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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 속 떠난 운구차 국민 울리고 정토원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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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9일 오전 5시 봉하마을 회관에서 삼군 의장대가 영정과 국민훈장, 태극기로 싸인 관을 들고 나오자 조문객들 사이에서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그 뒤를 아들 건호씨, 딸 정연씨와 손녀의 손을 꼭 잡은 권양숙 여사, 형 건평씨 등 유족이 뒤따르자 흐느낌은 울음으로 변했다.

분향소 좌우에 참여정부 인사가 도열하고 유족들이 분향소에 들어서면서 고인을 모시고 나가기 위한 발인제가 진행됐다. 장례 전문가 이홍경 선생의 진행으로 상주 건호씨가 영정 앞에 무릎 꿇고 술을 올린 뒤 두 번 큰절을 했다. 이어 유족들이 무릎을 꿇고 앉은 가운데 축문이 낭독됐다. 발인제는 16분 만에 끝났다. 밤을 새우거나 새벽에 달려온 조문객 2만여 명은 숙연한 표정으로 이를 지켜봤다.

유족이 영정과 국민훈장을 앞세우고 사저와 생가로 향하자 곳곳에서 “편히 쉬십시오” “힘내세요”라는 외침과 함께 통곡이 쏟아졌다. 권 여사는 오열하는 조문객에게 고개 숙여 감사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유족 뒤로 문재인 전 비서실장, 한명숙 공동 장의위원장, 송기인 신부,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 이광재 의원 등 50여 명이 뒤따랐다.

영정을 앞세운 유족은 고인의 체취가 남아 있는 서재와 침실·거실 등 사저와 생가를 돌며 노 전 대통령이 작별을 고하도록 했다. 그사이 관을 실은 운구차가 마을 앞 도로로 나서자 조문객들은 노란색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사랑합니다” “편안히 가십시오”라며 눈물을 흘렸다. 흐느낌 사이로 노 전 대통령이 2002년 대선 때 기타를 치며 불러 화제가 됐던 ‘상록수’가 마을 앰프를 통해 광장에 울려 퍼지면서 분위기는 더욱 숙연해졌다. 유족이 오전 6시 차에 올라 서울로 향하자 조문객들은 2㎞의 도로 양쪽에 도열해 노란색 종이비행기를 띄우거나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을 부르며 작별을 고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해는 30일 새벽 봉하마을에 도착해 봉화산 정토원 법당에 임시로 안치됐다. 정토원 마당에 차린 제단에 유해를 모셔놓고 혼을 맞이하는 반혼제(返魂祭)가 열렸다. 김해시 사원연합회 스님 20여 명이 혼을 불러 법당 안으로 모시는 정중계(淨衆戒) 독송을 바친 뒤 유해는 법당인 수광전(壽光殿)으로 옮겨졌다. 유족들이 절을 하고 법당 오른쪽에 마련된 영단(靈壇)에 안치한 뒤 유족과 장의위원, 스님들이 참석한 가운데 49재 초재의식이 거행됐다. 초재는 49재의 첫 제사다.

봉화산(해발 140m) 사자바위 아래에 있는 정토원은 노 전 대통령의 부모와 장인의 영가가 모셔져 있는 곳이다. 노 전 대통령이 어릴 적 뛰어놀던 곳이기도 하다.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한 부엉이 바위와는 247m 떨어져 있다. 임시 안치된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49재 의식이 끝나는 7월 10일 사저 주변에 안장돼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다.

김해=김상진·황선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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