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이 기억하는 ‘인간 노무현’

중앙일보

입력 2009.05.25 00:21

업데이트 2009.05.25 13:53

지면보기

종합 06면

“학(鶴) 같은 사람.”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신계륜 전 의원은 24일 노 전 대통령을 이렇게 기억했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늘 심각하게 갈등하는 모습 때문”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 현재 45일째 전국 도보 순례 중인 그는 전날 서거 소식을 전해들은 뒤 배낭에 꽂은 깃발 상단에 검은 리본을 달았다. 정치권에 입문한 뒤 줄곧 노 전 대통령의 반대편에 섰던 사법시험(17회) 동기 한나라당 진영 의원은 “인간적이고 탈권위적이었다. 그리고 자존심이 강했다”고 회고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튿날인 이날 정치권은 ‘인간 노무현’을 추억했다. 그와 각별한 인연을 가진 여야 정치인 4명의 목소리엔 회한이 묻어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틀째인 24일 오전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안상수 원내대표가 사시 17회 동기인 노 전 대통령(오른쪽에서 셋째)과 1976년 6월 남해대교 위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꺼내 보이고 있다. 앉은 이가 안 원내대표. [뉴시스]
◆신계륜 전 의원=“2002년 가을 당시 국민통합 21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졌을 때 노 전 대통령은 ‘원칙이 아니면 단일화를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현실보다 이상에 약간 더 기운 사람이었다. 퇴임 직전 관저로 나를 불러 ‘정말 미안하다. 유일하게 빚을 못 갚은 사람이 당신’이란 말을 여러 번 했다. 대선자금 관련 수사로 구속됐던 나에 대한 미안함인 듯했다. 그는 주변 사람이 겪는 작은 어려움에도 늘 마음을 쓰는 그런 성품이었다.”

◆김부겸 민주당 의원=“1993년 추석 무렵의 일이다. 92년 총선에 낙선해 원외 최고위원이 된 노 전 대통령이 ‘저녁 한번 살 테니 기자들을 좀 불러 달라’고 해 10여 명을 모았다. 저녁 자리에서 인생 이야기를 한바탕 풀더니 기자들을 포장마차로 끌고 갔다. 술이 오른 그는 갑자기 허리띠를 풀어 머리에 묶더니 “비얌~비얌~” 하며 뱀 장수 흉내를 내며 노래를 불러 분위기를 돋웠다. 이내 기자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까지 다들 한데 어우러졌다. 열정과 소탈함, 무모할 정도의 용기는 그가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힘이었다. ”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사법시험 및 연수원 동기)=“서울 서소문 사법연수원 시절(1975~77년) 1946년생 동갑인 우리는 고향도 각각 마산과 진영이어서 가까운 사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연수원 수업 때도 교수들을 괴롭히는 발언이나 웃기는 농담을 많이 하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그가 정치권에 입문할 때, 또 내가 국회의원이 되려고 할 때 우리는 서로 상의했다. 내가 신한국당으로 가면서 우리 정치노선이 달라졌다. 2002년 초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 뒤 부산의 한 목욕탕에서 우연히 만나 ‘열심히 하라’고 덕담한 게 생전의 마지막 만남이 됐다.”

◆진영 한나라당 의원=“내가 네 살 어렸지만 인간적으로 아주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연수원 시절부터 논쟁을 매우 즐겼다. 연수원 성적으로야 상위권은 아니었지만 자신만의 논리가 뚜렷했다. 변호사 개업 후 참 열심히 했다. 대우조선 문제로 구속된 뒤 생각이 완전 바뀐 것 같더라. 1995년 부산시장 낙선 뒤 단둘이 식사한 일이 있는데 자신의 정치 인생에 대해 ‘꿈을 꾼 것 같다’고 말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이가영·정효식·임장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