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삶의 향기

황혼이혼은 개고생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7면

요즘 황혼이혼이 늘었단다. 전체적인 이혼율은 줄었지만 자식 대학 보내자마자 도장 찍는 부부가 많단다. 80% 이상이 여자의 요구라던데 여자들 참 많이도 변했다. 반가운 현상은 아니지만 현실이고 해마다 늘어 갈 것이다. 수명은 길어지고, 퇴직은 빨라지고, 자식 결혼 후로 미루던 이혼이, 결혼에 무관심한 자식들 때문에 대학 입학 후로 앞당겨지고, 그러니 새로운 인생을 설계해 볼 만한 긴 세월도 남았고, 이혼을 결혼의 실패로 보던 시각도 변했고, 이제라도 나를 위해 살고픈 욕구도 생기고, 제일 중요한 것은 독립적인 생계유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2006년부터 전업주부 50% 재산분할 가능성 커짐)이 큰 몫을 했으리라.

참고 묵묵히 가정을 지켜내는 것이 예부터 지켜온 아름다운 한국 여성의 미덕이라 생각한다면 그 미덕일랑 댁의 따님에게나 권하시라. 한 여자의 상처뿐인 인생이 있어야 지켜질 가정이라면 그 가정 지킬 가치조차 없다. 더 이상 여성들도 희생과 인내심을 가지고 가정을 지키려 들지도 않는다. 이제, 길어진 노년기만큼 은퇴 후의 삶의 질도 중요해졌다. 60~70세에도 여전히 섹시하게 사랑하며 건강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지금 이 시간, 당신의 부부관계는 안녕하신지 중간점검이 필요하다.

아내들의 젊은 시절. 정작 남편이라고 해봐야 경제적인 보탬 이외엔 집안에서의 역할도 없고. 과부 아닌 과부 되어 외로운 시절을 위로하며 산 옆집 친구가 바쁜 남편의 자리를 대신한 상태. 이 무렵, 퇴직해 돌아온 남편과 함께한 시간에, 함께 하지 않았던 세월의 서운함이 갈등으로 불거지고 다투다가 결국은 이혼으로. 같이 놀아 봤어야 같이 놀지. 둘이 노는 법도 까먹었는데 갑자기 24시간 붙어 있으니 싸울 수밖에. 아내가 찾을 땐 남편이 없고 남편이 돌아오니 아내가 나돌고. 참 신파영화 같다.

젊었을 땐 죽어라 일만 하면서, 집에선 가족과 대화도 없이 잠만 자다가, 50대가 되어서야 가정이 그리워져 집으로 돌아오는 남편들. 갑자기 황혼이혼 당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못하고 황당하겠다. 일죽의 친구 시어머님은 돈도 시간도 힘도 없어 선택이 없었지만 지금의 아내들에게는 자립할 돈도 긴 시간도 환경도 받쳐 준다. 이제라도 돈 번다는 핑계로 준비 안 한 남편들. 환갑 넘어 뒤통수 맞지 않으려면 젊을 때부터 노후대책 준비하라.

가족관계에도 질이 중요하다. 직장보다 가정을 더 소중히 여기고, 친구이자 삶의 동반자인 아내와 함께 작은 일이나 큰 일이나 늘 같이 나누고 같이 고민하며 살 것이고, 퇴직 후에는 남편의 역할도 새로 짜서 부부가 협력해 신혼 때의 긴장감을 가지고 은퇴를 준비해야 될 것이다.

한 모작을 더 할 수 있는 새로운 30~40년의 긴 세월이 남아 있지 않은가? 황혼이혼은 개고생이다.

엄을순 문화미래 이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