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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北 김정운으로 권력세습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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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은 북한 당국이 김정일의 후계자로 셋째 아들인 김정운을 결정했다는 사실을 담은 외교전문을 해외주재공관에 전달했다고 확인했다. 북한의 후계구도와 관련해 우리 정보당국이 공식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북한의 후계구도 소식은 북한이 2차 핵실험(5월25일)을 마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나왔다.그런만큼 미국·일본등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특히 각국의 정보기관들은 북한내부 동향을 파악하느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북한이 미국과 일본을 겨냥하여 장거리 탄도 미사일 발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느닷없이 불거진 후계자 문제를 어떻게 봐야할까.당국의 확인대로 김정일은 3남 김정운으로 후계자를 낙점한 것인가.서둘러 후계구도를 구축해야할 만큼 김정일의 건강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는 것인가.핵실험과 미사일 발사,그리고 김정운으로의 후계구도 공식화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이런 여러가지 측면을 고려해볼 때 '김정운 후계' 공식화는 쉽게 납득이 되지 않은 대목이 있다.현재 북한에서 후계 구도 문제를 언급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거는 행위나 다름 없을 만큼 위험한 행위다. 김정일 이외에는 그 누구도 후계 문제를 언급할 수 없다. 특히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건강상태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후계문제와 관련하여 가장 정확한 발언은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의 발언일 것이다. 그는 얼마전 중국을 방문하면서 기자들로부터 "당신이 북한의 후계자 입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내가 북한의 후계자라면 이렇게 자유스럽게 외국을 왔다갔다 할 수 있겠느냐"고 답했다. 그리고 "그 문제는 아버지(김정일)만이 알수 있다. 그 누구도 모른다. 전적으로 아버지 의중에 달려 있는 문제"라고 했다.

북한은 일찍이 후계 구도 문제를 결정하면서 자국의 해외 공관에 공문을 보내 '아무개를 후계자로 결정했다' 라거나, '누구 누구를 공식 후계자로 결정했다'는 식의 통지문을 발송한 적이 없었다. 이렇게 허술한 방식으로 후계구도 문제를 대내외에 공식 통보하거나 확인해주지 않는다.

북한은 당 대회를 열어 후계자를 공식 선출한다.그런데 북한의 노동당은 1980년 이후 한 번도 전체 회의를 소집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노동당 중앙위원회도 1993년 12월 이후에는 소집된 예가 없었다. 아마도 북한에서 김정운을 차기 후계자로 내정한다면 그것은 북한이 강성대국의 해로 꼽고 있는 2012년쯤 제7차 당대회를 개최해야 할 것이다.

김정운이 정말로 후계자로 낙점된다면 이미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어야 하거나 받았어야 할 것이다.

첫째, 김정일의 현장지도에 김정운이 상시 수행했어야 하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김일성 주석은 김정일을 당의 추대를 통해 공식 후계자로 확정하기 전까지 북한 전역을 돌아다니는 현장시찰에 김정일을 수행시켰다.이를 통해 북한내 여론과 당·행정부·군부의 상부계층 인사들로 하여금 김정일이 김 주석의 후계자로 자동승계될 것이란 점을 상식화, 일반화시켜 나갔다. 후계 승계 문제에 대해 어떤 권력갈등도, 여론의 반론도 제기될 수 없도록 사전 조치해 나간 것이다. 김정운이 김정일과 꼭 같은 후계구도 과정을 밟아 나가야 한다는 당위는 없지만, 일종의 암시는 있어야 하는데 그 모든 것들이 생략되어 있다.

둘째, 외국의 국빈급들이나 해외 지도자들이 평양을 방문하여 김 주석을 만날때면 김 주석은 김정일을 수시로 배석시키거나 어떤 자리에서는 반드시 참석케하여 김정일을 소개했었다. 후계자 문제에 관하여 일종의 국제여론과 지지를 얻어 나가는 과정을 밟은 것이다.

북한과 혈맹관계에 있었던 중국의 최고 지도자의 지지와 동의를 얻어내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김 주석은 1974년 중국을 방문해 모택동 주석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김 주석은 자신의 후계자 문제를 거론하면서 후계자로 아들인 김정일을 계획하고 있다면서 이를 지지해 달라고 요청했다.그러자 모택동은 이에 대한 직접적인 답변을 하지 않으면서 사회주의 세계에서는 가족 상속에 기반을 둔 권력승계는 공산주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택동의 입장은 분명히 반대였다. 그러나 이러한 중국측의 입장은 등소평이 중국 전반에 대한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이후에는 달라졌다. 1982년 김일성 주석은 아들인 김정일을 데리고 중국을 비공식 방문했다. 이때 등소평은 김일성, 김정일을 데리고 자신의 고향인 사천성에까지 갔었는데, 이 여행중에 김일성 주석은 왜 김정일이 자신의 후계자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등소평에게 설명했다. 그 이유로 자신의 동지들 가운데 한 명을 선택하여 후계자로 내세우는 것은 그들간의 파벌싸움 때문에 관계가 매우 복잡해서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크고 작은 개인적인 공적을 가지고 파벌싸움을 하면서 선후배를 따지고 하는 바람에 이들을 통제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다만 이들 모두가 김씨 가문에서 한 사람을 선택하여 후계자로 내세울 경우에는 이를 받아들이겠다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래서 김일성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고 이를 듣고 있던 등소평은 어쩔수 없는 상황속에서 김 주석의 후계계획을 지지해 줬고, 이는 등소평으로서는 필요에 따라 마지 못해 한 선택이었다. 결국 이렇게 해서 김일성 주석은 김정일 위원장을 자신의 후계자로 내세울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김정운은 누군가

