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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외 파생상품 안전성 미리 검증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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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장외 파생상품도 의약품처럼 팔기 전에 안전성을 검증하는 제도가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 민주당 이성남 의원(전 금융통화운영위원)이 발의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올 2월 시행된 자본시장법은 날씨·재해·범죄율·실업률 등을 기초자산으로 한 장외 파생상품도 나올 수 있도록 제한을 확 풀었다. 이번 개정안은 이런 새로운 유형의 장외 파생상품이나 키코(KIKO)처럼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 장외 파생상품이 새로 출시될 때 사전 심의를 받도록 하자는 것이다.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복잡한 장외 파생상품 때문에 금융권이 연쇄 부실에 처하는 사태를 막자는 취지다.

하지만 은행권은 이 법안이 금융회사의 신상품 개발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시장의 자율성을 옥죄는 과도한 규제라는 주장이다. 주한 외국은행단은 지난달 말 국회에 항의서한을 전달하기도 했다.

논란이 커지자 서울파이낸셜포럼은 15일 서울 소공동 한 호텔에서 개정안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김기환 서울 파이낸셜포럼 회장의 사회로 이성남 의원과 최운열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 민상기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황건호 금융투자협회장, 현종훈 ING은행 매니저,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실장, 최명주 GK파트너스 사장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이들은 장외 파생상품의 위험을 관리해야 한다는 점엔 공감했다. 최운열 교수는 “장외 파생상품에 대한 통계도 없고, 어디서도 모니터링하지 않는 건 문제”라며 “금융위기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는 점엔 동의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전 심의가 과연 효과적인 방법인지엔 의문을 나타냈다. 김필규 실장은 “사전 심의는 외국에 없는 강한 규제”라며 “위험을 막는 것보다는 장외 파생상품의 거래를 억제하는 효과가 더 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명주 사장도 “굳이 사전 심의를 하는 것보다는 파생상품이 가진 위험이 어떤 게 있는지 구체적으로 공시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효과는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이성남 의원은 이에 대해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예로 들며 반박했다. “LTV(담보인정비율)와 DTI(총부채상환비율)를 한꺼번에 도입한 건 우리나라밖에 없었지만, 그 덕분에 금융위기를 잘 넘기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장외 파생상품의 부실 위험을 막기 위해서도 그와 같은 선제적인 예방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개정안이 금융투자협회를 심의기관으로 정한 것도 논란거리다. 선물환과 금리 스와프 등 장외 파생상품의 90% 이상은 은행이 다룬다. 그런데 정작 심의는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를 정회원으로 하는 금융투자협회에 맡긴 것이다. 현종훈 매니저는 “증권사와 은행의 입장은 다른데, 금투협이 과연 사전 심의에서 은행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 합리적으로 심의할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투협 황건호 회장은 “사전 심의가 ‘뜨거운 감자’라서 우리도 곤란한 입장이지만 개정안이 시행된다면 철저하고 공정하게 심의토록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성남 의원은 “당초 금융감독기관이 심의를 맡는 방안도 논의됐지만 정부가 상품에 직접 개입하는 건 적절치 않아 자율기구인 금투협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개정안은 4월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해 정무위원회 전체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개정안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국내 장외 파생상품의 잔액은 지난해 말 현재 6020조원으로 2007년 말보다 25.9% 증가했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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