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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특허의 역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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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라인 강은 중세 유럽 무역의 젖줄이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보호 아래 안전하게 운항하는 대가로 상선들은 성의껏 통행료를 지불했다. 그런데 13세기 들어 황제의 권위가 약화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봉건 귀족들이 멋대로 라인 강변에 성을 짓고 제각기 통행료를 걷기 시작한 것이다. 수백 개나 되는 이들 요금소의 횡포에 지쳐 상선들은 아예 강을 지날 생각을 접게 됐다. 라인 강 무역은 쇠퇴했고 덩달아 귀족들의 호주머니도 홀쭉해졌다.

이처럼 여럿이 자원을 조각조각 나눠 갖는 데 따른 폐단을 이른바 ‘반(反)공유재의 비극’이라 일컫는다. 주인 없는 자원을 모두가 남용하는 ‘공유재의 비극’도 문제지만, 라인 강 사례같이 주인이 너무 많아 아무도 이용 못하는 것 역시 곤란하단 얘기다(마이클 헬러, 『소유의 역습 그리드락』).

갈수록 특허가 세분화되는 생명공학 분야가 대표적이다. 지난 30년간 승인된 DNA 관련 특허만 4만여 개다. 신약을 개발하려는 제약회사들은 보통 수십 개의 특허 보유자를 일일이 접촉해 협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모두를 찾기가 힘들뿐더러 보상액이 장차 얻게 될 이익보다 큰 경우도 많아 개발 계획을 엎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이 맹위를 떨치던 당시 백신 개발이 지지부진했던 것도 그래서다.

영양 결핍으로 시력과 생명을 잃는 제3세계 아이들을 구하기 위한 ‘황금쌀(Golden Rice)’ 역시 하마터면 못 태어날 뻔했다. 1999년 두 과학자가 비타민A를 강화한 기적의 쌀 개발에 성공했지만 무려 70여 개의 특허 사용 허가를 받아야 하는 난관에 부닥친 것이다. 인도주의적이란 평판을 노린 특허 보유자들이 무료 사용을 허락한 뒤에야 이 쌀은 어렵사리 빛을 보게 됐다.

이같이 혁신과 창의를 북돋워야 할 특허가 오히려 발목을 잡는 역설이 횡행한다. 요즘 논란이 된 ‘특허 괴물(patent trolls)’은 그 역설의 사생아들이다. 스스로 아무것도 만들지 않으면서 남들이 침해하기 쉬운 특허만 골라 산 뒤 배상금을 타내는 이들의 마수에 국내 기업들도 딱 걸렸다고 한다. 특허를 머니 게임 수단으로 삼는 그들은 어쩐지 실물경제와 무관한 돈놀이로 위기를 부른 금융기관들을 닮았다. 본모습을 잃은 괴물들이 설쳐대며 본질을 망치는 게 바로 우리 시대의 비극이다.

신예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