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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문화연구원 3명 '1485년, 금강산에서'펴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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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 연구원으로 일하는 신명호.김혁.최재복씨. 모두 30대 중반의 젊은 학자들로 전공은 각각 한국 정치사.미술사.불교사. 그들이 손을 잡고 '1485년 금강산에서' (지식공작소刊) 란 책을 집필, 잃어버린 금강산의 시간을 찾아 과거로 문화여행을 시도했다.

이야기의 뼈대는 조선 단종 때의 문신으로 생육신의 한 명인 추강 (秋江) 남효온 (南孝溫) 의 '유금강산록' (遊金剛山錄) .세조의 쿠데타에 분개하다 반체제 인사로 찍혀 평생을 유람하며 보낸 추강. 1485년 초여름 35일 동안 금강산을 주유한 추강을 그대로 따라갔다.

그리고 한학을 공부하는 '나' 를 등장시켜 추강과 시를 주고받으며 금강산의 민족적 의미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인다.

과거와 현재의 대화요 만남인 셈. 추강의 탐승 코스는 외금강에서 시작해 내금강을 거쳐 해금강까지. 총석정.발연암.구룡폭포.묘길상.마하연.만폭동.보덕암.표훈사.장안사.삼일포 등등. 임진왜란과 6.25 등 전쟁에 훼손되지 않은 금강산의 온전한 모습을 보여준다.

원작에 없는 정철.이이.박지원의 명문, 정선.김홍도의 그림을 찾아넣은 저자들의 준비도 꼼꼼하다.

하지만 책의 저울추는 절경보다 역사 쪽에 있다.

철저한 유학자였던 추강은 금강산 이름부터 시비를 건다.

원래 개골산 (皆骨山).풍악산 (楓岳山) 으로 불렸으나 불교가 들어오면서 금강산.열반산 (涅槃山) 등 불경에서 따온 이름이 득세했다는 것. 그가 반대하던 세조에 등을 기댔던 불교에 대한 반감이 작용한 탓도 크다.

반면 장안사나 표훈사에 고려를 지배한 원나라 황제가 조성한 불상이 즐비하고 그것에 무감각한 조선 승려들의 태도를 개탄하는 부분에선 현대적 의미의 민족적 의식도 묻어난다.

98년의 '나' 도 추강을 이어받는다.

오늘의 금강산도 분단 때문에 안타까운 산으로 변질됐다는 것. 북쪽에서는 혁명의 위업을 홍보하는 도구로 훼손되고, 남쪽에서는 그저 경관 수려한 산으로 말이다.

통일신라 마의태자의 비운, 고려 태조 왕건에 얽힌 전설, 임진왜란 의병들의 활동 등 역사적 발자취와 관계없이 관광과 돈벌이만 앞서는 것이 아닌지 걱정한다.

결론은 금강산을 보면 시대가 보인다는 것. 그리고 통일을 향한 시금석으로 금강산에 대한 각성을 주문한다.

좌절이 아닌 희망, 분열이 아닌 화해의 금강산을. 각각 환란과 식량난으로 위협받고 있는 남북한 정황이 원나라 침략 직전 고려 모습과 흡사하다는 지적도 시사적이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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