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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대통령의 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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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1970년대에 지금처럼 저작권법이 엄격했다면 가장 많은 저작권료를 챙긴 사람은 누구였을까. 이미자·나훈아와 같은 당대의 인기 가수를 너끈히 제쳤을 사람이 있으니, 다름 아닌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그의 작사·작곡으로 발표된 ‘새마을 노래’는 귀에 못이 박힌다는 표현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전국 방방곡곡에서 밤낮없이 울려퍼졌다. 그렇게 부단히 자기 암시를 한 덕인지, 한국사회는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 길도 넓히’며 노래 가사처럼 변모했다. 실제 작곡자는 음악도였던 박 대통령의 둘째 딸 근령씨란 증언도 나왔으나 사실 여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자연인 박정희가 실제로 좋아한 노래는 ‘동백아가씨’였다. 1979년 후쿠다 다케오 전 일본 총리에게 청와대에서 만찬을 베풀며 가수 이미자를 불러 오붓하게 라이브 공연을 즐기는 동영상이 몇 년 전 공개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동백아가씨’는 87년까지 금지곡으로 묶여 있었으니, 대중에겐 금지시켜놓고 권력자만 내밀히 즐겼다는 비판도 나왔다. 하지만 정작 박정희 본인은 금지곡이란 사실을 몰랐다는 게 가수 이미자의 회고다. 금지 사유는 흔히 ‘왜색 창법’ 때문으로 알려져 있지만 ‘경제 건설에 박차를 가해야 할 시기에 애조 띤 노래가 국민 교육상 좋지 않기 때문’이란 신문 보도도 있었다. 박 대통령의 이미지에 각인된 세 번째 노래는 그의 비극적 최후를 지켜본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한때의 금지곡을 청와대에 울려퍼지게 했다. 탄핵정국을 딛고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2004년 봄, 그는 열린우리당 의원들과 함께 청와대 만찬장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목청껏 불렀다. 광주 민주화 운동 희생자를 기리는 대표적 운동권 가요가 최루탄 연기 자욱한 시위 현장이 아닌 청와대에서 불렸다는 건 시대의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에 메아리친 ‘상록수’는 이제 노무현을 상징하는 노래가 됐다. 시련을 이기며 성장하고 소신을 꺾지 않았던 고인의 인생 역정, 정치 역정과 노랫말이 겹쳐 울림이 컸던 듯하다. 따지고 보면 역대 대통령들에겐 자신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노래들이 있었다. ‘김대중=목포의 눈물’ ‘노태우=베사메무초’와 같은 식이다. 한때 백담사 생활을 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도 자신의 애창곡 ‘방랑시인 김삿갓’을 ‘…전삿갓’으로 바꿔 부르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훗날 무슨 노래로 대중의 기억 속에 남을지 궁금해진다.

예영준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