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물결 추모객 수천명 슬픔속 연화장서 화장

중앙일보

입력 2009.05.29 10:52

업데이트 2009.05.29 19:16

29일 경기 수원 연화장에서 노 전대통령 부인인 권양숙 여사와 건호씨등 가족들이 노전대통령의 운구행렬을 따라 걷고 있다. 【수원=뉴시스】

29일 오후 경기도 수원 연화장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화장에 앞서 마지막 고별식에서 권양숙 여사와 노 전 대통령의 딸 정연씨가 오열하고 있다. (수원=연합뉴스)

29일 오후 영결식을 마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해가 경기도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로로 향하고 있다. (수원=연합뉴스)

6시 32분 화장시작

29일 오후 6시32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신이 안치된 관이 수원 연화장 8번 화로에 입관됐다. 영욕의 세월을 거친 전 대통령의 시신이 한줌의 재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운구 차량은 당초 예정시간보다 3시간 가량 늦은 오후 6시 5분에 화장장인 수원 연화장에 도착했다.

태극기로 덮힌 노 전 대통령의 관은 육해공군 의장대에 의해 화장장으로 옮겨졌다. 노 전 대통령의 영정 사진과 무궁화 대훈장을 앞세운 운구가 화장장에 가까워질수록 뒤를 따르던 유가족과 측근, 그리고 기다리고 있던 시민들이 오열했다. 관을 두른 태극기 위에는 흰 국화 몇 송이가 올려졌다. 시민들은 "노무현"을 연호했다.

아들 건호씨는 권양옥 여사와 가족이 뒤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화장장 건물 입구에 마련된 영정 앞에서 마지막 술을 올리고 두 번 절을 했다.

[사진=공동취재]

화장은 연화장에 있는 9개 화로 가운데 가장 큰 8번 화로에서 이뤄졌다. 화로로 들어 가기 전 태극기는 걷혔으며 국화꽃은 관 위에 바쳐졌다.

연화장에서는 화장과 유골 수습에 총 2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화장에만 70분간 소요되며 15분간의 냉각 과정을 거쳐 유족 측이 마련한 향나무 유골함에 유골이 봉안되게 된다. 화장은 불교식으로 진행되며 유가족만 참관한다.

29일 오후 1시 55분쯤 서울광장에서 노제를 마친 운구 행렬은 태평로와 숭례문을 거쳐 서울역 광장에 도착했다. 노제에 참가한 시민들이 귀가하지 않고 운구 차량 앞 뒤에 붙어서 계속 따라 가면서 운구 차량은 매우 느린 속도로 이동했다.

운구 차량은 수원 연화장을 향해 오후 3시30분쯤 서울역을 출발했으나 시민들에 막혀 1시간 동안 2㎞밖에 진행하지 못했다. 시민들이 한 때 운구 차량을 막자 장의위원회 측이 “길을 열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당초 장의위원회는 오후 3시쯤 수원 연화장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추모객이 몰리면서 세 시간 이상 지연됐다.

유족과 장의위원회는 고인의 유골을 유골함에 담아 다시 김해로 내려가 봉화산 사찰 ‘정토원’ 법당에 임시 안치할 예정이다. 당초 계획에는 오후 9시쯤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현재 진행상황으로는 29일 중 도착이 힘들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뉴스 jdn@joins.com

운구 행렬 서울역으로 이동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가 29일 낮 시민 20만명이 현장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엄수됐다.

노제는 노 전 대통령의 유가족과 참여정부 당시 함께 일했던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당초 예정시각인 낮 12시보다 1시간 가량 늦은 오후 1시부터 실시됐다. 이날 새벽부터 모이기 시작한 시민들은 노란색 햇볕 가리개와 스카프, 노란색 풍선, 초상이 인쇄된 전단지 등의 소품으로 노 전 대통령의 안식을 기원했다. 노제에 참석한 많은 시민들은 슬픈 표정으로 눈물을 훔쳤다.

