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문화지도]1.영화 '큰시장규모 비해 내실은 허약'

중앙일보

입력 1998.10.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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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오늘 정부가 일본 대중문화개방 계획을 발표한다.

단계별 개방인데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과연 일본문화는 얼마나 강한가.

아니 우리는 일본문화를 제대로 알고 있나. 상대를 알아야 대응전략도 낼 수 있다는 입장에서 일본문화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을 시작한다.

영화.가요등 대중문화는 물론 문학.미술.뮤지컬까지의 일본문화지도. 편집자

최근 대중매체에서는 '일본영화가 부활하고 있다' 는 얘기들이 쏟아져나왔다.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작이 많았고 또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 몇몇 있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 실정을 조금이라도 아는 이들은 '일본 영화계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라고 입을 모은다.

흥행 순위 10위권은 할리우드 영화가 석권한다.

반면 '일본 영화를 보지 않는 건 일본인뿐' 이라는 자조가 나돌 정도로 자국영화는 맥을 못추고 있다.

일본의 영화시장은 한국의 5~7배로 추산된다.

연간 매출규모는 1천5백억엔 (약 1조5천억원) 대. 제작편수도 3백편 선으로 한국의 50편 내외에 비할 때 월등히 많다.

작년 한 해 흥행 1~10위 영화들이 거둬들인 수입만 해도 총 2백19억엔 (약 2천1백90억원) .공전의 히트를 친 애니메이션 '원령공주' 가 1백7억엔으로 수위를 차지했다.

흥행수입 상위권은 애니메이션과 괴수.귀신 이야기를 다룬 어린이용 영화가 대부분이다.

'에반겔리온' '학교괴담' 등 작년 흥행수입 10위까지 랭크된 영화 중 8편이 이런 범주에 속했다.

영상원 교환교수를 역임한 이시자까 겐지씨는 "극단적으로 말해 일본 영화산업의 재정을 떠받치고 있는 건 어린이용 영화" 라면서 "어린이용 영화로 돈을 벌어 성인용 영화를 만들고 있는 게 일본" 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경향을 선도하는 건 쇼치쿠 (松竹).도호 (東寶).도에이 (東映) 등 메이저 3사. 이들은 제작.배급.흥행을 통괄하는 이른바 '블록부킹 시스템' 을 오랫동안 유지해왔다.

이 시스템을 통해 전국의 극장망을 장악해 외국영화의 자국시장 잠식을 방어해왔다.

현재 자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은 약 40%선. 하지만 상업영화만을 '찍어대듯' 만들어내는 틈새를 비집고 독립영화 제작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 일본 영화계의 또 다른 풍경이다.

기타노 다케시, 이와이 순지, 수오 마사유키, 쓰카모토 신야, 재일교포 최양일 감독들이 모두 이런 류에 속한다.

독립영화의 생산이 가능한 것은 비록 제한적이긴 하지만 상영 공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와이 순지 감독의 '러브레터' 는 도쿄에선 한 극장에서 개봉돼 1년동안 상영됐다.

이들 예술영화들이 흥행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작년 칸영화제 대상작인 '우나기' 가 상영된 극장도 썰렁하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대거 등장한 젊은 감독들이 생기를 불어넣고 있는 건 주목할 만하다.

수오 마사유키 감독의 '함께 춤추실까요' 는 일본 영화로는 드물게 미국에서 상영돼 50만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들였고 미국영화사 미라맥스에 리메이크 판권까지 팔렸다.

일본영화의 강점 중 하나는 소재와 장르의 다양성이다.

한국처럼 멜로면 멜로, 코미디면 코미디로 시기에 따라 유행을 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영화들이 지속적으로 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 라는 수준에서 볼 때 일본영화계는 소문에 비해 허약하다.

제작편수는 많지만 이들중 80~90%는 완성도 면에서 세계 시장을 위협할 정도에 미치지 못한다.

실제로 세계시장에서의 성공률은 중국.홍콩 영화에 비해서도 쳐진다는게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해외배급도 대부분 자체 배급망이 없어 포르티시모.셀룰로이드 드림스 등 유럽의 배급사들을 통해왔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번 한국의 영화시장 개방이 그들에게 자체 배급에 대한 관심과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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