사를 많이 지켜보는 것 같았다. 아직 한계수명까지는 더 활동하셔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자 “우리 삼양식품이 2~3년 안에 무차입경영을 실현할 것이다.

중역 인사권도 2세한테 물려주고 책임경영을 할 수 있도록 해줬다. 나로서는 지켜보는 일이 남았고, 개인적으로는 최근 치아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 죽음도 새로운 세계로 가서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건강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유언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지만 특히 최근의 근황이 솔깃하게 들렸다.

“윤주영 전 장관이 <백인백상(百人百想)>이라는 사진집을 준비하면서 우리 사회에 많은 공적을 남긴 분의 근영(近影)과 함께 그분들이 바라는 미래의 우리 사회에 대해 고견을 모아 사진집에 같이 싣는다고 해요. 그래서 내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내가 생각하는 바를 몇 자 적어 줬는데, 나는 오늘의 잘못 때문에 내일을 희생해서는 안 된다고 자주 강조해요.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지금도 하고 있고, 그래서 원고도 쓰고 각계 사람을 만나면 상호 공존공영하면서 이기주의를 배척하는 노력을 하라고 당부하거든.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때 각자가 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나와요. 그 중 하나가 인류를 선진으로 변화시키는 데 공헌하라는 사명이야. 왜?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사명이 주어져요. 만물의 영장이니까 마음을 가지면 할 수 있다 그거지. 그런데 인간에게는 3대 부정심리라는 게 있어요. 부정부패·무위도식·무질서 조장 심리, 이게 있어. 그렇기 때문에 이기주의자가 나오고 악폐가 나오는데, 그걸 치유하는 것이 교육이라는 말이오. 그런데 교육의 최고 목표는 덕을 가르치는 것인데도 기술을 가르쳐. 먹는 기술을 가르치고, 빼앗는 기술을 가르치고, 지배하는 기술을 가르치고 말이지. 그렇게 되니 도덕이 황폐해지고 정의가 붕괴하고 미래가 희생당하게 된단 말이야.”

전 회장은 의식적으로 정치문제를 피해서 말했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모든 것이 정치로 풀어야 할 충고 같았다.“자본주의를 자꾸 강조하는 것도 도덕의 결함에서 오는 거예요. 자본주의의 질서는 필요하지만 자본주의가 훌륭한 미래를 약속한 바도 없고, 성장률을 높인다는 약속도 없고, 인류의 위기를 구한다는 약속은 더더욱 없어. 부의 밸런스를 조정하는 역할도 자본주의가 하는 게 아니라 통치자의 덕목이 하는 거야. 그래서 요즘 교육이 큰일났다고 말하는 건데, 내가 생각할 때 인과응보(因果應報)를 가르치면 모든 게 해결돼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소중하게 체험한 가르침이 거기에 축적돼 있어. 대자연의 법칙을 선현들이 경험으로 집대성해 놓은 것이 인과응보라는 말 속에 들어있어요. 인과응보의 무서운 가르침을 우리 사회가 깨닫지 않으면 법도 약자와 빈자만 지배하고 부자와 부패권력에는 아부하는 결과를 초래할 거야. 그러면 미래는 계속 불행해지고 또다시 우리는 내일을 희생하게 돼있어요. 부디 생각 좀 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 삶의 법칙이 무엇이다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살아야 하는 거예요.”

라면을 만들게 된 배경에는 전 회장에게 인생을 거는 결단이 담겨 있을 것이다. 전 회장은 동방생명회사를 만들었고 제일생명도 운영했을 만큼 1950년대에는 요즘의 기준으로 봐서도 재벌이었다. 그랬던 전 회장이 라면사업을 생각한 것은 결코 단순할 수 없는 ‘인간사랑’이었던 것 같다.

“옛날 중국 고사에 식족평천(食足平天), 먹는 게 족하면 천하가 태평하다는 말이 있어. 중국 제왕들도 그렇게 말했고, 국민도 그렇게 생각했거든? 어느 나라 국민이나 마찬가지예요. 먹는 게 제일이야. 내가 동방생명을 만들고 나중에 제일생명도 운영하다가 넘겼지만, 생명보험이라는 게 뭐요? 1년에 사람이 얼마나 태어나고 몇 살 때 얼마나 죽고, 또 평균 수령이 어떻게 된다 하는 숫자가 나와 그것을 보험료 산출 근거로 삼는데, 결국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 아니오? 그런데 1960년대가 돼도 식량이 모자라 하루에 두 끼밖에 못 먹어요. 그게 우리나라 실정이었어.
그것도 우리가 수복하고 서울에 왔을 때 미국에서 ‘480호’라고, 원조 밀가루를 거의 무제한으로 줬기 때문에 그것을 먹고 살았어. 무상으로 줬지만 그때 그 밀가루가 없었다면 아마 우리는 굶어 죽었을 거요. 그만큼 식량이 부족했으니까. 그걸 받아 전부 수제비 해먹고 국수 해먹고 그랬는데, 그것만 먹어서는 안 되잖아. 육류를 먹어야 다리에 힘도 붙고 일을 하는데, 고기를 어디서 먹어요? 그래서 꿀꿀이죽이라고, 지금 사람들은 모를 거야. 남대문시장 안에 가면 미군이 먹다 남은 쓰레기 같은 고기 뼈다귀나 닭다리 같은 것을 담아 와서 끓인 죽이 있는데, 그게 꿀꿀이죽이에요. 그걸 먹으려고 수백 명이 아침마다 늘어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했어. 양재기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겠는데, 양재기통 하나에 5원입니다. 5원으로 생명을 부지하는 거요.”