김제동의 사회로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초혼식을 주재했다. 공연과 조시 낭독, 묵념, 장시아 시인의 유서 낭독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추모객들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를 함께 외친 뒤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불렀던 노래 '사랑으로'를 합창했다.

경찰은 당초 서울광장 일대에 최대 12만 명이 모일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이날 추모객들은 광화문에서 시청으로 통하는 태평로의 왕복 10차선 도로를 가득 매웠다.

오후 1시 55분께 노 전 대통령의 운구 차량은 서울광장을 떠났다. 운구 차량은 숭례문을 거쳐 서울역까지 천천히 이동한 뒤 오후 3시께 수원 연화장에 도착하게 된다.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이곳에서 화장되며, 유골을 담은 함은 오후 9시께 봉하마을로 옮겨져 봉화산 정토원 법당에 임시로 안치됐다가 향후 사저 옆 장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디지털뉴스 jdn@joins.com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눈물 속 엄수

故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이 29일 경복궁에서 거행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29일 오전 11시부터 경복궁 앞뜰에서 국민장으로 엄수됐다.

이날 오전 5시 봉하마을에서 발인을 마친 운구 행렬은 오전 10시 50분께 영결식장에 도착했다.

이명박 대통령 내외와 김대중ㆍ김영삼 전 대통령, 한승수 국무총리,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민주당 정세균 대표, 김형오 국회의장, 문희상 국회 부의장 각 정당 대표, 3부 요인, 주한 외교 사절, 권양숙 여사와 노건호ㆍ정연씨를 포함한 유족 등 2천5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넋을 기렸다.

영결식은 이날 오전 5시께 봉하마을에서 발인식을 치른 운구차량 행렬이 식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군악대의 ‘새처럼 자유롭게’(Free as a Bird) 연주로 시작을 알렸다.

운구 행렬은 오픈카 1대에 설치한 가로 1.1m, 세로 1.4m 크기의 영정을 선두로 노 전 대통령에게 수여된 우리나라 최고 훈장인 무궁화대훈장, 영구차, 권양숙 여사를 비롯한 유족 등의 순으로 입장했다. 권 여사 등 유족은 식장에 입장하면서 행사에 참석한 주요 인사들에게 목례를 했다.

송지헌 아나운서의 사회로 국민의례와 고인에 대한 묵념, 장의위원회 집행위원장인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의 고인 약력보고가 진행됐고, 공동 장의위원장인 한승수 총리와 한명숙 전 총리의 조사가 이어졌다.

한승수 총리는 “노 전 대통령님과 마지막 이별하는 자리에서 우리 모두는 애석하고 비통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며 “우리는 대통령님의 뜻을 되새기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다짐을 새롭게 할 것”이라고 애도했다.

한명숙 전 총리는 “대통령님은 실패하지 않았다”며 “이제 저희들이 님의 자취를 따라 님의 꿈을 따라 대한민국의 꿈을 이루겠으며, 그래서 님은 온 국민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아있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추모했다.

이어서 불교와 기독교ㆍ천주교ㆍ원불교의 순으로 종교의식이 거행됐다.

불교에서는 권양숙 여사와 가까운 사이인 봉은사 명진 스님, 기독교는 노 전 대통령 방북시 사절단으로 동행했던 권오성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총무, 천주교는 노 전 대통령에게 영세를 준 송기인 신부, 원불교에서는 이선종 서울대교구장이 의식을 맡았다.

기독교 의식에서는 소망교회 성가대(지휘 전용우)가 추모 성가를 불렀으며 테너 임정근(경원대 교수)씨가 곡중 독창을 맡았다.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6월 전북 익산 원광대에서 명예 정치학박사를 받는 등 원불교와도 인연이 깊다.

종교의식이 끝난 뒤 노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 등을 담은 영상이 무대 양쪽 대형 전광판을 통해 상영됐다. 노 전 대통령의 대통령 취임식 선서를 비롯한 고인의 행적이 포함됐으며 유서 내용을 문성근씨가 낭독하는 부분도 담겨있었다.

