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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100일] 노사민정 대타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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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민정 합의문’이 나온 지 100일이 됐다. 위기를 함께 극복하기 위해 임금 동결 또는 삭감한 회사가 지난해보다 다섯 배 이상 늘었다. 일자리 나누기가 확산되면서 외환위기 때와 같은 고용대란이 아직 없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노·사·정 관계에 빨간 불이 켜졌다.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에서 파업이 잇따르고 있다. 한국노총도 각종 정부 정책에 대한 반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상생 모드 확산=근로자들은 허리띠를 졸라맸다. 올 들어 5월 말 현재 임금협상이 타결된 1741개 기업 가운데 44.4%인 773개 기업이 임금을 동결하거나 깎았다. 외환위기 때인 1999년 이후 가장 많다. 임금을 올린 회사의 평균 임금 인상률은 1.5%. 5% 안팎이던 예년에 비해 크게 줄었다.


임금 반납·삭감을 포함해 무파업, 무교섭, 복리후생 축소, 근무형태 조정과 같이 근로자들이 양보해 교섭이 타결된 회사는 1255곳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65건에 비해 18배 늘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사용자 측을 대표해 ‘해고 회피 지원 매뉴얼’을 만들어 기업들이 고용을 유지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정부는 상생기조를 살린 기업에 대해 세무조사를 면제했고 일자리를 나누는 데 2조8000여억원의 예산을 추가로 투입했다. 시민단체도 ‘희망편지 캠페인’ ‘노사화합사업장 물품 우선 구매운동’ 같은 방법으로 상생 분위기 확산에 한몫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이장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외환위기 당시 노·사·정이 과도한 구조조정에 따른 부작용을 경험한 데다 전투적 노동운동의 문제점에 공감하면서 산업현장의 상생 모드가 빠르게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타협 아슬아슬=국회 입법조사처는 2일 ‘일자리 나누기 정책의 개선 과제’를 발표했다. 그중 하나가 민주노총의 노사민정 대타협 참여다. 그동안 전국 각 지역에서 노사화합선언이 이어졌다. 그러나 지난달 경기도 공공기관 노사정 대타협에 민주노총 산하 노조가 모두 참여한 것을 제외하면 화합선언의 파트너는 대부분 한국노총이었다. 민주노총은 “노동자의 희생만 강요한다”며 외면하고 있다. 또 5월 말 현재 파업이 발생한 29곳 중 민주노총 소속이 28곳이다.

한국노총은 최근 민주노총과 함께 최저임금 28.7% 인상을 요구했다. 임금인상 자제선언과 배치되는 행동이다. 5.8% 삭감안을 낸 경총과 일전을 불사할 태세다.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한국노총은 비정규직보호법 개정,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등 제도개선과 관련해 총력투쟁을 선언한 상태다.

성균관대 조준모(경제학) 교수는 “산업현장에서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이 주도해 양보 교섭을 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며 “상급단체가 수용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는 등 실용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하반기는 노사 관계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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