꿀꿀이죽 이야기를 할 때는 그의 눈 속에 물기가 고이는 것 같았다. 꿀꿀이죽을 기억하는 국민이 아직은 많을 것이다.

“국민의 건강이 유지돼야 나라도 일어서는 것이니 어떻게든 먹여야겠는데 식량은 절대부족이고, 누군가 나서서 정책을 세워 해결해줘야 할 텐데 정치가에게 기대할 수도 없고, 정말 참담했어요. 또 미국사람이 한없이 우리를 먹여 살릴 리 없으니 480호 원조도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고, 생각할수록 암담했지요. 그럴 때인데 아마 1959년일 거야. 마침 도쿄(東京)에 출장가서 라면을 먹어보게 됐어요.
그때 우리 돈으로 라면 한 그릇에 30원 정도 했는데, 먹어보니 영양가도 들어 있고 맛도 좋고 희한했어. 그때 그 일본 라면이 85g입디다. 삶지 않은 상태에서 면의 중량이 그래. 현재 우리의 일반 라면은 120g이거든? 그러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국민의 배가 일본 국민의 배보다 크다는 말이에요. 지금도 일본 라면은 85g이야. 그래서 일본에서 먹어본 라면을 생각하고 이것으로 빈곤을 퇴치하는 길을 찾아야겠다 싶어 백방으로 알아보는데, 느닷없이 5·16이 일어나잖아요?
5·16도 경제를 살리겠다고 일어났지만 그게 또 혁명한 사람들 생각처럼 쉽게 되나요? 특히 먹고 사는 문제는 정변이 일어난다고 바로 해결되는 게 아니에요. 남산 밑에만 가도 굶주린 채 누워있는 사람이 수없이 많고, 청계천으로 가면 비참해서 못 볼 지경이야. 애를 낳아 키우지 못해 남의 집 대문 앞에 버리는 경우도 숱하게 있었어요. 먹지 못하니 젖이 나오지 않잖아요.
그런 장면을 보면서 정말 가슴이 아프고, 그때 결심을 굳힌 거야. 정변 나기 전에 알아봤던 것도 있고, 내가 나서서 라면공장을 시작해야겠다고 말이지. 내가 정치가도 아니고 사회사업가도 아니지만 굶어 죽는 사람들을 보고 그냥 있을 수 없었어. 그걸 인간에 대한 막연한 애정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심정으로 시작한 것이 라면사업이에요.”

결단 2

정부가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개인이 나서서 추진한다는 것이 쉬울 리 없었을 것이다. 그 과정을 다 설명하기도 쉽지 않겠지만 무엇보다 정부 정책부터 국민이 무엇을 하고 싶다고 해서 하게끔 뒷받침하던 시절이 아니었다. 특히 라면공장을 세우려면 기술도 있어야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이 라면을 생산할 수 있는 기계설비였다.

그러나 절벽이었다. 설비를 들여와야 하는데 심각한 것이 달러 매입이었다. 4·19 후 민주당 정권이 들어섰지만 갑자기 무역이 늘어난 것도 아니고 자유당 때 조금 남았던 달러까지 다 써버렸으니 정부에 달러가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정보부장 하던 JP(김종필)를 만나야겠다는 것이었다.

“정보부에 내 고향 후배가 국장으로 있었어. 그 사람을 통해 JP를 만났어요. 그게 JP하고 지금까지 우정을 이어오게 된 계기인데, 일본 라면 하나를 들고 그분을 만나니 처음에는 영문을 몰라 멍하게 쳐다봐. 표정도 희한하고. 허허허…. 그래서 라면부터 끓여서 맛을 좀 보라고 했어. 맛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맛있다고 그래. 그러면서 이게 뭐냐고 물어. 그래서 설명했어요. ‘혁명을 왜 했느냐? 국민들 배부터 채워줘야 할 거 아니냐? 국민들한테 무엇보다 급한 게 쌀인데, 쌀이 없다면 대용할 수 있는 뭔가를 생산해줘야 할 것 아니냐’ 그랬더니 정말 빨리 알아들어요. 당장 하라는 겁니다. 허허허….

그런데 달러가 없지 않으냐? 당시 기계 견적을 받아보니 라면을 생산하는 라인 하나를 발주하자면 6만 달러가 있어야 한다는 거요. 그때 국가 외환보유고가 3,800만 달러인가밖에 없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기가 막히는 일이지. 그러니 달러를 주나? 준다는 것은 공짜가 아니고 내가 우리 돈을 주고 정부가 가지고 있는 달러를 사는 거예요. 그런 시절이야. 그래서 정보부가 배정받은 달러를 내놓으라는 게 내 요구였어. 나는 실질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부처가 정보부였으니 거기에는 있을 줄 알았지. 그런데 없대요. 처음에는 JP가 건성으로 없다 하는 줄 알고 정말 각오를 단단히 하고 섭섭한 소리를 막 했어. 그때 정보부장이면 감히 쳐다보기도 겁날 때 아니오? 허허…. 그런데 진짜 없다는 거야. 그래서 JP가 어렵게 알아보더니 마침 미국에서 농림부가 쓸 10만 달러가 들어왔다면서 그 중 5만 달러를 겨우 살 수 있게 해줬어요. 그거라도 감지덕지다 하고 당장 신용장 열고 일본으로 갔지만 그때 달러 해결이 안 됐으면 라면공장은 어려웠어요. 그게 절묘한 운이고, 어찌 보면 내 인생을 변화시킨 순간이야.”

글 이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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