참석자들은 ‘새같이 날으리’ ‘미타의 품에 안겨’ 등의 연주에 맞춰 헌화했다.

맨 먼저 상주인 아들 건호씨와 권양숙 여사가 헌화했고 형 노건평씨를 비롯한 유족들이 헌화했다.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같이 놀아준 외손녀는 사위의 품에 안겨서 할아버지인 노 전 대통령에게 헌화했다.

이어 이명박 대통령과 김윤옥 여사가 헌화 분향했다. 이 대통령 내외가 헌화하기 위해 제단 앞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일부 조문객들이 ‘물러가라’고 외치는 등 야유를 보내 잠시 장내가 소란해지면서 순간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 대통령 내외는 놀란 듯 주위를 둘러보기도 했다. 하지만 곧 정숙한 분위기를 되찾았다.

이어 전직 대통령들이 영정에 헌화와 분향을 했다. 장의 위원회 고문을 맡고 있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먼저 헌화했고 휠체어를 타고 영결식장에 참석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부축을 받으며 이휘호 여사와 함께 헌화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헌화를 끝낸 뒤 유가족에게 다가가 일일이 악수하며 위로의 뜻을 전했다. 이어 김형오 국회의장, 이용훈 대법원장과 각 정당 대표들이 헌화했다.

국립합창단(지휘 나영수)의 ‘상록수’합창, 해금 연주자 강은일씨가 연주하는 ‘아리랑’ ‘아침 이슬’ 등 추모 공연과 삼군 조총대원들의 21발의 조총 발사로 영결식은 끝났다.

디지털뉴스 jdn@joins.com

"편안히 영면하소서"…서울광장 추모물결

29일 오전 서울 시청광장에서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기도를 하고 있다.(서울=연합뉴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과 노제가 열리는 29일 경복궁과 서울시청 앞 광장이 추모 물결에 뒤덮였다.

서울광장에는 경찰이 차벽을 철수한 오전 7시40분부터 추모객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해 오전 10시10분 현재 1만2천여명(경찰추산)의 시민들이 인도와 광장 등에 자리를 잡았다.

시민들은 광장에서 노제 리허설을 지켜보거나 일행과 대화를 나누며 영결식장인 경복궁으로 올라오고 있는 장례 행사를 차분히 기다렸다. 고인을 상징하는 노란색 모자를 쓰거나 노란 풍선을 든 추모객들도 눈에 띄었다.

김동열(42)씨는 "하늘이 무너진 기분이다. 아들에게 역사의 현장을 보여주고 싶어서 회사에 연차를 내고 아들을 데리고 나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정재은(38.여)씨는 "참으로 착잡한 기분이다. 나라를 변화시킬 수 있는 분이셨는데 우리가 지켜드리지 못한 것 같아 죄송스럽다"고 말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리는 29일 오전 시청광장에 모인 많은 시민들이 전광판을 통해 영결식을 지켜 보고 있다. 【서울=뉴시스】
오전 8시 노 전 대통령의 영정사진을 실은 트럭과 50여개의 만장을 든 시민들이 서울광장 옆 차도에 나와 경찰과 잠시 대치하기도 했지만 큰 불상사는 없었다.

서울역사박물관과 서울역 등 정부 분향소와 대한문 앞 시민 분향소에는 이날 오전에도 고인의 넋을 기리는 분향 행렬이 이어졌다.

대한문 분향소에는 오전 9시까지 1만1천300명, 서울역에는 6천명, 역사박물관에는 1천100명의 시민들이 찾아왔다. 이에 따라 누적 조문객은 대한문 12만2천명 등 21만7천명(경찰 추산)으로 집계됐다.

현장에 직접 나오지 못한 시민들도 직장에서 잠시 일손을 놓고 TV를 통해 노 전 대통령의 발인과 고속도로를 이용해 상경하는 장례행렬을 지켜봤다.

IT(정보기술) 업체에서 일하는 최창현(36) 씨는 "TV를 통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발인식을 봤는데 너무 안타까워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며 "고인이 편안히 영면하시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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