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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권한을 적극적으로 써라, 맞고 나서 문제 삼지 말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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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호 12면

27일 오전 3시30분쯤 중앙지구대 내부 모습. 건물 안 CCTV 모니터에 비친 장면이다. 조강수 기자

27일 새벽 3시. 서울 영등포경찰서 중앙지구대 건물 안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만취한 A씨(30)가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 두 명에게 붙잡혀 들어왔다. 현행범으로 체포된 그의 양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건장한 체구의 A씨는 들어오자마자 소리를 버럭버럭 질렀다. “이 XX들아, 니들이 뭐야, 경찰이면 다야.” 그는 수갑을 찬 채 한 시간 가까이 지구대 안에서 소란을 피우다 경찰서 형사계로 넘겨졌다. 그의 혐의는 재물손괴. 경찰이 출동했을 때 A씨는 영등포 시장의 횟집에서 칼을 들고 “다 죽이겠다”며 난동을 부리던 중이었다. 횟집 기물들을 마구 부수고 셔터문을 발로 차 찌그러뜨렸다. 술김에 벌어진 사소한 시비가 발단이었다.

공무집행방해죄 남용 말라는 법원의 훈수

같은 시각 지구대 밖에서는 말쑥한 외모의 20대 후반 남자가 나이가 50대로 보이는 경찰관들을 훈계조로 타박했다. 폭행 피의자인 이 남자가 후배를 만나러 지구대 밖으로 나오는 것을 제지하자 발끈해서였다.

“경찰들이 이러니까 박정희, 전두환이 나오는 거요. 니 사정이라니…. 국가의 녹을 받는 분들이 시민에게 그런 말을 하면 됩니까. (고함을 지르며)똑바로 좀 하세요.”
영등포 시장 인근 유흥주점에서 술을 마시다 옆자리 손님과 주먹다짐을 벌였다는 그의 옷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매일 밤 경찰서 지구대나 파출소에서 벌어지는 풍경이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경찰관들은 ‘주사파(酒邪派)와의 전쟁’이라고 표현한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영등포서 중앙지구대 경찰관 전모씨가 기자에게 말했다. “우리(경찰관)는 ‘다방레지’나 마찬가지예요. 밤마다 술에 취해 찾아드는 손님들을 상대로 온갖 비위를 다 맞춰야 하잖아요. 공권력과 강제력이 있어서 힘 있는 기관으로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희들 함부로 못합니다. 현실과 국민들의 법 감정 간에 괴리가 너무 커요.”

A씨의 경우 예전 같으면 공무집행방해(공집방) 혐의의 적용을 검토해 볼 수도 있는 사안이라고 한다. 하지만 공집방의 법리를 엄격하게 해석하는 법원 판결들이 잇따르면서 현장에서 뛰는 경찰들이 몸을 사리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영등포서 중앙지구대는 이 지역 최대 유흥가인 영등포 시장 맞은편 길 끄트머리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 접수되는 112 신고는 하루 평균 60건. 그중 20여 건이 형사입건이 돼 지구대로 넘어온다. 2~3건은 공집방 사건이다. 주말에는 사건 수가 배로 늘어난다.

“경찰장비 사용 규정 재검토를”
공집방은 공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을 폭행하거나 협박할 경우 성립한다. 법정형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일반 폭행·협박죄보다 무겁다.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취객들이 ‘단골손님’이다.

최근 들어 공집방에 대한 판결이 더욱 엄격해지고 있다.
서울 남부지법은 지난 16일 절차를 무시하고 강제연행하는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황모(43)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불법 연행에 저항하다 폭행에 이른 것이어서 공무집행방해가 아니다”고 판결한 것이다.

이달 초에는 춘천지방법원 형사1부(재판장 정강찬 부장판사·사진)가 이례적인 판결문을 내놨다. 정 부장판사는 성악을 잘해 노래하는 판사로 불린다. 공집방으로 기소된 피고인 2명에 대한 항소심 판결을 선고하면서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의 부적절한 대응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경찰관이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사람에 대해 보호조치를 취하거나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는데도 이런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소극적 제지만을 시도하다가 폭행을 당하고 그 처리를 공집방에 의존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판시했다. 그런 이유로 1심에서 만취한 상태에서 여경사를 밀어 넘어뜨린 혐의(공집방)로 징역 8월을 선고받았던 건설 노동자 전모(42)씨는 2심에서 집행유예로 형량이 줄었다. 전씨는 두 차례의 공무집행방해 전력을 포함, 폭력전과 11범이다.

또 파출소에서 소변을 보고 경찰관의 이마를 들이받은 사실이 인정돼 1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 받은 운전기사 김모(40)씨에 대한 검찰의 항소도 기각됐다. “죄질에 비춰 벌금 300만원이면 적정 형량”이라는 이유였다.

판결문에는 ▶경찰관들이 현장에서 적절하게 강제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마련하고 체계적·반복적인 훈련을 시켜야 하며 ▶취객 보호를 종합적으로 관리·규율할 수 있는 법령을 제정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주목되는 건 춘천지법 재판부가 전체 판결문의 3분의 2를 할애,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공무집행방해죄에 대한 입법적 차원의 조치 등 근본적 재검토 필요성을 지적한 대목이다. “공무집행방해 관련 범죄를 현장에서 다룰 때 경찰관직무집행법상의 경찰장비 사용 규정이 제한적이거나 모호하다”는 등의 이유를 달았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이런 판결들을 ‘수사기관의 편의주의적인 기소 남발에 제동을 건 것’이라며 반긴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공권력을 무시하는 풍조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걱정한다.