김정운(25)은 1984년 9월 25일 평양에서 태어났다. 그는 김정일의 세 번째 부인인 고영희에게서 태어나 위로는 형 김정철(28)과 아래로는 여동생 김여정(22)이 있다. 김정운은 김정일의 세 아들 가운데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감춰진 아들’이다.

세간에 알려진 그에 대한 경력은 형 정철 그리고 동생 여정과 함께 스위스 베른 국제학교를 졸업했다는 사실과, 2002년부터 2007년 4월까지 김일성 군사종합대학(5년제)에 다녔다는 것이 전부다.

외모는 아버지 김정일을 꼭 빼닮았고 체형까지도 비슷한 것으로 전해진다. 성격은 형 정철에 비해서 매우 급하고 거칠며 정치적 야심도 많다고 한다. 김정운은 키가 175cm 정도, 체중은 약 90kg 정도로 운동부족에 따른 비만 상태인 데다 20대인데도 불구하고 고혈압과 당뇨가 상당히 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샛별장군’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1988년부터 2001년까지 일본인으로서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로 활동했던 후지모토 겐지는 자신의 자서전 《김정일의 요리사》에서 “둘째왕자가 나와 악수를 나눌 때 무서운 얼굴로 나를 노려봤다. ‘이 자는 가증한 일본인’이라고 하는 듯 하던 그때의 왕자의 날카로운 눈은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라고 김정운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정치적 야심이 강한 김정운은 이복형인 김정남에 대한 견제의식이 많았다고 한다. 생모 고영희가 사망한 직후 후계자 입지가 어려워지자 2004년 11월 노동당 작전부 공작원들을 동원해 오스트리아에서 김정남의 암살을 추진한 적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운은 김정일의 세 아들 가운데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음에도 불구하고 후계물망에 떠오르지 않고 가장 깊숙이 베일에 감춰져 있었다.김정운이 세간에 일절 노출되지 않았던 이유는 두 가지 중의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첫 번째는 김정운이 아직 나이가 어리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김정일이 일찌감치 김정운을 자신의 후계자로 내정해 놓아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고 철저히 베일에 싸이도록 보호해 왔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김정일은 자신이 32살이던 1974년 2월 노동당 제5기 8차 전원회의에서 당 중앙위 정치위원이 되면서 ‘후계자’로 공인되었다. 그런데 후계자로 지명됐을 때의 김정일보다 7살이나 어리다.김정운이 후계자가 됐을 때,북핵 협상을 이끌고 나가면서 북한 주민들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을까.북한을 외교적 고립의 섬에서 탈출시키고 경제난을 해결할 만한 식견이 있을까. 북한 노동당과 군부 내부의 원로들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을까.

이는 쉽지 않다고 본다. 김정운이 북한의 통치자가 되면 북한은 아주 어려운 국면에 빠져들 것이다. 설령 김정운의 뒤에 김정일과 장성택이 버티고 있다하더라도 북한의 상황은 지금보다 훨씬 어려워 질 것이다.그리고 북한이 체제유지의 가치로서 그토록 강조해왔던 유교의 장자 우선의 원칙이 깨져버림으로써 북한의 체제유지에도 험난한 길이 예고된다.

특히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4대 강대국들은 북한의 정치 체제와 권위를 아주 냉소적인 시각으로 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이 20대의 젊은이에게 권력을 이양하면서까지 3대 세습을 하는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도 의문이다.

핵실험 와중에 웬 '김정운 후계'?

20대의 김정운을 후계자로 옹립한다는 내용들이 흘러나오고 있는 현 상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선 김정운을 김정일의 후계자로 내세울 계획의 일환이라기보다는 김정일 이후의 통치권을 선점하기 위한 북한 내부의 권력투쟁이 매우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반증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김정일의 건강이 더욱 악화되어 가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둘째, 김정일이 뇌질환을 앓은 이후 병상통치를 유지했던 기간 동안 김정일의 가장 지근거리에서 병간호를 하면서 사실상의 김정일의 부인역할을 해 왔던 김옥의 영향력이 매우 커졌음을 의미한다. 김옥이 김정운을 옹립하는 주체라면 이는 갈수록 김옥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셋째, 김정남과 김정철 간의 권력투쟁이 극심한 나머지 양쪽 파벌을 배제한 제3의 인물이 어부지리로 부상되고 있는 측면은 없는지도 잘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

넷째, 북한에도 이제 정치지도자의 세대교체가 불가피해졌음을 알리는 신호탄으로도 볼 수 있다.

