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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 침범 선박' 누구 말이 맞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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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 14일 발생한 북한 경비정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 때 군이 허위보고를 했는지를 조사하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져 군이 긴장하고 있다. 누락보고 혹은 허위보고의 문제는 15일 오후 국가정보원이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은 국정원의 문제 제기가 있은 몇 시간 뒤 우리 군측에 항의 통지문을 핫라인을 통해 전달했다는 게 군 고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북측의 일방적 주장을 그대로 믿기 어려운 대목도 있다.

◇북한 함정 핫라인 응답했다=합참은 14일 사건 당시 "북한 경비정이 오후 4시40분 NLL에 접근할 때 한 차례, 4시48분 NLL을 넘었을 때 세 차례 등 모두 네 차례의 경고 무전을 보냈으나 응답이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 함정은 당시 우리 함정에 국제상선공통망(공통 무선주파수)을 통해 세 차례 송신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은 15일 전화 통지문에서 "내려가는 선박은 우리 어선이 아닌 중국 어선"이라고 했다. 국방부는 이를 전달받고 당시 상황을 조사한 결과, 함포 사격을 했던 출동 함정이 북한의 무선을 들었으며, 이를 2함대사령부를 거쳐 해군작전사령부에 보고한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 같은 사실은 합참엔 보고되지 않았다. 쌍방 교전에 이를 수도 있었던 비상상황의 전말이 최고 군령기관인 합참에 보고되지 않은 것은, 국방부와 합참의 장악력이나 군의 기강에 문제가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보고누락의 주체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랬는지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필요한 대목이다.

◇중국 어선 맞나=NLL을 넘은 선박이 중국 어선이라는 북한의 주장에도 의문이 있다. 중국 어선에 한국 군함이 함포 사격을 했다면 심각한 외교 문제로 발전할 수 있는 중대 사안이다. 그런데도 중국은 이와 관련한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다.

해군 고위 관계자는 16일 "서해 해상을 들여다보는 2함대의 해군전술지휘통제체계(KNTDS)에서 어선을 경비정으로 착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북한의 통지문 중 NLL 월선 선박이 중국 어선이라는 내용은 거짓말"이라고 단언했다. 분명히 북한의 경비정이었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북한의 중국어선 주장을 우리 측이 거짓으로 판단해 경고 사격을 했다는 것이다. 북한이 NLL과 관련된 남측의 의지를 떠보려고 혼란을 조성한 것일 수 있다는 분석이 그래서 나온다. 군 일각에선 청와대와 국방부가 북측의 주장만 믿고 과잉 대응을 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하고 있다.

◇북한 측 응답 시점도 의문=해군이 경고 사격을 한 시간은 14일 오후 4시54분이었다. 북한이 우리 측에 연락한 시점이 경고사격 이후였다면 해군의 판단엔 문제가 없다. 그 전이었다면 해군의 지휘판단 체계에 큰 구멍이 뚫린 것이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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