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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박세리 길러낸 아버지 박준철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박세리 - .온갖 찬사를 한몸에 받고있는 그지만 한꺼풀 아래에는 남모르는 아픔과 역경도 있었다.

하지만 거친 비바람을 겪고 피어난 장미가 더욱 고귀한 법. 박세리에게 아버지 박준철 (朴峻喆.48) 은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덫' 이자 버팀목이었다.

결코 돌이켜보고 싶지 않은 '과거' 를 털어버리고 '주먹 왕초' 에서 희대의 승부사로 변신한 아버지 박준철의 딸로 태어난 순간 이미 오늘이 예약돼 있었다.

딸의 쾌거가 있은지 며칠이 지나 이젠 웬만큼 평소의 마음을 되찾을 법도 한데, 그는 인터뷰 내내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동안의 고생 때문일까, 아직도 믿어지지 않아서일까.

- 이미 수없이 받으셨을테지만 다시 한번 축하합니다. 세리가 우승하기까지 걱정이 많았을텐데요.

"대회 직전인 11일 밤 세리가 전화를 걸어왔어요. 가만 듣고보니 향수병을 단단히 앓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렇게 힘들면 내일 당장이라도 짐을 챙겨 돌아오라고 했죠. 조금도 부담갖지 말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오히려 세리가 '그동안 고생한 게 어딘데 이제 와서 중도포기하느냐' 며 버럭 소리를 질러댑디다. 그처럼 화내는 적은 처음이었죠. 그래서 내심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

- 사실상의 '코치' 로서 보는 '세리 골프' 의 비결은.

"체력과 지구력, 그리고 자신감입니다. 중3때인 92년부터 체력단련을 위해 아파트 15층 계단을 매일 새벽 4, 5차례씩 오르내리게 했습니다. 내려올 때는 뒷걸음을 시켰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지 몰랐습니다. 집중력과 다리근력을 키울 요량이었습니다만 제가 한번 해보니 5층밖에 못 내려오겠더군요. 그런데 세리는 아무런 불평없이 참아냈습니다. 여기에다 지구력 강화를 위해 스윙을 반복해 시켰습니다. 벙커샷 훈련 때는 모래사장에 텐트를 치고 며칠동안 밤낮없이 스윙연습만 시켰지요. 이번 경기에서 세리가 보여준 매끄러운 벙커 샷과 최종라운드 14번홀에서 떡갈나무를 넘기는 호쾌한 아이언 샷도 그때의 무식한 (?) 훈련 덕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

- 때로는 깊은 산속 무덤가에서 스윙연습을 시켰다는데.

"담력과 배짱을 키우기 위해서였죠. 특히 골프에서의 승부는 자신과의 싸움인 만큼 모든 게 자기 탓이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이따금 투견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개싸움에서 이기는 놈은 결코 울지 않거든요. 또 한국이 아닌 세계를 보라고 다그쳤습니다. 미국 여자프로골프 명예의 전당에 올라있는 낸시 로페스.페티 시안.로라 데이비스 등 정상급 선수들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

- 하고 많은 운동중에 딸에게 골프를 시킨 이유는.

"막연하나마 '돈' 이 될 거란 생각에서였습니다. 어려울수록 최고가 되면 돌아오는 것도 많지 않겠나 싶어 오기로 시작했는데 세리가 잘 따라줬습니다."

-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당시 대전은 골프 불모지였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를 가르칠 수 있는 지식과 실력이 필요했습니다. 때문에 저부터 공부해야 했습니다. 유명선수들의 비디오 테이프를 빌려다 보며 연구했죠. 미국 여자골프계의 동정도 살피고요. 행여 스윙자세가 이해가 안될 때는 자다가도 몇차례씩 일어나 시험해보기도 했습니다.0 " (朴씨는 핸디캡이 3정도인 싱글 골퍼다)

- 당시 골프를 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텐데요. 따돌림같은 건 없었습니까.

