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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링허우 세대, 민주주의 잊고 민족주의를 택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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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호 10면

12일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쓰촨 대지진 1주년 추모 행사를 하던 중 참석자들이 오성홍기를 흔들며 유가족들을 격려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베이징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대학생들은 천안문 사태에 관한 한 ‘집단 기억상실증’에 걸려 있다.”
베이징의 한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는 천샤오리(陳曉麗·24)의 생각이다. “공산당 지도자들은 국민이 천안문 사태를 잊었다고 믿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공개된 비밀’이고 알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언젠가 다시 방문해야 될 문제다”고 말했다. 천안문 사태는 1989년 6월 4일 베이징에서 벌어진 중국 대학생들의 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한 사건으로 70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6월 4일 천안문 사태 20년, 중국의 20대 이야기

하지만 천샤오리 같은 젊은이는 중국 대륙에서 극소수에 속한다. 천도 “평소 친구들과 이런 얘기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 중국어판 칼럼니스트 쉬즈위안(許知遠·34)은 “천안문 사태는 벌써 20년이 지나, 이후 태어난 세대에게 이 사건은 매우 모호한 개념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정부가 교과서와 언론에서 이 사건을 다루는 것을 금기시하고, 학교에서 사회주의 이념교육을 통해 비판적 사고의식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중국이라는 이름의 거짓말』을 쓴 프랑스의 기 소르망 교수는 중앙SUNDAY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교육받은 젊은 중국인은 천안문 사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부모들도 후환이 두려워 자식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그들은 역사와 단절돼 있다”고 진단했다. 그래서 “집단 기억이 텅 빈 세대가 됐다”는 것이다.

기소르망 『집단기억이 텅 빈 세대』
그러나 중국 젊은이들의 생각은 다르다. 명문 칭화(淸華)대 대학원생 리쉐(李雪·21)는 학교에서 외국인 유학생들과 교류하다 속상할 때가 많다고 털어놓았다. “천안문 사태나 티베트 문제 등을 토론할 때 서로 입장이 다르면 나에게 ‘공산당에 세뇌당했다’고 공격한다”고 말했다. 그는 “서양 학생들은 티베트의 진정한 역사에 대해 잘 모른다”고 강조했다. 중국 대학생들은 리쉐처럼 ‘공산당에 세뇌당했다’는 말을 무척 싫어한다. 자기 스스로 생각한 것이지 결코 이념교육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 인격을 무시당했다고 여긴다.

해외에서 ‘마이클 안티’라는 필명으로 잘 알려진 자오징(趙靜·36)은 중국 대학생이 어떻게 바깥 세계와 단절되고 있는지 설명한다. 그는 뉴욕 타임스 중국지국 연구원을 지내다 미 하버드대 연수 뒤 언론비평가로 활약 중이다. “중국의 인터넷은 알다시피 통제되고 있다. 외국과 중국의 가장 큰 차이다. 중국 대학생들이 쓰는 캠퍼스의 인터넷은 더 제한적이다. 국내 웹사이트와 외국 웹사이트로 나뉘어 있고, 외국 웹사이트를 방문할 때는 돈을 따로 내야 한다. 미국에서는 구글·페이스북 같은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의 장(場)이 모두 대학에서 시작됐다. 중국은 정반대다. 같은 중국인을 놓고 비교해도 대학생들의 정보 접근 범위는 일반인보다 훨씬 좁다. 거기다 정치사상 수업을 듣고 교수들에게서 ‘관리’를 받는다.”

천안문 사태를 기억 속에서 지워 버린 중국 젊은이들은 강한 민족주의 성향을 보인다. 소르망 교수는 “중국 젊은이들이 공격적 민족주의 성향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주변 국가에 두려움(frightening)을 조성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쉬즈위안은 이를 ‘취약한 민족주의’라고 불렀다. “감수성이 예민한 젊은이들 사이에서 민족주의가 ‘쿨’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고 말했다.

정의감 표출하는 ‘인터넷 홍위병’
한국 사회는 지난해 4월 서울로 온 베이징 올림픽 성화를 봉송하는 과정에서 중국 젊은이들의 민족주의 열기를 직접 경험했다. 한국에 온 수천 명의 중국 유학생이 오성홍기를 들고 과격시위를 벌인 데 충격을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학자이며 베스트셀러 『불쾌한 중국(中國不高興)』의 주요 저자인 황지쑤(黃紀蘇·54)는 중국 젊은이들을 이렇게 옹호했다. “젊은이들에겐 혈기가 있다. 같은 질문을 한국 사람에게 해 보자. 만약 한국이 올림픽을 개최하는데, 성화 봉송 과정에서 그것을 저지하는 세력이 있다면 한국 젊은이들은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아마도 중국 젊은이들과 비슷했을 것이다.”

그는 또 “『불쾌한 중국』의 핵심 메시지는 외국을 겨냥한 게 아니라 국내 독자다. 서방 중심의 세계질서가 근본적으로 체질 개선을 해야 하고 이를 위한 중국 지식인들의 역할을 주문한 것이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이 책이 민족주의를 과도하게 조장한다며 책 내용을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황지쑤는 “이는 중국 정부가 민족주의를 이용할 의도가 없음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에 거주하는 한 대만 학자는 중국 정부가 한편으로는 민족주의를 활용하되 다른 한편으론 이것이 너무 뜨거워지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민족주의란 차량이 속도 위반을 할 때 가끔 브레이크를 밟는다고 보면 된다.”