“만취자한테 살짝 맞고 체포하는게 편해”
경찰관 생활 31년째인 중앙지구대 소속 김형택 순찰팀장은 “술만 먹으면 지구대를 찾아와 소란을 피우다 가는 사람만 우리 관내에 10명이 넘어요. 경찰서를 놀이터 정도로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경찰관을 폭행해도 벌금형으로 금방 풀려나는 일이 되풀이되니까 그런 것 같아요.”

김 팀장은 구체적인 사례를 들려줬다.
“올해 환갑을 맞은 한모씨는 생활보호대상자입니다. 몇 년 동안 파출소에 와서 행패를 부리다 25번이나 경범죄로 처벌받았고 공집방으로 기소되기도 했어요. 술만 마시면 지구대로 찾아와요. 상대를 안 해 주면 불친절하다며 진정서를 내고 투서하니…요즘엔 아예 벌금조차 안 내요. 돈이 없다나.”

김 팀장은 만취자를 연행하려다 안경이 깨지면서 얼굴을 다친 경험이 있다. 봉합수술을 받았지만 손해 배상이란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자비로 해결했다. 경찰관은 공무 중 피해를 보았더라도 시민과 개별적으로 합의하지 못한다는 내부 규정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공무집행 과정의 어려움을 얘기했다. “술에 만취해 난동을 부리는 사람을 상대로 주거지가 일정한지를 알아내고 그의 행위가 경범죄처벌법 대상인지, 그보다 중한 형법상 처벌 대상인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만취한 난동자를 연행해 조사할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은 현행범으로 체포하는 것이다. 차라리 가볍게라도 폭행을 당하고 공집방으로 처리하는 게 인사불성인 취객과 장시간 씨름을 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경찰관들이 나오는 이유다.”

경찰관들이 공권력을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데는 그 나름의 이유도 있다.
현행 경찰관직무집행법에 따르면 경찰관은 취객을 상대로 수갑·포승·경찰봉·방패 등 경찰장비와 무기 사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조건이 엄격하다. 영장 집행이나 범인 또는 취객의 자살, 자해기도를 막기 위해 사용할 수 있다고만 규정돼 있다. 사후에 논란이 될 소지가 많은 것이다. 이 때문에 정작 현장에서 경찰장비를 사용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경찰청 박상융 총경(마약지능수사과장)은 “사법부는 법 논리대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경찰 수사를 신뢰하지 못하는 탓도 일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술에 관대한 사회적 분위기도 책임”
공집방 사건은 해마다 늘고 있다. 경찰청이 집계한 최근 5년간의 통계에 따르면 2005년 7623명→2006년 9723명→2007년 1만3803명→2008년 1만5646명으로 늘었다. 연평균 23.3%가 늘어난 것이다. 올해는 5월까지 6161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5540명에 비해 11.2% 늘었다. 전체 공집방 사범의 45% 이상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조사 결과도 나와 있다. 박상융 총경은 “이처럼 공집방 사범이 많은 건 술에 대해 관대한 사회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고 말한다. 실제로 공집방 사건으로 기소된 사람 가운데 구속되는 경우는 10명 중 1명꼴 정도다.

외국에선 공집방을 어떻게 처벌할까. 무기 소지가 보편화된 미국에선 경찰의 체포에 저항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 경찰은 범죄 용의자가 저항하면 주저 없이 진압장비를 동원한다. 사태가 심각한 경우 총기를 발사한다. 미국 대다수의 주는 공공장소에서의 음주행위와 주취 상태를 형법으로 처벌한다. 통상 500~1000달러의 벌금을 부과한다. 타인에게 해를 가할 수 있는 우려가 있는 취객에 대해서는 48시간 동안 경찰서 유치장이나 주취해소센터에 보호할 수 있다. 난동을 부리면 가죽끈이나 수갑 등 진압장구를 사용한다.

일본도 난동을 부리는 취객을 구금하기 위한 유치장과 별도의 보호시설을 갖추고 있다. 난폭·자해 행위가 우려되면 수갑·포승·진정의·방성구 등을 사용할 수 있다. 반면 인권을 중시하는 독일은 공집방의 법정형이 2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형으로 낮은 편이다. 공무원이 적법하게 강제력을 동원하더라도 개인생활의 영역이 침해받은 점을 감안한 것이다.

경찰은 죄질이 나쁜 공집방 사범은 지금처럼 구속 또는 불구속기소 하되 경미한 공무집행방해 사범은 즉결심판제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현재 경찰은 지구대에서 계속 욕설을 하거나 기물을 파손하는 취객에 대해 업무방해나 모욕죄 등으로 불구속입건한다. 하지만 무죄가 선고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따라서 불구속 입건하는 대신 법원에 실질적인 효과가 있는 구류 처분을 요청하겠다는 것이다. 취객이 경범죄처벌법으로 즉심에 넘겨져 구류 처분을 받게 되면 최장 29일까지 유치장에 갇힐 수 있다. 박 총경은 “공집방 사범은 증가하는데 구속자는 줄어드는 게 현실”이라며 “그렇다면 신속하게 판사에게 데려가 적정한 판단을 받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취객 보호시설의 설치도 과제다. 예전엔 경찰서 내에 유치장과 보호실이 따로 있었다. 이 시설들은 ‘영장 없는 보호실 유치는 영장주의 위반으로 위법이다’는 1998년 대법원 판결 이후 없어졌다.

김형택 팀장은 “술 취해 길 위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발견해도 경찰관이 데려다가 보호할 방법이 없다. 취객 보호시설이 없어서다. 현행 법률상 부랑아나 걸인 보호시설은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도록 돼 있지만 제대로 하는 곳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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