"말해 뭣하겠어요. 세리가 중3때 여주에서 열린 골프다이제스트컵대회였어요, 첫날 그늘집에 학부형 여럿이 모여있기에 다가가 먼저 인사를 건넸더니 본체도 않습디다. 죄다 행세깨나 한다는 사람들이다 보니 저희 부녀가 안중에 없었던 거죠. 그래서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세리를 불러 우승컵 앞에 서게 하고는 대뜸 '이거 네거다' 하고 그 컵을 세리에게 건넸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미친 놈 아니냐' 는 식으로 바라보며 빈정대길래 '우리 세리가 가져갈텐데 미리 손 좀 대면 어떠냐' 고 호기있게 큰소리로 떠벌렸지요. 그리고는 '아빠말 맞지' 하고 물었더니 세리가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떡입디다. 딸에게 내 말이 틀리면 손가락을 자르겠다고까지 했는데 지 애비 살리려고 그랬는지 결국 그 컵은 세리가 가져왔습니다. "

- 세리를 두고 효녀라고들 하던데.

"세리는 자신을 위해 부모가 애쓴다는 걸 일찍이 알았던 것 같습니다. 애비가 다른 사람한테 수모를 당하는 것도 수차 보았고요. 세리가 우승컵을 받아든 뒤 제게 전화를 걸어 한 첫마디가 '아빠, 좋지?' 였습니다. 마지막 퍼팅하는 순간 홀컵에 제 얼굴이 가장 먼저 보였다나요. 세리는 그런 아이입니다. "

- 실례지만 과거 '주먹세계' 에 몸담았던 것으로 아는데요.

"솔직히 건달이었습니다. 거칠게 살아왔다고나 할까요. 한때 그 바닥에서 잘 나가는 편이었죠. 가정을 지킨답시고 86년 하와이로 이민을 떠났는데 거기 가서도 연결되는게 오로지 그 바닥의 '형, 동생' 들 뿐이었습니다.

결국 넉달을 버티다 식구들만 남겨둔 채 혼자 돌아왔습니다. 귀국하자마자 그동안 구축해놓은 세력 위축을 우려한 상대방측으로부터 칼침을 맞아 1년간 사경을 헤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린 자식들 때문인지 몰라도 다시 살아나 이처럼 영광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

- 앞으로 세리가 큰 돈을 벌텐데 생각해둔 계획이라도 있습니까.

"돈 문제는 세리엄마 몫이라 잘 모릅니다. 하지만 세리가 과거 어려운 때를 잊지 않고 있는 만큼 때가 되면 후배 육성이나 불우이웃돕기 사업 등을 할 겁니다. 세리의 정신연령은 40대입니다. " (웃음)

- 세리를 낳을 때 용꿈은 안꿨습니까.

"처음 밝히는건데…. 세리는 사실 대전을 떠나 광주로 피난 (?) 갔을 때 태어났습니다. 송정리 형님댁에서지요. 태몽은 제가 꾸었는데 용 대신 가물치입디다. 팔뚝만한 놈들이 떼를 이뤄 한곳에 몰려 있었는데 유독 그 가운데 네발 달린 놈 한마리가 야광처럼 빛을 내더라고요. 그런데 이 놈이 꿈틀대면 다른 놈들이 모두 피해가는 것이 보였어요. 그후 열흘만에 핏덩이인 세리를 안고 대전으로 돌아오게 됐지요.

- '제2의 박세리' 를 꿈꾸는 운동선수의 부모들에게 한마디 해준다면.

"자신이 못한 일을 자식을 통해 이루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재능있는 자식도 부모 과욕으로 잘못된 경우가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식을 위해 먼저 헌신하는 자세입니다. 특히 큰 꿈을 갖는 운동선수의 부모는 부모가 먼저 선수가 돼야 합니다. "

만난사람=전종구 전국부차장

〈ck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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