김정운이 만일 김정일의 후계자로 등극하게 된다면 그는 아직 많은 부분에서 김정일의 참모들로부터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야만 북한을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이렇게되면 북한 내부의 권력의 역학관계는 매우 복잡해질 것이다.

우선 김정운은 고영희의 아들이라는 점에서 김정일의 최측근인 장성택의 도움을 얻어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고영희와 장성택은 정적관계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김정일과 친족관계라는 점을 통해서 장성택과 김정운은 서로 협조관계는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관계가 얼마나 끈끈한 관계로 발전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그리고 김정운을 옹립하는 세력이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을 맡고 있는 이강철이라면 장성택, 김정운, 이강철의 관계는 더욱 복잡해질 것이다. 이강철과 장성택은 정적관계이고 서로 경쟁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현재 장성택은 김정남을 적극 지지하고 있고, 이강철은 고영희의 두 아들 중 한 사람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놓여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김정일이 자신의 권력을 장남인 김정남에게 넘겨주게 되면 이강철은 권력의 중심부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많고 반면에 차남인 김정철 혹은 3남인 김정운이 후계자가 될 경우에는 장성택 역시 권력의 중심부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김정일의 입장에서는 어린 김정운에게 자신의 권력을 이양한다면 결국 그를 보호하고 지켜줄 최고의 킹메이커가 필요할 것인데, 현재로서는 장성택만한 인물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장성택과 고영희와의 관계 그리고 장성택과 이강철과의 관계를 고려한다면 김정운으로의 권력이양은 북한 내부에 새로운 권력투쟁을 예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이는 김정일의 레임덕을 급속히 가속화시킬 것이며 북한 내부의 체제이완 현상 또한 연동되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설령 건강이 좋지 못한 김정일이 자신을 빼닮았다고 해서 어린 김정운에게 권력을 넘겨주게 되면, 김정운 역시 권력을 오랫동안 유지해 나가지 못할 것이다.

그 이유는 그의 건강 또한 좋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북한의 운명은 어떤 점에서 구 소련의 운명과 비슷한 과정을 밟게 될 지도 모른다. 그것은 브레즈네프 서기장의 죽음 이후 연쇄적으로 건강이 좋지 못한 안드로포프, 체르넨코 서기장으로 권력이 이양되면서 구소련의 권력교체가 급속히 진행되었고 그 결과 고르바초프라는 새로운 인물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만일 북한이 작금의 2차 핵실험과 장·단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문제를 후계구도 안정화 작업과 연관시켜 진행하고 있다면 북한은 대북 핵협상과 미사일 협상 모두에서 북측이 의도한 성공적인 결과를 얻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미국의 관심이 북한의 핵물질 보다는 후계문제와 이에 따른 북한 내부의 권력투쟁문제 그리고 북한의 체제 불안정에 따른 붕괴의 가능성에 더욱 많은 촉각을 세우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2월 방한 당시 명확히 드러났다. 힐러리 국무장관은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에서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북한의 ‘후계 구도’ 와 관련하여,“후계 문제를 둘러싼 내부 권력투쟁이 진행되고 지도체제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북한과 인접 국가 간에 긴장이 고조될 수 있다는 점을 깊이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 지도부의 변화가 핵무기 해체와 관련한 논의의 진전을 더디게 하고 있다”며 “누가 김정일 위원장의 뒤를 이을 것인지에 대한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전략을 신속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내부 상황이 후계구도문제로 빠져들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대북 핵 협상에 나선다는 것은 아주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협상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는 북한과 핵협상을 하기 보다는 시간을 갖고 북한의 정세를 지켜 보면서 북한 내부 체제가 안정되어 가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잘 관찰해 보자는 태도이다. 그리고 북한의 정치가 후계구도 문제로 불안정해 질 염려가 있기 때문에 북한 핵문제는 협상 보다는 외부로 유출되지 못하도록 철저히 봉쇄하고 차단하는 대북핵전략을 세우는 것이 급선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과의 핵협상을 서두르고 있는 북한이 지금 후계 구도문제를 들고 나온다는 것은 미국에게 김정일 체제가 서서히 레임덕을 맞고 있다는 점을 북한 스스로 자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이렇게 저물어 가는 김정일을 상대로 미국이 핵협상에 쉽게 나설까.이런 저런 측면을 종합해볼 때 이 시점에 후계구도 문제가 불거져나온 배경에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장성민


필자 장성민은

서강대 정치외교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에서 북한정치를 연구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세인트존스대학 국제문제연구소에서 '현대 영국과 국제문제'과정을 이수했다. 이후 미국 듀크대 국제문제연구소에서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연구했다. 국민의 정부 시절 청와대 초대 국정상황실장과 16대 민주당 의원을 지냈다. 의원시절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 대표,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로 활약중이다. 저서와 역서로 '전쟁과 평화: 김정일 이후, 북한 어디로 가는가' '전환기 한반도의 딜레마와 선택"9·11테러 이후 부시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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