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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쟝애인의 날]제주 시각장애인 무선동아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제주시 광양로터리 서쪽에 위치한 제주맹인자활복지협회 사무실 한켠에는 아마추어무선국 (HLΦHAM) 이 자리잡고 있다.이곳에서 마이크를 잡는 이들은 이승배 (李承培.30).최진국 (崔珍國.20) 씨등 7명의 시각장애인들로 지난 94년 7월 결성된 '무선동아리' 회원들이다.

모두 호텔에서 안마사로 일하는 바쁜 인생이지만 짬을 내 교신하는 시간만큼은 다양한 정보와 경험의 바다에 빠져들어 온갖 시름을 잊는다.팀장격인 李씨는 최근 서울의 崔모씨와 교신을 가졌다.崔씨는 "동네에 시각장애인이 한 분 사는데 한 번도 얘기를 나눈 적이 없다" 며 李씨가 대화를 나눈 첫 시각장애인이라고 털어놓았다.

李씨는 택시에서 여자손님이 탄 줄을 모르고 무릎 위에 앉으려다 낭패를 당했던 사실등 사회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해프닝을 얘기했다.崔씨는 다음에 꼭 동네 시각장애인에게 다가가 말을 붙여보겠다는 약속과 함께 교신을 끝냈다.

李씨는 "비록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전파를 통해 교신하는 과정에서 장애인들에 대해 잘못된 편견이 사그라질 때면 보람을 느낀다" 고 말한다.이들 '무선동아리' 회원들은 보통 날씨부터 시작해 자기소개와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게 된다.

이 과정에서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리게 되고, 상대방은 장애인에 대한 직.간접적인 경험을 털어놓게 된다.교신상대자들은 시각장애인에게 길을 안내해줬던 일에서부터 시각장애걸인의 동전바구니를 차서 어쩔 줄 몰라 낭패를 당했던 일등을 털어놓는다.

또 책은 어떻게 보는지, 술을 마실 때 잔은 어떻게 채우는지, 사람에게 냄새가 있는지등 평소의 궁금한 점들을 묻기도 한다.그러면 이들 회원들은 시장에서 여자 속치마를 잡고 얼마냐고 물었던 일, 약시인 시각장애인이 대형 거울앞에서 자신에게 길을 묻던 일, 횡단보도에서 옆사람을 따라 걸었는데 그 사람도 같은 시각장애인이었던 일등 에피소드를 얘기하며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녹이게 된다.

이들 회원들은 성산일출봉에서 열리는 일출제와 유채꽃잔치, 고사리꺾기대회, 들불축제등 제주에서 열리는 각종 관광이벤트를 알리는 '홍보맨' 역할을 톡톡히 하기도 한다.

李씨는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등에 관해 관심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평범한 보통사람으로 보아주길 원하다" 며 "장애인은 무조건 도와주어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하는 게 부담스럽다" 고 말한다.

'무선동아리' 회원들은 오는 20일 장애인의 날에 제주시 시민회관 광장에 무선장비를 들고가 전국의 무선동호인들에게 장애인들에 대한 관심과 장애인의 날을 알리는 홍보 전파를 띄울 예정이다.

제주 = 고창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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