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서거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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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한 게 있으면 사과하고 용서를 빌고 살아야제, 와 죽노….”
아귀(생선) 위로 굵은 눈물이 떨어졌다. 빨간 고무장갑을 벗지 않은 채 이일순(65·여)씨는 팔뚝으로 눈물을 훔쳤다. 이씨는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를 위해 찬조연설을 했던 자갈치 아지매. 그는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다 짊어지고 가셨는데, 그분 죽음 앞에서 싸우지는 말아야 안 되겠나.”
이씨를 만난 건 24일 아침, 부산시 남포동 자갈치시장에서였다. 손님을 끄는 경상도 사투리 틈에서 그는 고개를 들지 않고 묵묵히 아귀를 다듬고 있었다. ‘봉하마을에 조문을 갔을 텐데 헛걸음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는 언제나처럼 일터에 있었다. 이씨는 기자와 얘기를 나누면서도 아귀 손질을 멈추지 못했다. “일요일이 어디 있노. 하루라도 쉴 수 있는 줄 아나.”
그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도 아귀를 손질하다 들었다고 했다. 23일 오전 남편이 전화를 걸어와 “노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단다”하고 소리쳤다. 이씨도 충격을 받았다. 한동안 머리가 얼얼하게 아팠다고 했다. 그는 한숨을 쉬더니 “더 많이 받고 더 못된 짓 한 사람도 저렇게 사는데…” 라고 말끝을 흐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는 조문객들이 24일 김해 봉하마을 입구에서부터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오른쪽 아래 흰색 천막이 노 전 대통령의 공식 분향소다. [김해=김상선 기자]
서거 소식을 접한 자갈치시장 상인들은 한결같이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소리 내 우는 상인도 많았다. 이씨는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책임소재를 놓고 논쟁이 벌어진다는 사실도 몰랐다고 했다. 그는 “니편 내편 갈라가 싸우면 되겠나, 여기 같은 시장에도 그런 사람은 없다”며 혀를 찼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이 원하는 게 그런 건 아닐 기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노 전 대통령의 당선 공신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대선 당시 노 전 대통령 측 선거운동원의 요청을 받아들여 찬조 연설에 나섰다. 그가 맡은 첫 번째 찬조 연설은 TV와 인터넷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걸쭉한 사투리로 “노 후보는 정정당당하게 한판 붙자고 해서 경선을 이겼다. 비록 내가 정치는 모르지만 ‘저 남자 멋쟁이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부산=정선언 기자
“작년 12월 초대해줘 … 수심이 꽉 차 뵀지”
“차를 마시는데 영 말이 없으신기라 그게 마지막이 될 줄 누가 알았겠노”
24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마련된 노무현 전 대통령 임시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줄을 서서 분향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김경빈 기자]
이씨는 노 전 대통령을 ‘스스럼 없는 사람’으로 기억했다. 2002년 선거 당시 자갈치시장을 찾았을 때 노 전 대통령은 “부산에서 그런 연설을 해준다는 건 대단한 용기”라며 이씨를 업어줬다.
“대통령 되실 분이 어찌나 스스럼없게 대해주는지….” 당시 장면은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23일 저녁 뉴스에서 다시 방송됐다. “그게 나올까 가슴 졸였는데, 마음이 아파서 화면을 쳐다보지도 못했다”며 이씨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노 전 대통령의 취임 직후 이씨는 전국의 찬조 연설자들과 함께 청와대에 초청됐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라카는 기라. 나같이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 말에도 귀를 기울였던 기라.”
이씨는 “내가 아는 게 뭐 있나. 자잘한 고기를 하도 잡아서 생선 씨가 말라 걱정이라캤지.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이시데”라고 말했다. 뱃사람들이 정부 보조금을 받고 치어를 잡지 않기 시작한 게 그때 이후라고 이씨는 기억했다.
노 전 대통령의 재임기간 중 그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응원했다. 대통령의 직설적인 화법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 때도 많았다고 한다. “대통령 못 해먹겠다고 말했을 땐 어찌나 놀랐는지. 저렇게 서슴없이 내뱉으면 안 될 긴데 싶었다”고 이씨는 회상했다.
이씨가 노 전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지난해 12월이었다. 대통령 내외가 이씨와 시장 상인 10여 명을 봉하마을로 초대했다. 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가 검찰 조사를 받느라 어수선한 때였다. “차를 마시는데, 대통령이 영 말이 없으신 기라. 수심이 꽉 차 뵀지. 그게 마지막 모습이 될 줄 누가 알았겠노….” 그는 고무장갑을 벗고 휴지를 눈가로 가져갔다.
아귀를 손질하는 이씨 앞에 쪼그려 앉아 질문을 던지길 40여 분. 이씨의 동료 상인이 기자에게 언성을 높였다. “인자 고마해라. 여기가 어디라꼬 왔노. 이래 찔러대니까 봉하마을에서 그 사단이 난 거 아이가.”
이씨가 동료를 달랬다. “와 그라노. 서울서 왔다 안카나. 멀리서 왔는데 그러지 마라.” 조심스레 말을 이어가던 이씨가 무릎을 쳤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라. 커피 한 잔 주까?”
부산=정선언, 사진=송봉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