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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기물 파손 땐 민사 배상까지 하게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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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법무법인 태평양의 창립자인 김인섭(73·사진) 명예 대표변호사는 요즘 ‘법치주의 전도사’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원로 법조인으로서 “현재 대한민국의 가장 큰 문제를 법치주의의 위기”라고 진단해 왔기 때문이다. 그에게 제헌절 61주년을 맞은 한국 법치주의의 길을 물었다.

-1948년 7월 17일 제헌 헌법이 공포돼 우리나라의 법치가 시작됐습니다. 47년 경력의 법조인으로 법치주의를 강조해 오신 이유를 설명해 주시죠.

“법과 법치주의가 없다면 약육강식의 정글(Jungle)의 법칙이 지배하는 사회로 되돌아갑니다. 법치주의는 국민 인권을 보호하는 소극적 기능만이 아니라 경제와 문화 발전, 국가 경쟁력과 연관된 사회적 자본입니다. 그래서 법치주의 정착을 위한 운동을 나름대로 은퇴 전부터 준비했어요.”

-유행어 중에 ‘국민정서법’ ‘떼법’이 있을 정도로 만연된 반(反)법치적 행태의 역사적 원인은 뭐라고 보십니까.

“광복 이후 이승만 박사가 미국에서 수입한 민주주의 제도를 우리가 제대로 소화를 못 한 겁니다. 당시 이 박사도 대통령이 된 뒤 법대로 운용을 안 했죠. 박정희 대통령 집권 때도 경제의 압축성장 과정에서 ‘듀 프로세스(Due process·절차적 정당성)’는 무시됐습니다. 87년 민주화 이후 정권을 잡은 재야운동권 출신도 새로운 특권층이 됐을 뿐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60여 년이 흐르는 동안 이제는 법을 윗사람도, 중간도, 아랫사람도 안 지키는 반법치적 행태가 사회에 만연돼 버렸어요.”

-‘법만 잘 지켜도 성장률이 1% 오른다’며 법치주의 확립을 국정 과제로 내세웠던 현 정부는 어떤가요.

“경제·최고경영자(CEO) 대통령이라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급선무로 추진하면서 너무 성급했어요. 결국 절차적 정당성을 경시하는 자기 함정의 한계에 빠져 협상 실수를 하면서 반MB 세력의 저항에 부딪혀 힘을 못 쓰는 상황이 돼 버린 겁니다. 임기가 보장된 국영기업체 장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내쫓는 관행을 답습하는 것을 보면 완벽한 법치는 못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네르바 구속 수사와 서울광장의 집회 불허를 두고 ‘집회·시위의 자유 탄압이다’ ‘민주주의 후퇴’라는 말도 나오는데요.

“검찰이 공익을 훼손했다고 기소했다면 재판 과정에서 유·무죄를 가려야지 정치권이나 시위 현장에서 논쟁할 문제는 아니에요. 서울시의 서울광장 사용 불허도 행정소송을 하든 해야지 ‘민주주의 후퇴’라는 식으로 선동하는 건 포퓰리즘식 장난입니다. 시위대가 경찰을 무장 해제하고 폭행하는 등 공권력에 대한 도전을 용인하는 것은 법치국가에선 있을 수 없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타협할 것은 타협하되 법치는 타협의 대상이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는 어떻게 보십니까.

“사면권 남용은 법치의 암적인 존재예요. 재판이 확정되자마자 대통령이 다음 날 사면하고 중요한 공직에 임명해 버리는 데 법치가 되겠어요. 사면권 심사위원회를 만들어 제도적으로 남용을 제한해야 합니다.”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관여 논란이나 전관 예우 논란처럼 사법부 스스로 법치에 반하는 행태도 거론됩니다.

“법관의 재판 중 0.01%도 안 되는 극소수 특수 사건만이 권력이나 재벌들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닌가 추측됩니다. 그걸 언론이 확대 재생산해 보도하면 사법부의 불신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법관의 양심은 외부 권력에 휘둘려서도 안 되지만 민심·여론조사·통계 같은 데 휘둘려서도 안 됩니다.”

-법을 만드는 입법가들 스스로의 불법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

“국회의원에게 신분 보장과 면책특권을 제공하는 것은 소신대로 할 일을 잘하라는 것이지 마음대로 법을 어기라고 한 게 아닙니다. 언론에서 모든 국회의원 개개인의 의정활동의 공과를 모니터링해 정기적으로 공개해 주면 의원들의 탈선이 견제가 될 겁니다. 국회 기물 파손 등 도를 넘은 폭력행위는 면책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형사처벌뿐 아니라 민사배상까지 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제헌절 국회에선 다수당과 소수당 사이의 타협이 이뤄지지 않아 본회의장 점거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합의를 이루도록 노력하되 안 될 경우 결정은 다수결로 하는 게 민주주의입니다. 다수결 결정을 막는 것은 우리 헌법상 민주주의 제도의 작동을 방해하는 행위입니다. 다수결 표결 처리를 못 한다면 앞으로 영원히 결정을 못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만난 사람=최훈 정치 데스크
정리=정효식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김인섭 변호사=고등고시 14회. 1963~80년 판사로 재직한 뒤 80년 대한민국 대표 로펌의 하나인 태평양을 설립해 22년간 변호사로 일했다. 만 65세이던 2002년 12월 대표변호사에서 은퇴해 ‘법치주의 국민운동’을 시작했다. 지식인포럼인 ‘굿소사이어티’의 창립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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