중국 민족주의의 선두에 선 젊은 세대는 ‘바링허우(80後·1980년 이후 세대)’라고 일컬어진다. 대학생이거나 사회 초년생인 80년대 출생자들이다. 원래 중국 언론이 ‘바링허우’를 바라보는 시각엔 부정적인 면모가 많았다. 하지만 지난해 쓰촨 대지진 때 그들은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지진 피해 현장으로 달려가 자원봉사를 하는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기성세대에게 각인시켰다. 올림픽 성화 봉송 때 보여 주었던 그들의 애국정신도 높이 평가된다.

물론 그들의 특성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있다. 단적인 사례가 신종 플루(인플루엔자A/H1N1) 확산 과정에서 일어난 ‘인터넷 마녀사냥(人肉搜索)’이다. 미국 대학에서 공부하다 베이징에 일시 귀국한 유학생이 고열 등 신종 플루 증세에도 불구하고 여자친구와 나흘 동안 여러 곳을 놀러 다닌 데 대해 무차별 공격을 가했다. 네티즌은 ‘유학생 아버지는 부정한 돈으로 아들을 유학 보낸 탐관오리’라며 유학생의 이름·나이·학력 같은 신상명세를 공개했다.

5월 초에는 쓰촨성 난충(南充)에서 자가용을 몰고 가던 젊은 여성이 교통체증 도로에서 양꼬치를 팔러 접근한 한 노파와 언쟁 끝에 뺨을 때린 사건이 있었다. 한 행인이 그 장면을 촬영해 인터넷에 올리자 네티즌은 역시 무자비하게 공격했다. 그 여성은 노파에게 사과했지만 공격이 계속되자 자살을 시도했다. 이렇게 되자 언론들은 “바링허우가 주축이 된 네티즌이 정의감을 앞세워 ‘인터넷 홍위병’이 되고 있다”며 자성을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바링허우 세대는 인터넷상에서 부패와 권력남용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외세에 대한 불신을 표출하는 ‘화난 젊은이(憤<9752>)’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자유는 줬지만 민주는 없어”
중국은 천안문 사태를 계기로 대학생들에 대한 사상교육을 강화해 왔다. 중국의 유명한 ‘신좌파 지식인’으로 불리는 사회학자 왕후이(王暉)는 이를 ‘비정치화의 정치’라고 불렀다. 자오징은 “과거엔 대학이 정치토론의 장이었지만 천안문 사태 이후 정치토론 자체가 매우 민감한 사안이 됐다. 비정치화 사상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대학 졸업 뒤에야 비로소 정치문제에 눈을 뜨게 되는 현상이 빚어졌다”고 말한다.

그래서 바링허우 세대는 민족주의 경향을 보이지만 민주주의에 대해선 거리를 둔다. 공산당 지도부가 이런 변화를 잘 감지하고 탄력적으로 대응한 것도 작용했다. 78년 개혁·개방 초기에는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면 공산주의가 무너질 것이라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았다. 개방을 반대하는 세력을 의식해 공문서에 ‘자본주의’ 대신 ‘시장적인 요소’라는 단어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은 지금 ‘시장’ ‘자본주의’ 등의 단어를 아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자오징은 “공산당 지도체제는 갈수록 공고해지고 있다. 중국 정부도 시대 변화에 맞게 잘 적응하며 개인 자유의 영역을 넓혀 주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민주’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치학에서 보면 민주와 자유는 다른 컨셉트다. 하나를 하고 다른 것을 안 할 수도 있다. 예컨대 중국은 시장·개인의 자유화는 했지만 정치 민주화는 없다. 반대로 이란 같은 나라는 선거제도를 가동하지만 ‘종교 국가’여서 개인의 자유가 없다. 『포스트 아메리칸 세계』를 쓴 뉴스위크의 패리드 자카리아는 이를 ‘자유 없는 민주’와 ‘민주 없는 자유’의 차이라고 했다. 자오징은 “향후 10년 동안 중국은 더욱 개방되고, 시장화되고, 자유화될 것이다. 개인의 공간도 더욱 확대될 것이다. 하지만 정치개혁에 대한 전망은 매우 비관적이다”고 지적했다.

“공산당이 좋든 나쁘든 중국인이 만든것”
중국 정치의 미래 과제를 소르망 교수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한다. 첫째, 갈수록 커지는 빈부격차 속에서 불만 계층의 집단 소요 사태를 막는 것이다. 둘째, 선거를 거치지 않고 정권을 독점한 공산당에 정통성(legitimacy)을 부여하는 경제발전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중국 경제의 고속 질주가 끝날 무렵 공산당 지배체제가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고 내다보았다.

공산당원이면서 중국인민은행 대학원(<7814>究生部)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외국인의 대표적인 ‘편견’을 이렇게 지적했다. “외국 사람들은 중국인이 공산당 독재 아래서 억압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공산당을 만든 것도 중국 사람이다. 공산당이 좋은 존재이든 나쁜 존재이든 그것은 중국인의 의식이 만들어 낸 것이다.” 공산당과 인민이 ‘하나’라는 논리다.

s『불쾌한 중국』에 앞서 출간된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中國可以說不)』(96년 출간)의 공동 저자 중 두 명은 천안문 민주화 시위에 참가한 전력이 있다. 또 한 명은 시위 경력 때문에 7년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체제 비판자에서 체제 옹호자로 돌아선 지식인이다.

‘천안문’을 집단 기억 속에서 지워 버린 중국 젊은이들은 정보 왜곡과 사상교육이라는 요인도 있지만 그들 스스로 공산당의 운명과 자신의 운명이 같다고 여기는 ‘믿음’을 갖고 있다. 소르망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13억 인구의 경쟁에서 남보다 앞서기 위해 이들은 경쟁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또 돈을 벌고 공산당에 들어가 ‘지배계층’이 되려는 욕구도 강하다. 그렇다면 중국 젊은이들은 외부에서 보듯 체제의 희생자가 아니라 체제의 적극적인 이용자라는 가설이 성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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